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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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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어찌 말리나...


BY 솔바람소리 2008-11-13

밤 11시를 넘겨야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들의 간식을

챙겨줘야지만 내 하루 일과가 마감된다.

시험기간이 정해지면 아들 못지않게 나 역시도

시간이 빠듯해진다. 중학 2학년생인데도 이러니

앞날이 걱정될 지경이다.

연이틀 동안 작은 아이도 학원에서 밤 9시를

넘기며 보충수업을 하는 바람에 밤길이 위험해서 내가

데리러 다니고 있다.

학원과 가까운 초등학교 교정에서 걷기운동을 하고

쉬며 딸이 끝날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져있는 은행나무 잎들의

은은함을 발하는 황금빛이 어느 궁궐에 화려한

샹들리에를 연상케하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그 시간이 귀찮은 것만은 아니다.

어제는 밖에서 2시간이 가깝도록 딸을 기다린 것

같다. 입동이 지났어도 아직 모기까지 설치고 다니는

가을을 채 벗어나지 못한 날씨를 만만히 여기고 옷을

입은 탓일까 아니면 땀을 뺀 후라 그럴까 뼈 속까지

한기가 들었다.

추위에 어깨를 오그리며 떨고 있는 내가 앉은 벤치 앞으로

3명의 여학생들이 나란히 들어와 앉아서 재잘거렸다.

어른을 흉내 낸 옷차림과 제법 성숙된 외모를

보다가 궁금증에 목마르기 전에 나는 몇 학년이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아영이보다 한 학년 높은

5학년이라고 했다.

요즘 아이들의 발육상태가 빠르다고는 했지만

어딜 봐도 초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을 모습이다.

가로등이 곳곳에서 훤하게 켜져 있지만 밤이 늦었는데

9시가 다된 시간에 그 아이들이 왜 귀가를

하지 않고 밖에서 배회하나 걱정스러웠지만

나는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요즘 그들의

관심사가 뭘까 귀를 열고 들여다보았다...

무슨 말이건 서두가 ‘씨X\'을 비롯한 차마 옮기지

못할 욕으로 시작되었고 그 말들로 마무리가 되었다.

아이들을 지켜본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길가에 불량 청소년들을 그냥 지난 친 적이 없었던

나...

담배를 물고 있는 떼거리 곁을 곁눈질도 주지 않고

지나치는 어른들이 부끄러웠다. 위축된 어른들과

다르게 오히려 지나는 어른들을 비웃기까지 하는

녀석들의 행동거지에 내 자식들도 저러면 어쩌나

발끈해서 잔소리를 해댔고 그럼에도 반성은커녕

고개까지 빳빳이 들고 시선을 받아치는 녀석들에게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다.

때론 여학생들을 위협하는 부랑아와 길가에서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는데...

그런 탓에 지금도 길가는 내게 훤칠하게 키 큰 불량기

다분한 청소년들이 90도 각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하곤 한다.

한번은 찜질방에서 한 무리의 녀석들이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 나에게 우르르 몰려와서 큰소리로 인사를 하는

바람에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조용히

살려고(?) 노력을 했다.

주변의 걱정과 아들의 간곡한 부탁 탓인지 문득

내 눈을 벗어난 곳에서 혹여 내게 앙심을 품은 녀석들이

아들을 희생양으로 삼아버리면 어쩔까, 하는 기우가

들게 했고 그 마음이 서서히 나를 관대(?)하게 만들었다.

대범하고 당당하게 도리를 벗어난 행동을 서슴치

않는 요즘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모두 아무말 안하는데’ 가

아닌 ‘나만이라도...’

를 실천하며 살고 싶었는데 별수 없는 모성본능

때문에 봐도 못 본 척 넘어갈 때가 있지만

묵인하는 것이 나로서는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런 화려한 전적(?)을 소유한 내가

욕을 추임새로 둔 초등생들의 대화를 듣고 있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좋게 타일러서 될 요즘 아이들이면

서슴없이 해대지도 않을 터, 차라리

‘묵고하자’며 최면을 걸듯 되뇌었지만

나는 끝내 입을 열고 말았다.

“얘들아... ”

내 부름에 뒤를 돌아 본 아이들의 시선은 역시나

당당했다. 오히려 자신들의 대화를 끊어버린 것이

기분 나쁘다는 듯, 불손함이 묻어있었다.

짧되 강하게 몇 마디를 했더니 아이 중에 하나가

“죄송합니다.”라고는 했지만 마음이 없는 건성인

대사였다. 그럼에도 욕이 벌써 입에 벤 듯 다시 주절대던

아이들의 입에서 간간히 지들도 어쩌지 못하는 욕들이

튀어나왔고 그때마다 내가 신경 쓰이는지 주춤

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거기까지만 하고 싶었다.

적어도 조심하려는 것은 보였으니까...

그렇게 또 얼마쯤의 시간이 지나고나니 3명의 여학생이

더 몰려오더니 그 아이들과 합류했다. ‘언니’라는 호칭을

쓰는 걸 보니 선배인듯 했다.

나를 의식한 먼저 왔던 3명의 아이들이

나중에 온 아이들을 저만치 끌고 가서 뭐라고 주절대며

나를 힐끔거리더니 곧 제 자리로 돌아와서 더 큰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간간히 또 욕도 나왔지만 요번에는 나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내 속은 다시 용암이 들끓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딸이 올지도 모를 시간,

참아야했다...

아이들이 이번에는 벤치로 올라가서 보란듯이 좌우로 몸을 흔들며

그렇지 않아도 시원찮은 다리가 내는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즐기는 놀이 삼매경에 빠져버렸다.

들고 먹던 빼빼로 과자 상자들이 바닥으로 하나 둘씩

떨어져 내렸다. 역시나 그 곁을 지나는 어른들은 그 아이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보배들인데...

그렇지 않아도 나라 꼴 우습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참아야만 하는데...

“야!!!!!!”

성질을 어쩌지 못하고 끝내 내 입이 터지고야 말았다.

키가 나만하거나 나보다 좀 더 큰 아이들의 그 무리 속으로

나는 들어가고 말았다.

이 학교가 누구의 학교냐로 시작한 연설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는 열변을 토했고 아이들

하나하나를 노려보며 침을 튀기고 말았다.

아이들이 고개를 떨구며 바닥의 과자상자들을

줍고 있을 때 뒤에서 “엄마!!!” 하며 딸이

달려왔다.

아이들이 일제히 아영이를 보고 있었다.

“엄마, 저 기다리느라고 추웠지요? 그래서

한 문제 남았을 때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데요...“

내게 다가와서 조잘대는 아영이를 바라보던

아이들을 향해서 나는 일침을 가하듯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며 얼른 집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릴 때부터 제 엄마의 그런 모습을 지켜봤던

딸이 “엄마, 저 언니들 무슨 잘못했어요?” 하고

물어본다.

어쩌면 나는 일주일에 몇 번 학원 가방을 들어다

주느라고 학교를 들르는 일 말고 딸의 보디가드를

위해 매일 하교 길을 지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문득 얼마 전 일이 생각났다.

몇 달 전 아들의 공개 수업이 있던 날 교실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참관수업에 동참했던 거였다. 의젓하게 큰 녀석들이

얌전하게 선생님의 수업내용을 듣는 것이 기특하단 생각으로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사회를 가르치던 선생님께서

“니들이 매일 이렇게 얌전하게 집중 좀 했으면 좋겠다”

하셨고 곳곳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 앉아있던 몇몇 녀석들이 5명 정도 참여한 학부모들

중에서도 맨 안쪽에 있는 나를 고개를 돌려가며 힐끔 거리며

바라보다 시선을 얼른 거두기도 했다.

나는 간만에 미용실에 들러서 모양새를 가다듬은 효과가

이리도 크게 발휘하나 내심 뿌듯했다.

‘그래... 내가 그래도 미모는 빠지지 않아. 살만 쪼금 빼면

20대로 볼 지도 모르지... 암...‘

선생님이 고려 왕건이 어쩌고 발해의 장보고가

저쩌고 졸린 말들을 늘어 놓으셨지만 난 이미 착각을 사발로 들여

마시고 행복하기만 했다.

수업을 마치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철퍼덕거렸던 착각 속에서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엄마... 저희 반 애들이 엄마를 모르는 애들이

없어요.“

“왜?”

“전에 엄마한테 혼난 형들도 많지만 결정적인 것은

길에서 몸싸움 했던 형이 학교도 퇴학당하고 무서운 것

없는 형이었는데 엄마한테 맞았잖아요. 그것 본 사람도

많았구... 그 때문에 학교를 무사히 다닐 수는 있었어요.

간간히 형들이 저를 찾아와서 누가 괴롭히면 찾아오라고

말해주는 것도 사실 저는 창피했어요... 시간이 지나서

잊은 줄 알았는데...애들이 소문이 모두 돌았더라구요.

청소할 때 애들이 ‘ 저분이 너희 엄마시냐? 카리스마

넘치시더라‘ 하더라구요...“

내 머리가 예뻐서, 화장이 잘 돼서 그것들이 힐끔 거린

것이 아니란 말에 바람 빠진 풍선같은 기분은 왜 들 던지,

운 좋게 학교생활 수월했다는 말도 2년이 다되어서 털어

놓는 맥 빠진 아들의 말투가 신경 쓰였다.

그리도 멋지다던 엄마가 이제는 부담스럽다 이 말씀...

“저는 엄마가 정의로운 것은 좋은데요, 좀 참으셨으면

좋겠어요. 모두들 그냥 못 본 척 하는데 엄마가 그러는게

걱정되요...“

입학을 앞두고 했던 녀석의 그 말이 걱정보다

‘쪽팔림’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엄마의 행동을 멋지게 여기던 녀석의 변화에 그때부터

속으로 움찔 했던 것 같다...

 

조만간 나는 또 딸래미의 잔소리를 들으며 신경 쓰는

더 연약한 엄마가 되어 버릴 지도 모르겠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여름의 무성했던 욕심을 버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나도 앞을 내다보며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하는데...어쩜 이리도 만만한 것이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