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는 나그네>가 <솔바람소리>로 개명했습니다.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한동안
설명을 해야 할듯 합니다...)
딸이 자켓의 단추가 떨어졌다며
들고 와서 달아달라고 했다.
바느질 통을 찾아와서 눈 깜짝할
사이에 원하는 대로 해줬다.
역시 엄마는 짱이란다.
짱... 대따 잘한다는 말인데...
단추 하나 달아주고 듣기에는
과하다싶은 그 말...
그래도 세상에서 못 하는게 없는
엄마라고 추켜 세워주는 기특한
딸이기에 살짝 기분이 업될랑말랑 할 때,
화장실에서 빤스차림으로 나온 남편이
한쪽으로 걸어놓은 정장바지를 빼내어 입었다.
“이거 누가 다렸어?”
남편이 물었다.
구입한지 13년이 넘는 다리미를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하다보니 제법 옷 태가 나는 것도 같고
다림질 시간도 서서히 단축되어 가길래
스스로 <신의 경지>에 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 자부하며 머지않아 <생활의 달인>에
도전장을 내밀까, 하던 차였다.
딸에게도 칭찬한번 들었겠다, 다림질 잘했다고
남편한테까지 장족의 발전에 대한 찬사를 받겠구나,
싶은 마음에 나는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했지 누가해!”
대답과 함께 남편에게 여유 만만한 시선까지 살짝 던졌드랬다.
“이 사람아, 두 줄이 갔잖아. 도대체... 다림질을
어찌한 거야...“
크고 당당했던 목소리와 여유만만하던 시선을 모두 챙겨
빗자루로 쓸어 담아 거두고 딸의 단추를 달았던
바늘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살짝 뻘쭘해서 그렇게 가만히
찌그러져 있으려고 했더니 이건 좋은 기회 잡았다 싶은지,
계속해서 궁시렁이다.
그래도 큰맘 드시고 손질해준 것이 어디야.
아니, 나한테 뭐 그리 바라는 게 많아?
내가 처음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며
저를 만나 도망쳐 나오기 전에 뭐라고 했어.
물 한 방울 안 묻게 해줘?
마음고생을 안 시키겠다고?
그냥 옆에만 있어 달라고?
바느질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빤스까지
꿰매주던 사람이 말이야,
다림질 같은 것은 자신이 해도 되고
세탁소에 맡기면 된다고 그런 것은
신경 쓸 것도 없다던 사람이...
헉... 내가 정말 콧구멍이 두 개라서 숨은 쉰다만
가만히 있자하니 가마니가 되는 것도 아니고
보자 보자하니 보자기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말여,
해도해도 이건 아니지...이 사람아!
내가 저를 만난 순간부터 밑바닥 삶을 내 길처럼
받아들이며 산 세월이 얼만데 말이야,
물 한 방울 안 묻게 해준다는 사람이
설비씩이나 하면서 변기가 막혔다고 제 때 한번
뚫어줬어? 내가 <뚫어뻥> 들고 이틀에 한번 꼴로
X물 튀겨가며 땀까지 삐질 거리는데 말이야!
작업복 입고 나갔다하면 철조망에서 굴러다녀도
그렇게 찢어먹고 오지는 않겠다. 그때마다
내가 꿰매댄 바느질 때문에 이냥반아,
단추하나 못 달던 내가 이제 눈감고 자면서도
꿰매는 수준이야, 이거 왜이래?!
마음고생 안 시키겠다더니 아주 단련을 시켜서
웬만한 마음고생쯤은 고생 축에도 들지 않는다며
덤덤하게 받아넘기라고 강심장 만들기 위해
그리 나를 들볶았냐?
옆에만 있어 달라고?
그래서 그리 술 냄새를 향수 삶아 살고 있어?!!!
온갖 지난생각들과 말들이 콸콸콸콸...용솟음치듯
넘쳐나려 했지만 ‘오냐, 오냐, 그래...참자’ 하며
참고 참고 또 참았지만... 물에 빠지면 둥둥
뜰 거라는 입이 그래도 한마디는 하고 싶어 했다.
“다음엔 세 줄에 도전한다...”
내 말에 남편이 피식거리며 역시나 한 말씀 하셨다.
“환장하겠네...”
내게는 주변 사람들을 환장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강아지를 당당히 내가 낳은 자식이라는 말에 친정아버지도
환장하셨었고, 우울한 기분에 집에만 있지 말고 가까운
산에라도 다니라는 큰 동생에 말에, “조만간 누나가
히말리야로 떠날지도 모르겠다“ 했더니 동생도
환장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에도 남편이 환장하겠단다...
아...
나는 그들의 환장을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왜 그들은 환장을 한걸까...
문득 환장이 아닌 환상에 빠져본다...
맨손으로 천둥오리를 때려잡고 떡복이를 철근처럼
씹어 먹으며 마을버스 2-1번에서 뛰어내린 누구의
강심장처럼, 그 화끈(?)함처럼...
순식간에 쓱싹쓱싹, 김치도 해치우고
헌 옷에 몇 번의 가위질과 바느질로
새 옷 하나 만드는 것쯤 일도 아니고
착착착, 왕복 두어 번에 날이 서는
다림질을 할 수 있는 유망한 주부가 되고 잡은데...
나는 늘 나의 열등감에 빠져서 배형과 평형 자유형을
능수능란한 모습으로 허우적거리고만...이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