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이른 새벽에 떠들어 대는 자신의 목소리가
청천벽력과도 같음을 남편은 모르는 듯했다.
그동안 자신이 참았다는 것들에 대해서 내가 창문을
닫아두면 열어놓는 수고까지 마다치 않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니가 반찬을 제대로 해서 애들을 먹여 봤어?”
“애들이 삐쩍 말라가는 것이 보이지도 않아?”
“애들을 웬간히 잡아야지. 그것들 불쌍해서 내가 볼 수가 없어.”
“애들이 게임도 할 수 있고, 텔레비도 볼 수 있는 거지.
숨도 못 쉬게 닦달해?“
남편이 해대는 말들이 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반찬을 바란다는 그 뻔뻔함에
두 손 들고 싶을 뿐.
자식 일에 가슴 아픈 사람이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어서 ‘허리 밟아라.’
명령하고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베게를
집어 던지며 ‘싸가지 없는 새끼들’을 연발하는
사람 입으로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양심이란 것도 없는,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치열한
세상에 존재하는 나쁜 것들의 비유를 열거해도
모자랄 입으로 해서는 안되는 말들이었다.
나는 내가 가르친 교육관과 상관없이 내 아들이
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그대로 행하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한 엇나감으로 살아간다면
인생무상, 좌절감과 분노로 살아있어도 살 자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걱정되어 늘 많은 얘기들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잘못된 행동이 보였을 때, 나태함이 느껴질 때,
살벌하게 화를 내고 때에 따라서는 회초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나를 남편이 술 취한 입으로
허물처럼 열거하며 떠들어 댔다.
남편의 말들에 나 또한 뒤지지 않고 싶었다.
나 역시 치졸함에 물들어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 난 애 새끼들 제대로 못 먹이는 못난 년이다.”
“애새끼들 멸치 대가리마냥 삐쩍 말려 버리는 천하에
몹쓸 년이지.“
“그래서 너는 시도 때도 없이 애들을 잘도 챙기더구나.”
“그래서 애들 교육 잘 시키려고 그러고 사는 모습 보여 주냐?
아비로써 해줄 것이 그것 밖에 없어?“
남편에 목청 높인 소리에 나는 차분하게 대꾸했다.
“씨이 팔 년.” 하면
“그래 나 씨이 팔 년이다.” 했고
“X지같은 년.” 애들이 듣건 말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해도
“그래 나는 X지 같은 년이다.” 라고 대꾸했다.
“니 년이 지금까지 한게 뭐야?”라고 따지면
“밥이나 축내고 한게 없지.”라고 대답했다.
지겨운 인간...지겨운 인간...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나에게서 제발 떨어져 나가. 왜 그러니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따져들고 싶었지만
말해봐야 소용없는 것들이었다.
대화를 시도해 봐야 늘 동문서답 엉뚱한 대꾸와
엉뚱한 해석으로 원만한 적이 없었던 우리였다.
남편이 이번에는 아버님 제사를 운운했다.
혼자서 한번이라도 제사에 가 본 적이 있느냐고
나에게 따져 물었다.
그리고 제 엄마에게 전화 통화 한번 한 적 없는
천하에 못된 며느리를 만들더니
“니 애비 애미가 그리 가르치드냐?”라고 했다.
저야 말로 처부모 생신, 집안에 행사 때 찾은 적 한번 없었고
명절 때 찾기는커녕 전화 한번 드린 적도 없었다.
먹을 것 챙기러 가는, 일 년에 한두 번 다녀오면
그것으로 끝이던 인간이었다.
내 부모님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전화 한통 없었던
배은망덕한 인간 말종이었다. 그런 입으로 감히...
지가 먹는 쌀이며 김치며 온갖 것들이 모두
어디서 온 것들인데, 누가 고생해서 먹이는 것들인데...
우리 부모님을 함부로 입에 올렸다.
참 못났다, 못났다... 치졸하다 치졸하다, 내 허물을
그리도 찾기 힘들어서 이제는 내 부모니...
내 죄를 어찌할까,
내 부모님께 죄송해서 어찌할까...
이런 사위 만들어 드린 것도 모자라서 입으로
함부로 올리게까지 만들어 드렸으니 어찌할까...
정말 내가 죽으면 간단한 것을...
내가 죽으면 여기서 끝나고 말텐데...
잠깐이야 가슴 아프겠지만,
잠시야 원망스럽겠지만...
끝내는 나 자신조차 내게 향한 원망들만 열거하고 있었다.
모두 내 탓이었다.
내가 선택한 내 삶이었다.
누굴 탓할 필요도 없었다.
여기서 고층 빌딩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칠 것 같아서 창문을 열어 재꼈다.
열리는 것이 1초나 걸렸을까,
그 사이 많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면 또 어찌되는 거야...
그런 나의 어깨를 아들이 두 손으로 붙잡았다.
어느새 아들의 키는 내 머리가 어깨에 닿을 만큼
커져있었다.
훤칠하게 덩치가 커버린 녀석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했다.
“엄마...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엄마가
뛰어 내리면 제가 몸을 던져서라도 막을 거에요...“
아...아들이 잊었기를 바랬는데...
‘이번에는’이라고 했다...
8살 어린 나이에 뛰어내린 제 엄마를 붙잡지 못한 것이
제 잘못인 것마냥, ‘이번에는’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