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아홉 스므살엔 엄마가 입는 월남치마가 편해 그 치말 입고
가까운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입고 다녔다.
가금씩 엄만 그런 날 보구 아가씨가 우째 그런 차림으로 돌아 다닐
생각을 하느냐고 나무랬지만 천성이 그랬으리라.
가끔은 엄마의 몸빼바지도 잘 입었던 거 같다 그 편함에...
얼마전 추석에 내려온 딸 아이 마중을 나갔는데 차로 갔다가
휭하니 올 생각에 원피스에 가디건만 두르고 역전엘 나갔더니
반가움은 잠시 두 눈을 찡그리며 위 아랠 훓는다.
난 아무 말 안했지만 속으론 그랬다. 뭐? 어때서? 라고
그렇게 쳐다보는데 귀신같이 그런다.
그게 뭐야~아~
조그맣게 깔린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그렇게 이틀 머물다가 가는 아인 엄마, 옷좀 그렇게
입지마 아줌마 같애란다.
내게 아줌마같애라고 이야기 해준 사람은 몇년만에 처음이니
콧등이 시렸다.
입던 원피스를 입다 말고 가슴에서 묻어 나오는 감동으로 그렇게 한참이나 서 있었다.
울 아이 알면 참 주책이다 했을 터.
난 당연히 아줌만데 나이 오십이 넘은 아줌마인데 울 아인 아줌마 같애란다.
그 아줌마같애란 낱말이 부여해준 의미가 실로 컸다.
지 눈엔 아직도 엄마가 처녀같단 말과 상통하는 것 이고 처녀처럼 옷을
입으면 아줌마 같지 않을 수 도 있다는 말이되니...ㅎㅎㅎ
지 엄마가 어떻게 그리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아리송할 따름이기도 했다.
그게 자식일까, 아님 딸 가진 엄마들은 다 그렇게 딸에게서 그런 소리 듣고 사는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오늘도 어김없이 든다.
갈아 입으려고 꺼내온 치마 바지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 엄마 아줌마 같다닌까\"....라고.
이 노릇을 어째? 한다.
아줌마도 하면 안되고 아가씨하면 좋은데
그리 될 수는 죽어도 없을테니 이를어째, 하는 날, 내가 보며 웃는다.
엄만 이미 널 가지므로 해서 아줌마가 되었는데 너가 날 보구 아줌마라
하지 않음 나는 어디가서 그 아줌마의 정체성을 찾는단 말이고?
그러면서 오늘도 대책 없이 웃는다.
그래서 자식이고 그래서 자식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