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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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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 여잔데.


BY 박실이 2008-09-16

밤새 뒤척인다.

자존심이 상한 건 아닐까 싶은데 아니다.

그가 잘나서 상대성으로 주눅이 든 건 더 더욱 아닌데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인다.

 

어찌 그리도 모질은지..

구구절절 다 맞는 소리다.

다 옳다고 수긍 한다.

그런데 돌아서서 생각이 나고 생각에,  생각의 혼미가

더해지다 보니 오후 약속을 펑크내고 바닷가를 걸어 다녔다.

 

오랫만에 신은 구두가 불편해 잠시 앉아 있는데 술 한  잔을 먹음직한

아저씨 작업이 들어온다.

오랫만에 드라이 하고 화장하고 그랬으니 술김에 이뻐 보였나?

거울을 들여다 보니 비가 오는 바람에 한껏 살렸던 드라이한 머리는

비 맞은 풀숲처럼 뉘여 있었고 울어서 닦아낸 흔적에는 화운데이션이

벗겨져 검은 기미가 눈에 뛰게 까맸다.

 

여학교 시절 친구네 외삼촌이던 그러닌까 한 학년 위던 그 삼춘과

최근 연락이 닿아 만난 것이다.

며칠째 벼르다가 차가 출발하기 이십분 전에 역전 커피숍에서

잠시 만남을 가졌다.

 

만남을 정해놓고도 역 앞에서, 어색한 만남이 될 거 같은

그  부자윰이 싫어 몇번이고 망설이다 결국은 만나고 말았다.

 

삼 십하고도 사 년만이니...

 

잠깐새에 이십분은 흘렀고

며칠전부터 만남을 회피해온 나를 삼춘이 탓했다.

너무 아쉽다는 거, 나도 안다구 허지만 남의남자가 되어 있는  삼춘을

이십 분 이상을  붙들 이유가 내겐 없었다고...

커피숍에 앉아 플랫포홈을 빠져 나가는 그를 보고 그렇게 삼십분이 넘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폭탄을 맞은 것이다.

그에게서..

아니, 그 짧은 이십분 동안에 삶의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

살아온 날들이 너무도 비참하게 뭉개어져 갔다.

 

다 맞고 옳은 소리였는데 그 옳고 바른 소리에 마음이 참담해

일어날 힘을 잃어버려 그렇게

앉아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내 나이와, 최근에야 동갑인 걸 알았지만 그 나이에 맞게 능력도

있었고 그 능력에 맞추어 중후해 보였다.

단발머리땐 삼춘이라고 불렀지만 왜소하고 키도 나보다 작아

늘 안중에 없던 사람 이였는데...

 

그런데 반가움도 잠시, 난 박피수술을 해야 할 사람으로 낙인 찍혔고

피부관리를 그렇게 하기에 남자가 없다는...

여자는 스스로 가꾸고 그러다보면 일에서든 사회적으로든 자신감이 생기는 거랜다.

그러다 보면 남자들도 따르고 어쩌구 저쩌구...

티비에서 그를 보고 많이 변해버린 모습에 잠시 가슴이 뛰었던 날

무참하게 했다.

 

집사람도 기미가 끼어 박피수술 권했더니 자신감을 회복 하더라고..

여기선 안 웃을 수 가 없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앉아 있었던 내가 또 한심해

그렇게 또 웃었다.

여름내내 머리 질끈 틀어 올려 핀으로 꼽구 스킨 로션 발라봐야

땀으로 훌러 내리는 주방일루 한 여름을 난게 십여년이 되어 가는

내가 무슨 수 로 피부관리 한다니? 하며 그가 떠난 자리에 앉아 서운해 했다.

 

오늘에야 내 외모가 콤플렉스도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지 잘난 맛에 살아왔고

그렇게 무신경으로 살아온 나날들이 거울을 들여다 보게 했고

검버섯에 기미 주근깨 큼직하고 자잘한 점들.. 두루 갖추고 사는 날

오늘에야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그래 참 더러운 건 다 모여있네 싶다.

 

근데 동갑내기 삼춘아  얼굴에 더러움을 보는 눈으로 세상 살지마!

따뜻한 눈으로 우리 조카친구 힘들게 살지는 않았는지 함, 살펴주듯

그런 눈으로 세상을 봐!

그 짧은 시간에 말이지 그렇게, 사람 챙겨 가며 상처 주는거 아니다.

전화 오는 거 전원 꺼버려 미안한 거 나도 안다구.

그리고 그렇게 전화 안 받을겨.

그리고 그게 나두 여자라는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