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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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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세계화


BY 낸시 2008-09-12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컴퓨터를 켜고 우리 식당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한 것이 있나 찾아보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어쩌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너무 좋다.

물론 간혹 맘에 들지 않은 평을 발견하고 씁쓸하기도 하지만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니 더욱 열심히 읽는다. 

어제는  닭고기와 아보카도를 얹은 비빔밥을 자주 시켜먹는다는 이가 쓴 글이 올라왔다.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정도로 좋은 평이다.

몸에 좋은 음식이 맛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단다.

자긴 양배추도 피망도 싫어하는데 우리 것은 맛있단다.

우리가 사용하는 채소나 아보카도의 신선함에  대한 설명이 길다.

하긴 우리네처럼 채소를 채썰어 사용하지 않는 외국 사람들에겐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채소를 얼음물에 담그어 싱싱하고 아삭하고 달큰하게 하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우리가 파는 비빔밥은 생야채를 주로 이용한다.

새싹 비빔밥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어린채소를 한쪽에 올리고 반대쪽엔 오이를 채썰어 담는다.

푸른 채소 옆으로  채썰어 살짝 데친 오렌지색 당근을 담고, 그 옆에는 채썰어 얼음물에 담그었던 보라빛이 도는 붉은 양배추를 담는다.

푸른채소 또 다른 쪽엔 역시 채썰어 얼움물에 담그어 아삭하고 달큰한 흰 양배추를 담고 그 옆엔  곱게 채썰어 씹히는 맛을 부드럽게 한 빨간 피망을 담는다.

밥은 야생 흑미를 넣어 색깔을 내고 올리브유와 소금을 약간 넣어 윤이 반지르하다.

고명으론 취향에 따라 쇠고기, 닭고기, 두부, 달걀, 아보카도를 선택할 수 있게 하였다.

간혹 훈제연어나 새우를 넣어달라는 사람도 있다.

그릇에 담아내면서 내가 봐도 참 예쁘다.

녹색의 어린채소모음, 오렌지색당근,  보랏빛 양배추, 연두색 오이, 빨간 피망, 하얀 양배추가 만들어내는 색깔이 정말 곱다.

비빕밥을 처음 먹는 외국 사람들이 반할 만 하다.

 

우리 식당엔 한국 사람 손님은 드물다.

한글 간판도 없고 김치도 없다.

찌게도 없고 반찬도 없다.

 

미국에 있는 일본 식당이나 중국 식당에 가면 미국사람들이 많지만 한국 식당에 가면 주로 한국 사람인 것을 보고 남편이 그랬다.

한식은 세계화하기 힘든 음식이란다.

그래, 그럴까? 동의하기 힘들었다.

뭐가 문젠데... 개선하면 되지.

김치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김치 빼고 다른 것만 팔면 되지.

반찬을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 야만스럽다고? 그럼 그릇 하나에 몽땅 담아주지 뭐.

 

울엄마는 음식하는 일이 싫어 식당을 열었다고 울딸이 식당 뒤에 큼직한 글씨로 낙서를 해두었다.

사실 난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즐기던 사람은 아니다.

울엄마가 밥상에 수저 좀 놓아달라고 하면 아버지를 따라 논으로 밭으로 달아났던 아이다.

툭하면 아이들 데리고 외식하길 좋아해서 울아들과 딸이 제발 집에서 밥 좀 먹자고 사정하던 엉터리 엄마였다.

하지만 외식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한식처럼 건강에 좋은 음식이 없다는 것이다.

돈을 들고 오늘은 어디가서 무엇을 먹을까... 마땅한 곳이 없었다.

돌 날아올까 싶지만 솔직한 고백은 한국식당에 가서 먹으면 배가 아플 때가 많아 싫었다.

집에서 먹으면 배가 안 아픈데 왜 식당에 가서 먹으면 배가 아플까...

헛배가 부르기도 하고, 심한 갈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조미료 때문일거라고들 그랬다.

 

남편이 대사관에서 근무하면 음식해서 손님 대접하는 것은 여자의 일이다.

그 시절 언니집에 놀러갔더니 워싱턴에서 파출부가 왔으니 놀러오라고 온동네 소문을 내었다고 언니가 그랬다.

내 참, 어쩌다 내가 음식 잘하는 여자가 되었나...

어디 여자냐고 공사 부인이 물었단다.

전주여자라고 하였더니 그럼 일 좀 시켜야겠군 하였단다.

내 참, 어쩌다 나같은 여자가 전주에서 태어났을까...

 

이래저래 살다보니 부엌이 싫다고 도리질하던 나도 음식에 관심을 갖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전업주부 이십년 하다보니 할 줄 아는게 그나마 그 밖에 없기도 하였다.

남편을 꼬드겨 이민을 왔으니 생계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저래 식당을 열었다.

미국에서 식당을 하니 미국사람을 상대해야 시장이 넓다.

난 한국여자고 못하는 음식이지만 그 중에 한국음식이 그나마 자신있으니 한국음식을 미국 사람에게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 참, 어쩌다 한식의 세계화가 내 숙제가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