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사십이면 지식의 평준화가, 그리고 오십이면 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별 볼 일 없어진다는 말이다.
사십이나 오십이란 나이가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식이니 미모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체력도 시력도 청력도 예전만 못하다.
창피하게시리 물만 마셔도 자꾸 사래가 들린다.
기도와 식도사이에 있는 막이 예전처럼 재빠르지 못해서라고 한다.
밥 먹다 툭하면 볼을 씹기도 한다.
볼근육이 늘어져서란다.
날마다 새롭게 점점 더 약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어디 그 뿐이랴...
나이 사십이 넘어 점점 약해지는 자신을 느끼면서, 내게도 죽을 날이 다가오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서 한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하는 생각도 비로소 하게 되었다.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나중에 해야지라고 미루어선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쁜가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꽃을 심기 시작했다.
월세로 사는 남의 집 마당을 내 돈 들여 가꾸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 같이 집 밖으로 나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남의 집 마당을 가꾸었다.
배고픈 것도 참고 모기에 물리는 것도 참고, 그 때 내가 살던 곳 휴스턴은 겨울에도 모기가 극성이었더랬는데, 월세로 사는 남의 집 마당을 가꾸었다.
흙을 사다 잔디밭에 뿌려 잔디도 가꾸고 남의집 마당에 있는 꽃도 살짝 꺾어다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꽃모종을 사다 심기도 하고 이미 있는 꽃은 포기나누기도 하였다.
조금씩 조금씩 꽃과 나무와 친해졌다.
내가 얼마나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지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사십이 넘어 몸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은 알았지만 폐결핵은 남의 병인 줄 만 알았다.
울컥 목울대를 넘어 쏟아지는 벌건 피를 보면서 다시 한번, 아 죽음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 실감하였다.
이대로 삶을 포기할 것인가, 살기 위해 투쟁을 할 것인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치료시기를 자꾸 뒤로 미루다 드디어 살아야 될, 살고 싶은 이유를 찾았다.
살고 싶어서, 죽기 싫어서,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거라면 한번 열심히 살아보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꽃 박람회가 열리던 곳, 꽃보다 사람이 많아 사람을 피해 버스를 타고 간 야트막한 동산에서, 온통 꽃으로 뒤덮힌 그곳에서 내 삶의 이유를 찾았다.
그래 그 산처럼, 아니 그보다 더 이쁘게 꽃과 나무를 가꾸어 봐야지...
식당 자리를 보면서 꽃심을 공간이 있음에 마음이 끌려 결정했다.
처음 식당이 어려움을 겪을 때, 꽃이 있어 견디어낼 수 있었다.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 어린아이 기르듯 기른 꽃을 차마 버릴 수 없어 버티어냈다.
도심의 버려진 땅이 화사한 꽃밭으로 변해갈 때 사람도 변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 식당이 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그들은 친구랑 가족을 데리고 와서 우리 음식을 소개하였다.
내가 가꾼 꽃과 나무를 마치 자기가 한 것이기나 한 듯 자랑스레 소개하였다.
하루 중 내 꽃밭 사이를 거닐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보다 줍는 사람이 늘었다.
우리 식당에 오면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사람이 많았다.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다.
다른 사람과 같이 즐길 수 있는 도시 안에서 꽃과 나무를 심는 것이 혼자서 즐기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내 꿈을 산 하나를 꽃과 나무로 가득 채우는 것에서 꽃과 나무로 뒤덮인 식당을 많이 많이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오십 초반의 나이, 그것은 별 볼 일 없는 나이가 아니다.
인생에 대해서 눈을 떠 가는 나이다.
비로소 꿈을 찾아가는 나이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다는 타샤 튜더가 처음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도 오십 여섯부터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힘이 난다.
난 아직 그보다 더 젊다.
무한한 가능성은 이십대 청년의 전유물이 아니다.
무한한 가능성은 오십 초반의 아줌마 앞에도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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