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교정시설 과밀현상으로 가석방을 더 많이 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49

겸손을 생각할 때.


BY 낸시 2008-06-30

여지껏 겸손이 내겐 필요한 덕목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겸손과 비굴이 동의어 같기도  했고, 소심이나 내숭과 동의어로 생각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어깨 펴고 등뼈를 곧추세우고 고개를 빳빳히 들고 살려 애썼다.

내가 약자임을 인정하기 싫어서이기도 했고, 약자임을 인정하면 더욱 핍박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너가 날보다 잘 난 게 뭐 있어? 너 나보다 공부 잘해?\'

철없던 시절 나는 이렇게 동갑나기 사촌 오빠를 핍박했다.

그는 툭하면,  가시내가, 족보에도 못 오를 것이,라는 말로 내 자존심을 긁곤 하였기 때문이다.

여고시절, 나랑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들은 쉽게 말문을 트지 않는 나 때문에 맘고생을 하였노라고 나중에 고백하곤 하였다.

도무지 말이 없이 거만하고 도도하였단다.

어쩌면 그들이 다닌 정규 중학교를 거치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들어간 내 모습을 노출하고 싶지 않았던지도 모른다.

대학교시절 언니에게 물려받은 옷이 다 빛이 바래고 닳아져도 당당하게 입고 다녔다.

예쁜 옷을 사 입을 돈이 없는 나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겸손한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집 구석에서 세샹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여자가, 당신이 뭔데 나서, 등등의 말로 상처입은 내 자존심은 겸손을 비굴이라고 몰아세웠던 것이다.

남편의 직장 동료나 선후배의 부인들 모임에서도 난 겸손할 수가 없었다.

능숙한 영어, 명품, 미모, 학식을 앞세운 여자들 앞에서  겸손은 비굴이나 소심일 수 있었고 간혹은 내숭일 수도 있었다.

혹  날더러 교만하다고 하기도 하였지만 스스로는 그리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기엔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요즘 겸손이라는 말이 화두처럼 다가온다.

슬그머니 교만이 깃들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식당 아줌마 노릇 삼년, 신문 티비 잡지 인터넷에  내 모습이 오르내린다.

남편 아들 같이 일하는 사람들 다른 주위사람들도 날 인정해 주고 있음을 느낀다.

손님들 눈빛에서 내가 잘하고 있음도 안다.

내가 가꾸는 꽃들이 어느 땐 내가 봐도 정말 이쁘다.

와, 모든 것이 기대 이상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잘 할 줄 몰랐다.

난 할 수 있노라고 큰소리 빵빵 쳤지만 속으로 불안한 날도 많았었다.

속으로 불안할 때, 그 때는 큰소리 치는 일이 불안하지 않았다.

불안한 나를 다독이기 위해 부러 큰소리를 칠 필요도 있었다.

이젠 큰소리치는 게 불안하다.

혹시 내 안에 교만이 깃들지 않을까 겁난다.

이젠 나도 겸손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소심함이나 내숭 혹은 비굴과 동의어가 아니라면 겸손해지는 걸 겁낼 필요가 없을테니까...

사실은 나도 맘 놓고 겸손해지고 싶다.

내 자신의 부족함을 남 앞에 솔직히 인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굴함을 느끼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 낫음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