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몸과 마음을 훌훌 벗어 놓고 있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나뭇잎 색이 달라졌듯이 거리의 사람들이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옷장 속에 넣었듯이 나는 지금 홀가분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친정엄마는 하루에 한 번씩 우리 집에 들려서는 운동이라도 가지 종일 그렇게 꼼짝을 안하냐고 밖으로 좀 나돌아 다니라고 하시며 답답하게 여기십니다.
지금의 나는 70년에 맞춤옷처럼 어색하고 촌스럽긴 해도 내 몸에 잘 맞고, 나뭇잎이 6월의 나무에게 어울리듯 나는 나를 편안하고 간편하게 조절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 보기엔 조절을 전혀 안하고 새벽까지 텔레비전과 놀고, 내 치부를 다 들어내는 잡글이나 쓰고, 돈 벌이가 안 되는 꽃이나 심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내가 실속없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나는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스스로 만족하지 않으면 꼭 붙잡고 있는 손을 놓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손을 놓으면 날개를 펴고 날아갈 수도 있고, 다른 물줄기로 거슬러 올라 갈 수도 있고, 새벽까지 잠 못 이루며 글을 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내 자신을 때려치우고 너로 살고 싶을 때가 목구멍에서 분수처럼 속구치지만 분수가 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안답니다.
나는 나일뿐이지 네가 아니고 그 누가 아니기에 나는 나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내게 연락하고 얘기하고 있어주는 사람은 친정엄마와 친구 두 명과 이모와 아들아이와 갈색푸들 꽃순이가 있습니다.
핸드폰엔 친구 두 명만 들락거리고 집 전화로 엄마와 이모가 들락거립니다. 현관문으로는 아들아이와 엄마가 들락거리고 안방 문으론 꽃순이가 들락거립니다. 간편하고 간단한 삶, 그래서 나는 도시에 휩쓸리지 못하고 현관문을 잠그고 네모난 아파트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 오늘은 꽃순이를 데리고 공원에 잠깐 다녀왔습니다. 꽃순이는 이름과 삶이 똑같습니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꽃을 따먹고 풀잎을 따먹기를 좋아해서 며칠에 한 번씩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우울해 합니다. 그래서 순전히 꽃순이를 위해 공원을 잠깐 만나고 왔습니다.
목줄맨 꽃순이와 공원길을 걷고 있는데 길 끄트머리에 아들아이가 보입니다. 신발주머니 대신 노란 비닐 가방을 들고 다녀서 멀리서 봐도 아들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들아이가 웬일로 나와 계세요? 하고 묻더군요. 우리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을까? 아들아이는 포도 얼음알갱이를 고르고 나는 밤맛나는 바밤바를 공원에서 베어 물었습니다. 공원엔 노인 분들만 여럿 계셨습니다. 우리 옆 벤치에 앉은 할아버지는 아까부터 혼자였습니다. 외로워 보였습니다. 쓸쓸함이 얼굴전체 갈색으로 번져 있더군요.
나처럼 개라도 한 마리 키우면 남들 보기에 훨씬 안 쓸쓸해 보일 텐데…….
지금 나는 쓸쓸해 보이는 것 같아도 그리 쓸쓸하지 않습니다. 복잡한 사람들 틈에 있는 것보다는 종일 집에서 누웠다가 일어났다가 부엌으로 종종 걸어서 먹을걸 챙겨들고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앉아서 코미디 프로를 봐도 별로 웃지도 않고, 심각한 프로를 봐도 심각하지 않고, 눈물 흥건히 고이는 프로를 봐도 울지 않으며 하루의 사분의 일을 텔레비전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감정이 메말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꼴락 두 명의 친구한테 전화나 문자가 오면 웃으며 받고 농담 섞어 문자를 합니다.
아들아이를 보면 장난을 칩니다. 공부하기 싫은 우리 아들 커서 뭐가 될지 너무 궁금하다, 하면 아들아이는 뭐가 되던 될 거예요, 하기도 하며 말입니다.
꽃순이를 끌어안고 주물러 터뜨리기도 합니다. 착한 꽃순이는 이런 나를 피하지 않고 아기처럼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나는 꽃순이를 우리 아기, 하면서 꼭 안아준답니다.
하루가 길 때가 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 한통 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엄마도 교회일로 바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참 길구나 느껴집니다. 텔레비전도 글쓰기도 친구가 될 수 없고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알 때 하루가 저녁 나무 그림자처럼 길어집니다.
전 지금 재혼하지 않습니다. 글속에는 혼자라서 외롭다는 말과 사랑타령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나는 재혼을 미뤄두고 있습니다. 한 남자를 마음에 품으면 다른 남자에게 관심도 없습니다. 그때 당시엔 사랑 때문에 가슴이 아파 울지만 지나고 나면 덤덤하고 냉정해집니다. 외간 남자들을 쳐다보지 않고 소개해준다는 말도 시큰둥하게 받기 때문에 소개도 잘 해 주지 않습니다. 적극적이라야 재혼을 하든지 상처를 받고 헤어지든지 할 텐데…….
지금 나는, 지금처럼 걸리적거리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한사람을 안다는 건 알고서 맞춰가고 이어간다는 건 참 어렵습니다. 그냥 이대로 살게 될 겁니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흘러갈 겁니다. 그 물길 닿은 곳이 끝이 없다해도 종점이 없다해도 내 방식의 사랑은 이대로 흘러갈듯합니다.
나는 지금 아이들이 중요합니다. 엄마 품에서 커 온 딸아이가 성인이 되고, 아들아이는 아직도 엄마 품에 속해 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 재혼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지금 얘들 아빠는 실업자 생활을 벗어내 던지고 직장을 잡아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를 주고 있습니다. 다달이 맞춰 생활비를 안 주기에 얘들 데리고 가라고 했더니 키워줄 여자가 있어야 데리고 가지, 하더군요. 떨어져 살아보니 아이들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나봅니다. 내가 얘들 두고 재혼할까봐 겁이 나서 그런지 꼬박꼬박 생활비를 주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불행하다고 말하기엔 그리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안에 있으면 가진 것이 많아서 불행하지 않은데, 밖에 나가면 남들이 가진 행복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많아 집에서 말 못하는 동물과 혼자만 떠드는 텔레비전과 속까발리는 글쓰기와 작가 생각에서 쓴 책들과 편안하게 쉬고 있습니다.
세상 소식은 친구가 전해 주니 집안에 박혀 이리 살아도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답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타구니 뚫어진 냉장고도 바꾸고, 시끄럽게 투덜 거리던 세탁기도 바꿔고, 살구색 압력 밥솥도 사고, 가진 것이 많아져 아주아주 늘어지게 살만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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