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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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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물든 남편


BY 그대향기 2008-05-19

 

 

아침 일찍 대구에 출장을 간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기 명품집인데 몇해 전에 쇠죽 먹는 통~~그거 얼마였지?\"

\"아~여물통요? 그거 십만원도 넘었지 아마.....\"

\"여기 ....조금 갈라지긴 했는데 통나무고 모양은 전에 것 보다

조금 못해도 하나 사 갈까?\"

\"가격은 ? 너무 비싸면 그냥 와요. 그저께 워터코인 심어진 항아리

화분도 사 줬잖아.\"

\"그런데 당신이 좋아할 것 같은데.....\"

\"그럼 사 주든가.ㅎㅎㅎㅎㅎ\"

 

아내가 하도 길 가다가도  꽃집 앞을 그냥 못 지나가고

휴일이면 어디 5일 장이 서나? 둘러보는게 일이다 보니

이젠 남편도 은근슬쩍 아내의 취미에 마음이 물든거다.

국도를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화원이나 골동품 파는 명품집을

보게되면 차를 세우고 구경도 하고 가격이 적당하면 하나씩

사 들고 오기도 한다.

오늘도 대구에 출장 갔다가 국도 옆에 나무로 만든 여물통이

남편의 눈에 띄게 되었고 가격이 있다보니 사 갈까 말까 묻는거였다.

아무리 아내가 좋아해도 덜컥 사 왔다가는 고함을 들어야 하니

이젠 이러이러한게 있는데 가격은 어느 선이고 어디까지 흥정이 가능하다

사 갈까 말까 허락을 맡기까지 하면서 아내를 기쁘게 해 주려는 남편.

그저께는 다짜고짜로 \'워터코인\'을 아느냐고 물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워터\'는 물이고 \' 코인\'은 동전이고......

물동전이 왜? 하고 대답했더니 그럼 됐단다.

뜬금없기는.....

식사준비를 마치고 집으로 올라오는데 내 손을 잡아  끌고 집 앞

노천 화단으로 가 보잔다.

\"아침에 물 다 줬고 잡초도 뽑았는데 왜?\"

\"아니 그냥 한번 보라고\"

목수국은 하얗게 몽글몽글 피었고 큰 붓꽃은 연보라와 흰색이 환상적으로

섰여서 그림같이 피어있고 ,매발톱은 삼색이 활짝 , 향 크로바도 조롱조롱

금낭화도 사피니아도 ,제주도 한라봉도 짙은 향기를 뿜으며 피어있는데

아.....~~~

전에 없던 낯선 화분이 있다 있어.

\'워터코인\'이 소복하게 담긴 항아리분이 세로로 길~게 잘려서

발굽까지 있는 정말 멋진 화분이 베란다 앞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고 멋있어라~~~언제 샀어요? 어디서? 얼만데?\"

\"가격은 비밀이고 ,어디서도 다 비밀.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

어디서 하나 줏어 왔지 뭐. 좋아할 줄 알았어.\"

\"고마워요. 나 이렇게 항아리 질감있는 이런 화분이 좋아.

이쁜 일을 어떻게 하려고 마음 먹었을까?\"

\"나도 이젠 당신한테 물 들었나 봐. 저런 거 보면 당신 생각 나서

둘러 보다가 하나씩 사게 되더라고.

이렇게나 좋아하니까 나도 즐겁잖아.\"

그게 그저께.

 

그런 남편이 오늘 점심 때를 지난 시간에 출장에서 돌아왔는데

여물통이 험 하더라며 안 사왔단다.

몇년 전에 산 것은 관리도 잘 되었고 골동품 가게에서

닦고 손질을 해 놔서 가격도 좀 있었고

지금 우리 현관에 물레방아도 설치하고 금붕어도 키우는데

우리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집에 들어 오려면 현관을 거쳐야 하고

보는 사람마다 여물통의 물레방아간을 좋아한다.

하루종일 졸졸졸.....

물소리도 맑고 금붕어들이 왔다갔다 하는게 생동감 있고

그런 것을 봐 온 남편이 이번엔 험하다고 안 사왔단다.

\"그럼 왜 물어 봤는데요?\"

\"그냥 있길레.....나무가 연륜이 짧아서 좀 그렇더라구.\"

\"아이~~그래도 사 오지.그런 건 흙 채워서 식물심는 화분하면

정말 좋은데.....그냥 화분보다 얼마나 이쁜데.....

야생화나 자잘한 꽃 심으면 진짜 폼 나는데.........

좀 덜 이뻐도 흙 채우고 꽃 심으면 몰라요.\"

아쉬워서 자꾸 보채는 내게 다음에 좋은 것 나오면 사 주겠다고

더 말은 안 한다.

아이~~말이나 말지 공연히 기대나 하게 하고......

털털 거리며 집으로 올라오려고 계단 까지 오는데 멀리서

\"텅 텅 텅\" 나무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발걸음을 빨리빨리 어서 가서 확인하자.

\'이 사람 날 놀리려고 시침 뚝 떼고 혼자서 나무통 내리고 있을거야......\'

현관에 도착하니 맞다 맞아.

혼자서 여물통을 내리고 있는 남편.

\"샀으면 샀다고 하지~~그런데 셋씩이나?\"

\"만들다가 나무에 흠이 조금씩 있다고 싸게 해서 다 가져 가라기에

몽땅해서 좀 깎았지. 가격은 비밀이고....\"

나는 무조건 좋아 좋아를 연발하고 여물통 내리는 걸 도운다, 여물통의

상태를 살핀다 바쁘다 바빠.

생각보다 상태는 양호하고 오히려 너무 매끈한 것 보다도

투박하면서도 통나무 그대로의 거친질감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누가 통나무를 갖다주면서 여물통을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나무가 너무나도 단단하고 홈이 잘 안 파지면서 금이 가는 바람에

그만 포기하고 방치해 둔 것을 오늘 남편이 찾아낸 것이다.

눈이 보배.ㅎㅎㅎㅎㅎ

원가만 해도 통나무 값이 거의 20 만원이나 든 것을 남편은 흠이 있고

나무통에 살~짝 금이 간 것을 트집 잡아서 가격을 완전 파격적으로

깍아서 셋을 다 사 왔단다.

인건비는 둘째치고 나무 값도 안되는 값으로 셋을 사는 조건으로

남편이 다 사 오는 특혜를 입은 거다.

 

나는 좀 이쁜 화분도 제대로 된 것은 몇만원은 줘야 하는데

화분보다도 더 멋지고 폼나는 여물통을 셋이나 얻어서 기분이

완전, 애들 말처럼 짱이다.

영차 영차 2층 집으로 그 무거운 걸 옮기면서도 연신 좋아서 싱글거리니

남편도 같이 좋아 해 준다.

\"당신이 이렇게 좋아하면 다음에도 어디 다니다가 좋은 것 있으면

사다 주리다. 사치품도 아니고 당신한테는 필수품이니까.\"

남편은 어느 새 꽃을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푸르게 물이 들었다.

신혼 단칸방에서도 창가에는 바이올렛이나 미니 장미 화분이라도

올렸었고 , 사업이 어렵게 되고  회사 사택 주공 13 평 아파트에서도

남향으로 난 베란다며 책상 위에도 철 따라 화분을 올렸었고,

5 일 장마다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면서 꽃집을 기웃거리는

아내가 안스러워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비상금을 내 놓던 남편.

어쩌면 창가에 피우는 작은 꽃들이 있었기에,

푸른 잎사귀들과의 대화가 있었기에,

사업의 실패도 남편의 암 투병도 즐겁다 하면 뭐한 표현이지만

우울하지 않게 절망하지 않고 잘 견디었으리라.

 

지금은 4000 평 수련장  부지에 온갖 꽃들이 피고지고 또 피고지며

내 2층 집 앞 남향의 옥상에도 수십평의 개인 화원에도

철 따라 가지각색의 꽃을 피우며 살면서

지난 날의 힘겹고 고단한 삶을 웃으며 살아준 아내에게

남편은 최선을 다 해 경제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기쁘게 해 주려 노력하는게 역력히 보여 늘 고맙고 감사하다.

\'내가 그렇게 했으니까 이 만큼 해 줘\' 가 아니고,

그냥 하루하루를 예전과 같이 처음 우리가 만나고 사랑하며

애들을 낳으며 가슴  벅차했고  키우면서 감격했었고 ,

출가시키면서 서로 대견해 하는 과정들이 어느 누구 한 사란의 힘이 아니고

우리 부부의 공동작업이었고 공동의 책임이었기에

힘들 때도 서로 싸우지 않으려 노력했고

경제력이 바닥을 쳐도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으로 늘 웃으면서

빈약한 장 바구니엔  작은 꽃 화분 하나씩이 담겨져 있던

철 없던 아내가 이제는 남편을  같이 물들게 하는 것이다.

기꺼이 물들어 주겠다며 밝게 웃는 남편이 사랑스럽다.

 

오후 내내 위치 잡고 기존의 화분이며 돌확, 항아리로 된 큰 물확이며

돌절구들을 재 배치하면서 얼마나 즐겁게 일을 했던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훌쩍 저녁시간이 되어 버렸다.

혼자서 이리저리 궁리하고 여기 놔 볼까? 저기 저 자리에?

아니야....돌들은 돌끼리 모으고 항아리들은 항아리들끼리

나무 여물통은 여기 이~렇게 길게 자리 잡고..................

온전히 나 혼자서 화단을 발칵 뒤집다 싶이해서 대충 자리를 잡고 보니

대궐도 안 부럽다, 청와대도 안 부러워.

실내 베란다에 하나, 바깥 화단에 둘.

이제는 여물통에 무슨 꽃을 심을까 그게 고민이네~~

키가 낮고 사철 파란 잎을 올리는 야생화들을 심고 싶다.

하나쯤은 수중모터를 달고 수석 하나를 구해서 석부작으로

풍란을 붙이고 콩란을 깔아서 이끼까지 더 하면..........

셋이나 되니 즐거운 고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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