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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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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회


BY 그대향기 2008-04-14

 

 

지난 토요일.

경주 보문단지에 있는 호텔에서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었다.

역사가 100 년이 넘는 지역 명문 초등학교의 우리 기수 동기들이 모이는

자리에 바쁜 중에서도 남편을 기사처럼 데리고 날아갔었다.

우리 딸의 결혼식에 멀리서도 참석해 준 친구들의 성의에 인사라도 할 겸

오랫만에 만나는 친구들도 그립고 해서 토요일 오후에 경주로 향했다.

가는 길 양 옆으로 벚꽃이 만발하고 낮은 지대의 땅에는 야생초들이 군락을

이루어 피었는데 그야말로 지천이다.

나무에도 땅에도 연분홍 꽃 , 노오란 꽃 들이 불빛을 받아서 환상적인

꽃 비로도, 꽃 길로도 비친다.

어쩌면 저 많은 꽃들이 우리 부부의 귀향을 반기는 듯이 저리도 활짝 피었

을까?

달려도 달려도 보문단지를 다 들어설 때 까지 꽃들의 향연은 계속되고

드디어 예약된 호텔 앞에 내리는데 꽃내음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호텔 앞에 차를 주차시키고 지하 연회장으로 가면서 마주치는 친구들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연회장에서는 지난 번에 결혼식에 와 준 친구들은

와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못 온 친구들은 못 가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나누며 몇 달만에 만나는 정다운 얼굴들을 눈에 익힌다.

학창시절에 운동을 하면서 도민체전이나 전국대회를 나간 경험이 많다보니

다른 친구들보다 아는 얼굴이 많은 편이다.

아직도 초등학교 때 내 짝꿍과는 자주 전화도 하고(물론 남자친구) 남편과도

친하다. 우리의 연애편지도 전달해 준 친구기도 하다.ㅎㅎㅎㅎ

자기네 연애할 때도 둘이서 우리 집에 놀러도 온 좀 독특한 친구사이다 우린.

내 짝꿍은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중간간부의 자리에서 일처리를 잘 하고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들었다.

그저께도 우리 결혼식에 못 와서 미안하다고.......

아내하고 꼭 꽃구경도 할겸해서 시간을 비워뒀는데 회사에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늦은 밤에 호출이 왔다면서 너무 미안하단다.

짝꿍의 아내와 우리 남편과도 우스개 소리도 곧잘하고 친하게 지낸다.

이쁘기도 하면서 참 고운 마음을 가진 여인이다.

내가 밤에 자기 남편한테 전화해도 잘 바꿔주고 자기랑 얘기하고 싶다고 해도

정작 남편 목소리 듣고 싶어 하는 거라며 웃으면서 자는 사람도 깨워서

바꿔준다.ㅎㅎㅎㅎㅎ

가끔 명품사과도 택배로 보내주는 고마운 친구 부부인데 이번에도 못 온단다.

수원이라 집도 멀고 회사에 일도 많고 해서.

치과를 하는 우리반 남자친구는 어릴때 내게 참 많이 맞았다며 놀린다.

남편도 패면서 사느냐고...ㅎㅎㅎㅎㅎㅎ

개구쟁이짓을 하도 많이 하길레 내가 의리의 또순이가 되어서 남자애들을

많이 두들겨 팼단다.

고무줄 끊어버리기 , 살구놀이 하는 여자애들 살구 걷어차기, 치마 입은

여자애들 지나가면 \'아이스케키\'하면서 치마 올리기 ,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 문 벌컥 열어서 여자애들 울리기.......

그러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자자짠 \'영락없이 내가 가서 패 줬단다.

초등학교 때 부터 난 한 덩치를 했고 그 때는 운동부에서 알아주는 주장에

손 때도 매웠었다. 팔 힘도 남자들 보다 쎘고.

지금이야 당연히 남자들이 쎄지만.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도 , 총알 택시를 타고 날아온 친구도

사업체를 하루의 반을 접고 오로지 어릴적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희생하는

정겨운 친구들이다.

아무튼 어릴 적 친구들은 남자와 여자라는 개념보다 그냥 친구들로써 다 큰

남자와 여자가 이름을 막 불러도 흉이 안되는 참 편한 사이다.

개중에는 같은 반 친구들끼리 부부가 된 커플도 있고 시누이 올케사이도

있어서 재미있고 , 형수와 재수씨도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안타깝게도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유방암으로 먼저 갔다는 소식을 2 년전에

전해 듣고 많이 우울했었다.

딸 부잣집의 세째로 얼굴도 이쁘고 마음도 참 고왔던 친구가 결혼도 서른이

훨씬 넘어 하더니 결혼하고 첫 애기 낳고 그 이듬해에 발병하고 10 년을

항암치료를 하다가 힘들게 힘들게 삶의 끈을 이어가면서 하나있는 딸의

앞날만을 끝까지 걱정하는 강한 모성애를 보여주며 고통을 내려놓았단다.

그 친구의 영안실에 조문을 갔을 때 친구의 엄마와 언니는 내 두 손을 얼마나

뜨겁게 잡으시고 우시는지......

\"너는 이렇게 건강하고 좋아보이는데 우리 딸은......\"

말을 다 잇지 못하시고 오열하시던 친구의 엄마는 내가 가면 밥도 맛있게

차려 주셨고 길에서 만나도 반갑게 인사하시던 학교선생님의 사모님이셨다.

그 친구는 가고 없는데 동기회는 열리고 살아남은 친구들은 여전히 반갑다.

다른 반에도 더러더러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도 있단다.

고등학교 때 남선생님을 짝사랑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끝내 정신질환으로

내 몰리며 형편없이 망가진 친구도 몇해 전에 먼저 갔단다.

얼굴도 참 서구적으로 생겼고 공부도 아주 잘해서 선생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던 친구였는데 그 사랑이 뭔지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어버리다니.....

먼저 간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우리의 만남이 더욱 소중

하게 여겨지는 밤이었다.

 

 

학교는 규모가 꽤 있는 학교라 그 당시에도(35년전) 7 학급이나 되었다.

각 반 별로 팻말을 해 뒀기에 우리 반에 가서 미리 온 친구들과 반가운 인사

를 하고 회장과도 인사를 나누면서 남편을 소개했다.

지난 해 에도 아내의 초등학교 동기회를 위해서 통돼지 바베큐를 열어 준

남편은 우리 동기회에서도 아는 얼굴이고 반가운 인물이 되어있다.ㅎㅎㅎ

같이 부페식으로 차려진 저녁을 먹고 남편은 처가집에서 쉬고 있겠다며

잘 , 재미있게 놀다오라고 인사를 하고 간다.

결혼식 때 많은 친구들이 와 준데 감사하단 인삿말도 마이크를 잡고 단상에서

하고 동기회 발전기금도 좀 하고.....

여흥 시간에는 이벤트 팀을 불러서 하는데 얼마나 진행을 매끄럽고도 즐겁게

잘 하는지 그 이벤트 팀의 명함을 받아왔다.

다음에 집안의 팔순이나 잔치 때 부를 요량으로.

중간 중간에 행운권 추첨도 하고 게임을 하면서 벌칙도 하는데

나는 언제라도 행운권은 잘 되지를 않아서 포기를 하고 있는 편이다.

회장이 언제 명단을 건네줬는지 장모님 된 기념으로 앞으로 나오란다.

뜬금없이 불려나가 앞에 섰는데 사회자가 전국민이 다~아는 텔미를 하란다.

아니~아니~국무총리 복장을 하고 (언제라도 깔끔하고 중후한 정장차림

때문에 내 별명이 국무총리가 되어있다) 어찌 텔미를......

몸치에 춤치까지 리듬을 아예 못 타는 이 국무총리께서 텔미를 어찌 추냐고

얼굴만 당황해서 실실 웃음이 흐르고 음악은 쿵쾅 쿵쾅 빠르게 나오는데

아휴~진땀나.......

대충 거구를 실실 흔드니까 사회자 왈

\"아!! 요즘 장모님 버전의 텔미는 이렇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워낙에 춤도 못 추지만 언제 춤추는데를 가 봤어야지 원.

친구들의 격려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앉는데 아고 부끄러.

회장 너 나중에 보자며 눈을 흘기니까 씽긋 웃는다.

우리 또래에서 내가 가장 일찍 장모님이 되다보니 그 날의 하일라이트는

단연 장모님이 되어있었다.

평소에 남편은 청바지나 편한 정장차림보다 내가 점잖은 정장을 입기를

좋아해서 외부출입 때는 거의 교장선생님 차림이나 총리 차림이다.

덩치도 한덩치하고 생긴 모습도 남상이고 여러번 교장선생님 별명과

국무총리 별명을 얻었다.

이번 동기회에서는 파란색 정장 윗도리에 까만 니트 주름치마를 입고 갔는데

구두는 비즈장식이 가운데 흰색과 까만색이 동그랗게 큰 까만 바탕에 흰 굽.

에나멜 구둔데 좀 예쁘게 생겨서 딸도 하나 맞춰주고 나도 한 켤레 큰 맘 먹고

맞춘 신이다.

가방은 하얀색 가죽 가방.

옆 반에 이번학기에 서울대에 아들을 입학시킨 친구가 그런다.

\"딸 시집 보내고 총리님께서 살이 쏘옥 빠지셨네?

팔뚝 살이 아휴~다 빠지고 스타일 사는 것 좀 봐 ㅎㅎㅎㅎ

총리님께서 30 대로 변신했나?\"

 

파란색이 사람을 차분하게도 보이고 날씬하게도 보이나 보다.

목욕하고 저울에 올라가 봤는데 몸무게는 그대론데 남들 보기에, 아니 생각에

큰 일 치루면서 고생했겠다 싶어서 지레짐작을 한다.

살이 뚱뚱하게 쪘다는 것 보다는 기분이 좋다.

그저 여자는 살이 빠졌다면 기분이 좋아져서....ㅎㅎㅎㅎㅎㅎㅎㅎ

 

여러가지 게임과 행운권 추첨으로 무대 그득했던 선물들이 거의 다 나가고

드디어 마지막.

난 그 때까지 행운권 추첨에서 열외가 되어 있었고

기대도 않고 있는데 이번에 동기회에 처음 나온 여자친구가

사회자의 마지막 대상 추첨이 있겠다는 말을 듣더니

\"저거 내가 타면 너 줄께 .

멀리서 왔고 좋은 일 많이 하니까 선물할께\"

우리 반이 다 웃고 있는데 정말 정말 그 애의 번호와 이름이 들리는게 아닌가!!

다른 반 친구들이 다 부러워하고 무거워서 친구가 못 들고 오고 남자친구들이

들고 온 대상은 최신형 전자렌지.

그렇잖아도 집에 전자렌지가 20 년이나 되어서 집을 짓고 이사를 하면서

바꾸려다가 모양은 오래된 거지만 렌지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어서 버리지도

못하고 그냥 쓰고 있었는데 이런데서 교환할 구실이 생기다니...........

정말 나 줄거냐고 웃으며 반문해도 줄거란다.

다른 친구들도 다 있는데서 나를 꼭 주고 싶단다.

딸을 잘 키워서 좋은 가정에 시집보낸 기념으로 , 그리고 할머니들 모시고

잘 살고 있는 수고에 감사해서 선물하는거란다.

마냥 고맙고 좋아서 웃는 일만 했다.

친구야 고맙다.~~복 받을 껴.ㅎㅎㅎㅎ

 

그 친구는 초등학교만 같이 나왔고 중고등학교를 따로 나온 친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가 연애할 때 같이 만나기도 했고 그 친구의

남편도 잠깐 만나 본 적이 있었지만 거의 20 년을 헤어져 살았는데

나를 기억해 주고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 좋아보인다며 축하를 많이 해 준

친구고 ,이번 우리 딸의 결혼식에도 포항에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도

기쁘게 달려와 축하해 준 친구다.

대상으로 전자렌지를 받았고 지난해 힐튼호텔에서는 대상이 접이식 산악

자전거 였는데  나는 행운권이 당첨이 안 되었고 막판에 대상으로

자전거가 남았을 때  그 때까지도 아무것도 못 탄 날 보고 옆에 남자 친구가

\"저거는 네가 멀리서 왔으니까 너 가져가면 좋겠다\"

\"저 자전거 타고 집에 가라고? 너무 멀지 않나?\"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정말로 내 이름이 불려져서 얼마나 \"꺆\" 소리를

지르면서 무대로 나갔던지.........ㅎㅎㅎㅎㅎㅎㅎㅎㅎ

무거워서 못 들고 오는 내게 우리 반 남자 친구들이 우르르 나와서 안아다

주곤 많이도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리 2 년을 대상만 타는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ㅎㅎㅎㅎㅎ

이벤트로 행사가 재미있게 끝나고 멀리서 온 친구들도 떠나고 우리도

헤어지는데 멀리서 바쁜데 참석해 줘서 고맙단 인사를 많이 받았다.

정치하는 친구 , 사업적으로 성공한 친구, 병원 원장님들, 공무원, 전업주부

요식업하는 친구들, 현직 교사, 기업체 중견간부......

직업도 다양하고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다들 안정된 모습들이다.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남편한테 전화를 해서 태우러 오라면서 전자렌지를 얻었다고 하니까

믿지않는 눈치다.

진짜로 친구가 타서 선물해 줬다니까 웃는다.

재미난 친구란다.

 

그리하여 번개처럼 토요일 오후에 동기회갔다가 전자렌지 선물 받고 탁상

시계 하나 더 얻어서 기쁘게 돌아왔다.

새벽 3시 30분에.

늘 이렇게 밤에 갔다가 밤에 돌아오는 바쁜 일정을 소화시키며

언제라도 이기사 노릇을 기꺼이 해 주는 남편이 참 고맙다.

친구들도 남편을 부러워하고 나를 부러워한다.

매번 태워주고 태우러 온다고.

어쩌겠는가 아내의 운전실력이 엉망인 것을......

그것보다는 아내의 외부 출입으로는 유일한 모임이니 믿고 모셔다 주고

모시러 오는 것이란다.

일체의 모임이나 단체에 나갈 시간이 없는 아내가 일년에 두 세번 유일하게

나가기를 즐기는 동기회에 남편은 즐거운 마음으로 기사를 자청한다.

덕분에 장모님께 효도 한번 더 해 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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