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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회 있던 날


BY 둘리나라 2008-03-04

 


 새벽이라 이름 붙여진 시간의 한산함은 거리를 뒹구는 낙엽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차가운 공기는 뺨에 찰싹 달라붙어 추위를 쏟아 내었고, 여민 옷깃 사이로 달려드는 바람은 걸을 때마다 서늘한 바늘들을 몸속에 하나씩 꽂고 있었다. 깨어 있는 사람보다 잠이 든 사람들이 많은 시간.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줌마들은 새벽을 가르며 약속 장소로 모여들고 있었다. 시동을 걸고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버스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모자란 잠을 눕히고 있었다. 가벼운 눈인사와 얕은 웃음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앉은 우리는 강원도로 축구 시합을 가는 아줌마 축구단이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엄마도, 아내도, 며느리도 아니었다. 유니폼을 입고 축구화를 신고 선수 번호를 단,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선수들이었다. 간단한 음료수와 아침밥이 실리고, 과일과 떡이 자리를 잡았다. 잘 다녀오라는 남편들과 여러 관계자 분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먼 길을 떠나는 버스 안에 설렘도 실었다. 좋은 성적을 내고 와야 할 텐데…….

 서른 명의 아줌마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우리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흥분이 교차되어 고속도로 위에 많은 생각들을 뿌려 놓고 있었다. 새벽은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선 손님이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어둠과 밝음의 중간에서 어정쩡한 몸짓으로 어색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하게 변해 가는 풍경에 새벽은 숨을 곳을 찾느라 허둥거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슬며시 웃고 말았다. 방패막이로 내놓은 새벽의 무기는 바로 안개였기 때문이다. 물안개는 더러 보았지만 산의 안개는 본적이 없었기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산을 휘감아 도는 안개는 하늘까지 안보이게 덮어 버렸다. 금방 샤워를 하고 나온 걸까.

 산의 몸에서 나온 하얀 김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앞이 안 보여 조심스럽게 보이는 길에만 의지해 운전을 하고 있는 기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가슴이 벅차올라서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창을 수십 번 닦고 또 닦고, 눈을 유리창에 바짝 갖다 대고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산 밑으로 나 있는 작은 길에 지게를 지고 소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봤다. 어렸을 때 집에 걸린 액자 속에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아니, 금방 그곳에서 튀어나와 그 길로 걸어가시는 것은 아니었을까.

 스치는 풍경들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은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었다. 그저 가슴을 쥐어짜면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려 손등으로 떨어질 듯 했다고만 쓰고 싶다. 새벽의 선물을 머릿속에 담아 두니 아침이 되었다.

 강원도 원주에 도착해서 아침밥을 먹었다. 둘러앉아 먹는 맛에 저절로 손이 갔다. 맑은 공기 속에서 나누는 커피 한잔에 피로가 씻겨 가고,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와 웃음이 아침 햇살처럼 피어올랐다. 아줌마인지라 아이들과 남편에게 전화하는 일도 잊지 않았고, 함께 못 온 아쉬움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 대회가 시작되었다. 주부들은 체력이 남자들과 틀려 한 게임을 전․후반 없이 20분을 뛰었다. 우리는 세 게임을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뛰어야 했다. 기존의 멤버들이 선수로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이때는 정말 한마음으로 손뼉 치고 소리를 높여 우리 팀의 승리를 외쳤다. 감독님은 감독님대로 작전을 짜고, 선수 교체를 하고, 이기기 위한 전략에 바쁘셨다. 선수가 된 우리는 최선을 다해 뛰고, 달리고, 패스를 하며 경기에 임했다.

 다행히 우리 팀은 결승전에 무난히 진출했다. 전국에서 축구를 사랑하는 아줌마들은 모두 모인 자리인데,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 팀이 결승에까지 오르니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여자 축구는 거의 한골 차이로 승부가 난다. 무승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한 골이 정말 귀하고 승패를 좌우한다. 우리는 2승1무로 결승전에 오른 것이었다. 기뻐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창단해서 몇 년씩 운동을 해 온 팀들과 경기를 해서 결승까지 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제 겨우 6개월 된 병아리 팀인데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까. 멀리서 와서 더 기쁨이 컸다.

 울산에서 강원도는 6시간이 넘었다. 피곤함에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게임을 했는데도 좋은 결과가 나와서 모두들 싱글벙글 했다. 결승전은 아깝게 떨어져서 2등을 했지만 운동의 묘미가 무엇인가. 할 때는 최선을 다해 임하고, 결과에는 승복 할 줄 아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아닌가. 이긴 팀을 위해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고 다음을 기약하며 축구 대회는 저녁노을과 함께 막을 내렸다. 내려오는 길에는 캔 맥주 하나씩에다 잠에 취해 밤을 맞았다. 그렇게 축구 대회는 끝이 나고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여기, 이리로 패스.”

 “빨리, 이곳 비었잖아.”

 잔디밭을 가르는 축구화의 뜀박질이 요란했다. 대회가 끝나고 처음 모인 연습은 한층 더 땀을 흘리며 열심히 했다. 그저 축구가 좋아서 모인 여자들, 아줌마들. 오십이 넘은 왕언니는 항상 제일 먼저 나와서 청춘을 과시하고, 자원 봉사를 해 주시는 감독님은 일하다가도 나오셔서 지도를 해 주신다. 자가용으로 선수를 태워 주는 회장님과 꼼꼼하게 살림을 살아 주는 총무님이 있기에 편하게 운동을 할 수가 있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쉬는 날도 연습하는 날에 맞추고, 모두가 마음을 모아서 잔디 위를 달리니, 세상 이치가 여기에 다 들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서로에게 패스를 하며 양보의 미덕을 깨닫는다. 그리고 팀끼리 훌륭한 패스로 골을 성공시키며 협동을 배운다. 둥근 축구공을 차며 살면서 툭툭 튀어나온 뾰족한 가시 같은 나쁜 마음도 둥글둥글 예쁘게 만든다. 검은색과 흰색의 공 속에는 그것을 포함한 여러 색이 숨어 있음을 알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여유도 알아 간다. 이것이 다 축구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운동을 끝낸 후 바라보는 하늘이 얼마나 눈이 부시고 상쾌한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처음에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살이나 빼 볼 욕심에 시작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공과 함께 굴러다니는 몸을 보고도 별 걱정이 안 되고, 연습 시간만 기다려진다. 일주일에 두 번인데 만나는 사람들이 착하고 상냥해서 빨리 가고만 싶다. 수다도 떨고, 집안 이야기도 하다 보면 인생 선배의 조언도 들을 수 있고, 함께 아파하고 걱정해 주는 따스한 인정에서 마음의 위로도 받을 수 있다.

 작은 공 하나가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커다란 변화는 웃음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길 가다가도 텔레비전에서 축구를 하면 멈추어 서게 된다며 웃고,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면 관심이 가더라며 또 웃는다. 살다 보면 왜 인상 찡그릴 일이 없을까.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나서 혼자 끙끙 앓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닌데……. 내 성질을 못 이겨 한숨 쉬던 기억도 제법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축구공에 다 묻을 수 있는 재치가 생겼다. 우리 아줌마들의 얼굴에서 그늘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아마 축구 때문 일 것이다.

 겨울이 왔다. 옷깃을 여미듯 마음도 여미는 계절이다. 이런 때는 땀을 흘려 얼어 가는 마음을 녹여야겠다. 잔디 위를 구르는 축구공과 함께 굴러다니는 내가 겨울을 멋지게 보내는 길은 열심히 축구를 사랑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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