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에는 할머니들과 온천엘 간다.
연세가 있으셔도 기력이 좋으신 분은 스스로 때를 밀고 마무리까지 스스로 하시고
기력이 좀 딸리시는 분은 등을 밀어드리고 가끔 머리도 감겨 드린다.
대부분은 혼자서도 위생문제를 잘 해결하시는 편이다.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는 어느 분의 생일이 있거나 할머니들을 찾아 오신 손님들이
접대비를 주고 가시면 그걸로 돌솥밥이나 중국요리를 먹고 오기도 한다.
오늘은 한분이 출타 중이라서 다음 토요일에 팔순 턱을 내신 할머니의 점심을 먹기로 하고
냉이 된장국 해서 숙주나물을 오이채 썰어 넣고 조물조물 무치고 다시마와 쌈배추에 칼치
속젓으로 양념하고, 고기만두 수증기 올려서 내고 김장짐치랑 점심을 집에서 먹었다.
저녁은 ...
토요일 저녁은 라면데이.
야채를 듬뿍 넣고 육수를 낸 다음 맵지 않은 라면을 삶아서 양파와 대파 팽이 버섯을 첨가한
종합라면을 끓인다.
때로는 감자 넣은 수제비를 얇고 쫄깃하게 하기도 하고
잔치 국수를 김치 송송
계란지단 노릇노릇 얇게 부쳐서 채 썰고
풋호박 살짝 데쳐서 참기름에 조물조물
조선장에 다가 잔파와 깨소금 마늘 고춧가루 넣어서
구운김도 몇 가닥 채 썰어 위에 얹고
멸치 육수를 다시마와 양파, 파 다듬고 남은 뿌리와 버리는 겉잎까지 넣어서
찐하게 우려낸 후 금방 삶은 국수에 붓고
각각의 고명은 식성에 따라 가감해서 먹기도 한다.
토요일은 주로 분식의 날로 정하고 한끼니는 라면이나 국수, 고구마, 감자등을 삶아서
간단하면서도 부담없이 해결한다.
어젯밤의 후속편을 적으려니 또 하루를 꼴딱 세울 것 같다.ㅎㅎㅎ
여섯번째의 이야기는
남편의 깜짝 이벤트로 내가 많이 기뻤던 이야기다.
이 나이(47세)되도록 단 하나의 계모임이나 친목회 모임도 없이 오로지 남편과 아이들의
세상에서 더 이상 외출이 없었었는데 실로 오랫만에, 33 년만에 초등학교 동기회에서
연락이 왔었다.
시골의 자그마한 학교가 아니고 학급 수가 여덟 학급이나 되는 꽤 크고 역사도 100 년이
넘는 학교라 동기회도 많았지만 우리 또래는 그간에 없다가 결성하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을 때 남편은 처음에는 크게 환영을 안하는 눈치.
그래도 내가 아무 모임도 없다는 걸 알기에 이번 만큼은 한번 가 보라고 했다.
동기회 핑계로 친정엄마도 한번 더 만날 수 있어서 두루두루 일석이조?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를 같이 올라간 친구도 있었지만 거의는 흩어져서 얼굴도 가물
가물 기억 저 편의 낯선 얼굴들인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어릴적 개구진 얼굴이 어렴풋이 되살아 나고 장난치고 같이 뛰놀던 어릴적 모습이 군데군데
남겨져 있어서 얼마나 웃었던지....
나이는 오십을 바라보니 주름살도 늘었고 뱃가죽도 불법동거를 하는 지방덩어리들로
베둘레햄이 되었어도 33 년전의 추억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야\" 라고 불러도 흉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정겹던 친구들.
창단식을 큰 호텔에서 하고 정재계로 진출한 선후배들의 축하도 받으면서 자주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 후.
중간에 몇번의 단발적인 모임도 있었지만 10월에는 가을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비가 오는
관계로 친구가 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 한 날.
늘 모임이 있는 날이면 아내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고 모시러 온다고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아내를 둔 남편이 그 날따라 몇시에 어디에서 만나느냐? 몇시에 식사를 하는냐?
몇명이나 모이느냐?.......
질문이 많아도 나는 아무런 눈치도 못채고 아는데로 들은데로 주절주절 일러준다.
우리가 사는데서 두 시간이나 걸려서 목적지에 도착하고 친구들이랑 인사만 잠깐 나눈
남편은 잘 놀다가 마치는 시간에 전화하라고만 하고 친정에 가 있겠단다.
늘 그랬으니까 그러마 하고 대답하고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한참 뒤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옷을 입은 남자가 익숙한 몸짓을 하고는 계단을 올라왔다.
\"어? 오빠야가 또 왔네? 아직 덜 놀았는데?\"
조금 전에 인사를하고 잘 놀아라라고 처가에 간다던 남편이 나타난 거였다.
방금 보냈어도 친구들 있는데서 남편을 만나니 또 반가워서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뒤이어 무슨 길다란 종이 상자를안고 들어오는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개를빼고 포장지 뜯기를 기다리는데.....
아~~~
거기에는 서울에서 새벽에 배달되어 방금 터미널에서 찾아온 뜨끈뜨끈한 통돼지 바베큐가
들어 있었다.
말 그데로 통돼지가 머리와 발목만 없이 반지르르 윤기나는 몸매를 하고 누워 있었다.
얼마나 포장을 멋지게 해 보냈는지 금방 불에서 내려 놓은 듯 일회용 장갑 안에 면장갑을
꼈는데도 손바닥으로 열기가 전해져 들어왔다.
새끼 돼지가 아니고 중 돼지가 되다보니 정말 크기에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아침부터 나보다 더 참가 인원과 점심시간 등을 묻고 하던 남편이 아내 몰래 아내의 친구
들과 좋은 시간을 가지라고 깜짝 이벤트를 해서 온 것이다.
어찌 내게도 모르게 했냐니까 우리집에서 나만 몰랐고 아이들도 다~아는 공공연한 비밀
이었다나?
철저한 보안 속에서 극비리에 단행한 이벤트.
남편이 아이들한테 엄마가 기뻐할 일을 아빠가 하고 싶은데 그것이 통돼지 바베큐다~
어찌 생각하느냐?
당연히 굿 아이디어죠 아빠! 아빠 멋쟁이.
그러면서 아이들은 아빠의 끔찍한 사랑을 받는 엄마가 많이 부럽다고....
썩 미인도 아닌 엄마가 멋진 아빠의 사랑을 받는 비결이 뭘까?
딸들은 결혼을 하면 아빠처럼 23 년이나 같이 산 중고 아내에게 이벤트를 하는 멋쟁이 남편
을 만나기를 원했고, 아들은 결혼을 하고 아내를 아빠처럼 위해 주리라 생각했단다.
심지어 동기회 회장과 임원들도 다 아는 비밀이었다니...
처음 남편으로 부터(용의 주도하게 동기회 회장 전화를 자기 폰에 입력해서 여러번 의논)
회장이 전화를받고 임원들과 상의를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할까봐 조심스러웠는데 남편의
뜻이 아름다와서 결행하는 걸로 했단다.
남편은 회장에게 전화로 아내가 많이 좋아하는 모임이고 동기회 덕분에 즐거워하는
아내를보니 본인이 더 행복해서 고생만하고 바깥바람도 모르고 산 아내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고 임원회의에서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뜻을 배우자 라는것으로 결론을
내렸단다.
그 날 그 통돼지 바베큐로 나는 완전 스타가 되고 친구들은 남편을 존경했고 그런 남편과 사는 나를 부러워했었다.
친절한 남편은 일일이 바베큐를 다 찢어서 접시에 골고루 담아 주고는 냉수 한잔만 마시고
처갓집에서 기다리마고 하고는 잡아도 그냥 갔다.
정말로 깜짝 이벤트가 많이 즐거웠고 그런 선물을 해 준 남편으로 해서 많이 행복했었다.
그 뒤에 동기회 카페에는 감사의 글과 부러움의 글이 엄청 올라왔었다.
남편은 늘 내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주고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줘서 고맙다고.
시부모님들을 몰라라 안해 줘서 고맙다고.
일곱째는
예비사돈댁을 다녀 온 일.
넓은 대지에 예쁘게 지어진 아름다운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도 듣고 정담도 나누었던
방문이 상견례는 아니고 종교가 같으니 같이 예배보는 형식으로 간단히 만남을 가졌었다.
목사님은 인자하신 성품에 조용조용하시고 사모님은 성격이 활달하신 분이셨다.
작고도 아담한 목사님의 서재에서 다과를 먹으며 나눈 이야기들이 언제 결혼합시다가
아니고 아이들의 교제가 이쁘다는 가벼운 만남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것저것 많이도 챙겨 주셨고 우리도 갈 때 성의껏 인사는 차린 것 같다.
최근에 딸과의 통화에서는 조만간에 한번 만나자고 하신단다.
어제는 우리 아이와 사모님의 통화에서는 (아예\" 어머님\"이라고 불러요 아주`) 조만간에
부모님이랑 만나서 식사도 하자신단다.
요즘 자주 통화를 하는 눈치다.
여덟째는
둘째의 수능 이겠지.
탈도 많았고 진땀 빼게 한 둘째가 수능을 치던날 이름만 바르게 적고 실수만 하지말아라고
했고 쉬는 시간에는 반드시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둘째는 소변을 무식할 정도로 참는 편이라 시험 치다가 동동거릴까봐 화장실은 강조했다.
대구에를 보내놓고 하루종일 좌불안석.
첫째는 어찌했던가 생각도 가물한데 둘째는 좀 하는 공부에 성격이 워낙에 튀는 통에.....
부산에 출장을 가는 날이라 집에서 기도도 못하고 왔다갔다 하면서 걱정만 잔뜩.
오후 해가 꼴까닥 서산이 삼켜버린 뒤 남편 휴대폰으로 엉엉 우는 둘째의 톤이 높은 목소리
가 들린다.
어이할꺼나~~
한 순간에 온 몸의 기운이 고무풍선에 바람빠지 듯이 피시식.....
몸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전학까지 하면서 몸고생 마음고생을 한 아인데....
저녁에 풀이 죽어 돌아 온 아이를 같이 끌어 안고 울어버린 엄마.
\"미안해요 엄마. 너무 긴장을 해서 뭐가 뭔지 기억이 안났어요.\"
\"어쩌니? 불쌍해서..\"
\"그래도 어느 대학에 가든지 가서 열심히 할께요. 정말 죄송해요.\"
엄마아빠가 저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한 걸 아는 둘째가 거듭 미안하다고만 한다.
어쩌랴.
이미 시험은 끝이 났고 주사위는 저 만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던져진 걸....
지금은 대학에 지원서를 넣고 발표만 기다릴 뿐이다.
둘째가 가고 싶은 학교에 합격이 되고 저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신나는 대학생활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아홉째는
내가 벌써 생물학적인 여인에서 호적상의 여자로 분류되려나?
한달이면 정확한 날짜에 내가 진정한 여인임을 여지없이 증명해 주던 달거리가 두어달
전 부터 정확도가 떨어지고 혈량도 많았다 적었다 평균치를 못 내고 있다.
다달이 거의 정확하게 있었는데 두어달 전에는 유난히 긴~생리기간과 혈량으로 의아했는데
이제는 패드 한장도 겨우 적실까 말까?
초경이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하기 전에 시작했었으니 거의 33 년을 싫든 좋든
나를 여자로 만들어 준 중요한 월중 행사였었다.
이 쯤에서 거의다 끝나나?
50 쯤에 끝난다고 하던데?
내가 너무 이른건 아닌지, 빨리 가면 패경기 우울증도 일찍 온다고???
내 성격에 무슨 우울증?
이건 홀가분한건지 섭섭한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화장실 위생장에 있는 생리대가 오늘따라 생소해 보이고 소중해 보이는 건 무슨 일인지...
아마 남편이 정관수술을 안했더라면 막둥이를 하나 더 낳아 보자고 했을지도 모르게 나는
애기들을 유난스럽게 좋아한다.
그런데 이젠......
마지막 열번째는 아컴이다.
우연, 우연은 존재치 않는다고 어느 분이 얘길하더라.
단골미용실에서 알게 된 아컴으로 인해 참 좋은 인연과 행복을 만들면서 요즘 정말 기쁨이
넘친다.
닉 네임도 예쁜 여러 님들과 기쁘고 즐거운 사연, 슬프고 가슴 아픈 사연, 고통 중에서도
엄마임을 잃지 않으려 강하게 일어서는 님, 일곱 번 넘어져도 엄마 이기에 여덟번 일어서는 님, 몸이 힘든게 아니고 마음이 더 아픈 님들의 소식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가족으로 뭉쳐진
이 가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축복된 가정인지 새삼 알게 된 것 같다.
부부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과정에서 행복하다고.
완전하고 완벽한 행복이란 애시당초 이 세상에는 없다고 보는게 맞을거다.
행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진정한 행복이 아닌지.
좋은 환경에서 멋지게 시작된 결혼이 아닐지라도 서로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노력과
사랑이 바탕에 깔린다면 어느 곳에 있던지 어떤 환경에 있던지 뜻만 함께 한다면
충분히 행복한 삶을 같이 만들어 갈것이다.
둘이 또 따로가 아닌 둘이 늘 같이...
돈으로도 못 사고 억지로도 만들어지지 않는 가슴으로 부터 행복한 마음이란 이런 것 일거다.
몇 시간씩을 빠르지 못한 타법으로 글을 찍듯이 적으면서도 지루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행복의 그물을 짠다.
낮 시간에는 직장인 마당에서 할머니들과 생활하고 수련생들의 식사도 챙기다가 저녁에
나만의 작지만 큰 서재에서 글을 적으면 영부인도 대통령도 부럽지 않으니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리라.
세상에서 여자는 나만 있는 걸로 하는 남자와 사는 촌 아줌마인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나이가 많아 죽더라도
젊어서 죽는거나 마찬가지라고.
도시의 잘 나가는 사모님들과 비교하는 삶이 아니라
내 방식데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는 생활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집의 10 대 뉴스는 끝이 났지만
내일 또 다른 태양이 떠 오르면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고
반복의 일상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의 일기장이 만들어지겠지.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후회가 적은 새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이틀 남은 올해를 미소로써 보내고 싶다.
아컴의 모든 님들도 행복하시고 늘 반가운 소식이 넘치는 새해에 만나기로 해요.
끝으로 새해에도 더욱 알차고 좋은 아컴으로 해서 더 많은 아줌마들이
행복이라는 아름답고 ...풍성하고 ...달콤한...나라에서 살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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