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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거(2)


BY 개망초꽃 2007-08-05

병실에 있는 막내이모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남편과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쏟아낸 눈물뿌리가 휴지처럼 바짝 말랐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편에 대한 감정과 이모에 대한 감정의 뿌리는 전혀 다른 종자였다. 이모는 링겔팩을 이동식 링거걸이에 걸고 밖에 나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링거걸이를 밀고 있는 나나 이모나 얼굴은 누우런 황토빛이였다. 이모는 유방암에 걸려 있고, 나는 이혼이라는 병에 걸려 있었다.


망초야? 나는 수술을 하고 이런 시를 읊는다.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원망도 많이 했어, 너도 얼마나 원망을 많이 했겠니, 그러나 우리 너무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말자. 이모의 감정 뿌리에서 눈물이 촤르륵 흘러내렸다.


그렇게 막내이모가 암과 싸울 때, 나는 이혼을 했다. 이모가 죽음의 기로에 서 있을 때 나도 내게 걸린 병으로 인해 죽음의 갈래 길에 서 있었야만 했다. 결혼 십오 년 만에 남아 있는 것은 빚뿐이었고, 어린 아이 둘이 양쪽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흰 눈이 살살 바람에 날릴 때 이모는 독한 항암제를 맞았고, 이모의 헛구역질에 눈은 허공에서 빙글빙글 재주를 넘었다. 가로수 아래 쌀가루처럼 쌓인 눈에대고 이모는 구토를 했다. 이모에게 딱붙어 살고 있던 유방암과 멀쩡한 세포까지 죽여야 하는 항암제와 그에 따른 구토는 남편도 자식도 떼어낼 재간도 없었고, 고통을 덜어줄 재주도 없었다. 혼자 고스란히 받아야할 자신과의 끔찍한 싸움이었다.


혼자되는 연습? 그런 건 없다.  혼자되고 싶은 마음? 그런 건 화날 때 화풀이로 내뱉는 소리일 뿐이었다. 별거를 해도 남편이 들어오지 않아도 이혼은 없었다. 애초부터 이혼은 내겐 없었다. 내 사전에 이혼은 없다고, 목이 갈라지도록 소리치던 나였다. 그래, 들어오지 말라고, 차라리 행방불명이 되라고, 차라리 없어져 버려, 그냥 얘들을 위해 살거야. 그랬던 내가 낡고 좁은 임시 법원에 가서 판사가 이혼하시겠습니까? 하는 물음에. 영원히 행복하게 사랑하겠습니까? 주례사에게 대답하던 뜨겁고 붉은 그 입술로 대답을 했다. 한 몸에 붙어 있는 신체의 일부분이었는데 십오 년이란 세월 앞에 뜨겁던 입술은 싸늘해졌고, 붉던 입술은 푸르딩딩 해졌다. 한가정이 남자 하나로 여자 하나로 분리되는 과정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었다.


암도 이혼도 6년이 되었다. 암은 죽었다고 본다. 그 해 흰 눈 위의 토악질은 봄 눈 되어 흔적도 없다고.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오른쪽 유방을 삽으로 반삽정도 퍼내고, 양말을 기운 것처럼 바느질 자국이 남아있다. 휴가 삼일 째 되던 날 이모네를 갔다. 이모는 바느질자국을 브라자를 훌러덕 올리고 내게 보여주었다.

 

막내이모는 암을 삽으로 푹 퍼냈지만 걸어야 산다는 학계에 보고되지 않는 새로운 병에 걸렸다. 점심 먹고 걷고, 저녁 먹고 걷고, 밤에 잠도 안자고 걷는다. 작작 좀 걸어라, 해도 걸어야 산다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이모는 꽃에 미쳤다. 이불도 꽃무늬, 치마도 꽃무늬, 벽지도 꽃무늬, 냉장도 위에도 꽃, 양말도 꽃, 속옷도 꽃무늬, 집안도 꽃, 집밖도 꽃, 이야기도 꽃, 수다도 꽃, 이모네 작은 아들이 꽃, 꽃, 다 좋은데요, 팬티는 꽃무늬로 사지 마세요, 한다. 이모는 나는 예쁜데……. 넌 안 예쁘니? 한다.


여자 하나로 분리한 작업은 내게 이혼녀라 세겨진 불도장을 가슴팍에 찍어 주었다.

걔가 이혼을 했다고? 왜 더 참지 못하고?

망초가 이혼을 했다니까, 학교 다닐 땐 얌전했는데 끼가 있었나 벼?

그 여자가 이혼했다고? 팔자가 드세네, 여자가 문제가 있으니까 남자가 이혼을 해줬겠지…….

전후사정은 썩둑 머리카락으로 잘려나가고, 결과의 단면만 들여다보고 섬세하고 자상하게 참견들을 했다.

나는 혼자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아이들은 내가 키웠는데 큰 아이는 물과 영양분이 부족해 키가 작은데 비해 작은아이는 물만 먹고도 콩나물처럼 키가 커서 다행이라고, 얘들 아빠는 양육비를 몇 달 주다가 단수 예고도 없이 일 년씩 빈 수도꼭지가 될 때가 많지만 지금껏 빚 안지고 살고 있다고. 체머리 흔드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식 아파트를 샀다고, 맨꼭대기층이라서 겨울엔 춥더라고, 이혼할 때 옆구리에 끼고 온 멀건이는 잃어버리고, 지금은 주둥이가 꽃삽 닮은 개 한 마리가 며칠째 생리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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