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지금 태풍이 머물고 있어.
한달 전부터 뉴스에서 장마라고 떠들어 댔었는데
비가 정말 찔끔찔끔 오다 말다 폼만 재고 있길 래
친구랑 둘이서 이왕 비 오는거 시원하게 내리지 뭐 이래, 라고 꿍시렁 댔었거든.
근데 그렇게 꿍시렁 대자마자 태풍이 건너 와 버렸네.
그런데 이 태풍이란 녀석도 변덕이 좀 심해
한꺼번에 미친듯이 퍼 붇다가도 금세 오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또다시 한차례 퍼붇고. 영~ 대담하질 못하다니깐.
한국은 좀 어떠려나? 중부 지방 쪽에 비가 많이 왔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우리집이 뭐 일층짜리 주택도 아니고,
아파트, 그것도 아파트의 제일 꼭대기 층인데 물에 잠길 리가 없잖아?
다들 잘 있으리라 믿어.
난 엄마가 바라는 대로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있어.
엄마랑 할머니가 보내준 음식들이 많아서 아직도 그대로야.
잘 먹을게 고마워. 썩히는 일 없이 잘 먹어야 할 텐데 좀 걱정되네.
보내준 장조림 통조림을 상록이가 \"누나 통조림 하나만 먹을 게.\" 하고
쪽지에 써놓은걸 보고 한참을 웃었어.
녀석, 두 개도 괜찮고 세 개를 먹어도 괜찮은데.
홈매트도 잘 받았어. 근데 그게 말이지 분명 홈매트가 오기 전날까지도 모기를 잡았는데,
홈매트가 오고 나니까 모기가 사라진거야.
그래서 아직 개시도 못해봤어.
이것들이 홈매트의 낌새를 진작에 알아차렸나봐. 대단한 홈매트 파워야!
나고야의 여름은 끈적끈적해. 여름에 더운거야 어딜가든 비슷하겠지만.
여긴 정말 끈-적-끈-적 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져.
한국에선 그런 느낌을 별로 못 받았는데, 여긴 정말 태양이 작.렬. 하는 것 같은 느낌이야.
다행이 지금은 태풍때문인지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서 긴팔을 껴입고 있어.
이 태풍이 지나간 뒤의 더위가 걱정이 되네.
이번 여름휴가는 언제가?
엄마 고향 계곡에서 납작하고 넓적한 돌을 씻어서
그 위에 다가 삼겹살을 구워 먹던 게 생각난다.
남은 불씨에 강원도 찰옥수수를 나무 젓가락에 꿰어서 구워 먹던 것도...
올 여름에도 우리 식구들은 그 계곡을 가겠지?
엄마는 분명 꽃순이를 옆구리에 딸랑딸랑 끼고 갈 테고.
상록인 그 뒤를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가겠지.
나도 엄마 팔에 매달려서 같이 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엄마 딸은 내가 아닌 꽃순인가봐!
길을 가다가 생긴 게 꼭 우리나라 물봉선화를 닮은 꽃을 봤어.
기억나지? 엄마가 한복 치맛자락에 그려 넣었던.
그때 내가 본 물봉선화는 주황빛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 본 꽃은 하얀색에 입술연지를 바른듯한 모양새였어, 것도 꽃분홍색 연지를.
사실 한국에 있을 땐 엄마가 옆에서 이건 무슨 꽃이다 저건 뭐다 했을 때
딴 생각하면서 흘려 들었던 적도 많은데 말이지
여기서 꽃을 보고 있자니 이름이 궁금해 지는 꽃들이 많아.
근데, 물어볼 사람이 없네. 그 흔한 개망초 꽃도 모르니까.
여기도 개망초 꽃이 지천이거든. 하루는 친구랑 걸어가다가 개망초꽃이 있길래 반가워서
\"이게 이름이 개망초 꽃이야. 정말 흔한꽃인데, 살구 앞에 ‘개’ 가 붙듯이 망초 앞에 ‘개’가 붙은 건데, 개 살구는 먹을수 없지만 개망초는 원래 망초 보다 훨씬 예뻐.
망초는 말야 쪼매나게 생겨서...\"
라고 신나서 떠들었는데 말이지....
듣는 폼이 영~~ 옛날에 엄마 얘기를 듣고 있던 내 표정과 닮아 있더라구. 아하하하
배고플때도 외로울때도 엄마생각은 별로 안 나는데 말야.
지천으로 핀 이름모를 꽃을 보면 엄마 생각이나.
좋겠우? 꽃을 보면 생각 난다는게 얼마나 낭만적이야!? 그치!?
주변엔 밭이고 논이고 얕트막한 언덕이 있고, 강이 있고 공원도 있고 꽃들이 있어.
왠지 차분해지고 평온해지는 곳이야.
비가 오면 흙 냄새가 나고, 길을 걸으면 풀 냄새가 나.
아침마다 새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어찌나 말이 많은지...
매미소리도 들리고 개구리 소리도 들려, 그렇다고 아주 시골도 아니어서
집 앞에 큰 마트가 있고, 우체국도 있고 편의점도 몇 개씩이나 되고
온갖 가구며 가전제품을 파는 홈 센터도 바로 눈앞.
버스타고 20분, 걸어서 한 시간이면 시내고 지하철이고...
왠지 엄마가 나중에 늙으면 살고 싶다던 그 풍경이랑 좀 비슷하지 않아?
내가 먼저 선수쳐버렸네. 흐흐 왠지 기분 좋은 걸?
엄마가 봤다면 분위기 좋다고 할 거야. 뭐... 관광지로는 추천 할 순 없지만.
지금은 학교도 마무리를 짓고 있어
종강한 수업도 있고 다음 주가 마지막 수업이고 그 다음주는 시험이야.
시험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심보고.ㅎ
한국에서 내가 가이드 했던 일본 아줌마가 집에 초대를 해주셔서
방학 시작 하자마자 가기로 했어.
엄마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꽃순인 여전히 엄마한테 찰싹 붙어서
엄마 코에다가 대고 제 숨을 내뱉으면서 덥다고 헥헥 대고 있겠지. 킥킥
상록인 여전히 꽃순이의 시종 노릇을 하고 있구? 큭큭
방학 때 집 쇼파에서 늘어져서 자던 내가 교복입고 학교가는 상록이를 향해서
좋겠다야~학교도 가고 부럽다~,했던 것을 기억해 둬서는
얼마전 전화로 내가 8월에 방학한다니까,
우와! 나보다 늦게 하네,부럽다 누나~~,하더라고. 자식, 누나를 놀려 먹다니... ㅋㅋ
그래서 내가 한마디 해줬지. 난 10월달에 개학하는데, 부럽다 일찍 개학해서~, 라고.
여름에 덥다고 아! 아스크림먹고 싶다아~, 하면
\"알았어 사다줄게 뭐 사와? 누나 맨날 먹던거?\"
겨울에 귤을 까면 엄지손톱에 노랗게 물드는 게 싫어서
귤을 들고 상록일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알았어, 까줄게 까줄게.\" 했었는데...
너무 착해서 저것이 나중에 어떻게 세상을 살까 몰라, 하면서
엄마랑 나랑 상록이 잘 때 흉을 보곤 했었잖아.
태풍은 당분간 일본에 머물듯 한 기세야.
다 좋은데 시험이 끝나는 동시에 태풍도 끝났으면 좋겠어.
엄마도 잘먹고 잘자고 잘싸고.
2007년 견우직녀달 열네번째날 새볔
흙 냄새를 맡으며 엄마 딸이
덧붙임 하나.
순 우리나라말로 된 ‘달’ 이름 꽤 예쁘지 않아?
야박하게 6월7월이 아닌
7월은 견우랑 직녀랑 일 년에 하루 만나는 달이라서 견우직녀달이라 했나봐.
요즘 계속 학교프린트건 어디건 날짜를 적을 때 순우리말로 적거든.
친구가 보더니 뭐야 이게? 하길 래
막 가르쳐줬지 순 우리나라 말인데 예쁘지? 하면서... 왠지 기분이 좋았어.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에게 퍼졌으면 좋겠는데...
여기일본도 칠월칠석이 있어. 그날엔 대나무에 소원을 적는 종이를 달아.
그래서 나도 적었지 \'특별한 내일이 오도록\' 이라고...
덧붙임 둘.
미니 홈피에 나고야 주변 찍은 사진 많이 올렸는데 봤어?
무심한 엄마, 좀 들어와서 봐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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