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궁, 능 관람료 현실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53

나는 점점...


BY 일상 속에서 2007-05-29

 

4월 말쯤...

무의미하게 리모컨을 잡고 TV채널을 돌리던 중 어느 홈쇼핑 방송 앞에서 손이 고정되었다.

누군가에게 하나 얻어서 써보고 ‘괜찮다’ 싶었던 제품이 방송되고 있었다.

‘황토 팩’...

구입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여럿 넘겨야 했던 9만9천원짜리 그 상품.

얄궂은 가격이다.

천원이 부족한 10만원짜리 가격이건만...

귀와 마음 얇은 나... 어쨌든 10만원보다 확실히 싼 금액 9만9천원이라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그동안 쉽게 구입하지 못했던 나였다. 하지만 그날은 유혹의 힘이 더욱 강했다.

‘지장수’ 앰플 하나 더 와 ‘믹싱 볼’까지 껴 준다는 말에 솔깃해진 나는 어느새 전화기버튼을 눌러대고 있었다.

주문하고 몇 분이나 흘렀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10만원이면 두 아이의 교육비 중에서도 딸 아이 피아노 한 달 수강료에 속하는 거금이 아니던가.

징검다리 건너듯 띄엄띄엄 일이 생기는 남편의 사업 앞에 부쩍 우울하던 중 사고를 쳐도 제대로 쳤다는 생각에 취소를 하고픈 강한 충동을 느꼈다.

‘까짓것 어쩌다 한번 하는 화장으로도 들어나기 시작한 주름 따위가 뭐 대수라고...’

하면서도... 나는 끝내 취소를 하지 못했다.

핑계가 좋은 건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간간히 친정 부모님께 선물도 챙겨드리고 했던 내가 자식 노릇 제대로 못한 것이 얼만가.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난 아빠의 선물보다 엄마의 선물 고르기가 수월했다. 반면 아들들인 동생들은 아빠의 선물을 수월하게 찾아내서 챙겨드리곤 했다.

큰맘 먹고 주문한 상품의 철회 앞에서 엄마의 깊게 패여 가는 주름이 떠올랐다. 내 나이 서른일곱, 나와 친정엄마와의 세대간격 17년.

그래서 모녀는 자매로 보일 만큼 엇비슷하게 세월을 맞이하고 있다.

늘 엄마의 주름을 걱정하던 효성스런 딸이었던 것처럼 나는 철회하고픈 마음을 엄마에게 선물하자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그런데 상품이 오고나자 또 다른 고민이 밀려들고 말았다.

지금 이렇게 어려워진 생활을 불 보듯 빤히 알고 있는 엄마에게 어떠한 명분을 대고 선물을 드려도 기쁨보다 걱정을 끼치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건 선물이 아니고 근심이 될 터...


그러던 중, 막내 남동생이 찾아왔다. 만삭의 올케는 전화로 대신 안부를 전해왔다. 직장인으로 바쁜 동생이 다가 올 어린이날을 이유로 왔다며 아이들에게 외식과 함께 든든한 용돈까지 챙겨줬다.

동생이 오겠다는 연락을 받은 순간부터 나는 엄마께 어떻게 드려야 할지 고민이던 ‘황토 팩’에게서 해방감을 느꼈다.

오후 늦은 시간, 제 집으로 돌아가려는 동생에게 나는 쇼핑백을 건넸다.


“이게 뭐예요?\"

7살 터울 지는 동생은 어릴 때부터 지금껏 내게 존대어를 쓴다.

“미안하다만 네 것은 아니고... 엄마 선물이야. 어버이 날 엄마 선물은 이걸로 대신 드려.”

“......누나가 직접 드리시지요.”

“지금 이 상황에 이런 선물 드리면 좋다고 하시겠다. 며느리가 시어머님 피부생각해서 준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더 마음 좋으실 거야. 누나도 써보려고 두 박스는 뺐다. 누구한테도 비밀로 하자.”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어버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큰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이번 주말에 집에 내려 갈 건데 누나도 내려와. 같이 보내면 좋잖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집에 내려가서 함께 부모님과 보내는 큰 동생 내외... 내가 누나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어른스런 사고를 갖고 있는 동생이기에 늘 미안한 나다.

“...그래, 그럼 좋을 텐데... 아빈이가 중간고사 볼쯤이라 어려울 거야. 니들이나 다녀와.”

“...매형은...바쁘지?”

늘 때대면 핑계 좋게 빠져버린 남편이 야속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자긴 들 속이 편할까.

동생들은 그런 남편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목소리가 메말라지곤 한다.

“그렇지 뭐... 암튼 그런 줄 알고 부모님께 안부 전해드려. 못난 딸은 전화 드릴 용기도 없다.”

그렇게 마무리가 됐던 얘기였다.

난들 가고 싶지 않은 친정일까...

누구보다 더 가고픈 내 엄마 아빠가 계신 곳인데...

남들 말하길 돈이란 있다가도 없고 있다가도 없는 거라고, 있는 사람 매일 있는 것 아니고 없는 사람 매일 없는 것 아니니까 마음 편히 생각하며 살라지만 뒤돌아 봐도 난 남편을 만나 살면서 풍족했던 때보다 빈곤했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도 없는데...

아무리 착한 동생들이라지만 지들 할 도리 하겠다며 부모님위해서 쓰는데 곁에서 강 건너 불 보듯만 하는 누나... 지들 처 보기에 마음 편할까...

이런 속 좁은 마음으로 있는 딸을 곁에서 봐야하는 부모님 마음은 어떨까 이런 저런 마음에 나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친정.



5월4일...동생들은 이미 휴가를 얻어 내려 간지 하루가 지난날.

남편의 무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15년 동안 결혼생활 속에 간간히 찾아오던 권태기 때문인지 남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술 마시고 늦은 귀가, 남들 출근해서 일할 시간까지 흐트러져 자는 모습...

모든 것이 보기 싫었다.

아빈이의 중간고사도 끝난 주말...아이들의 토요휴업일까지 거기다 토요일은 어린이 날이었다.

어린이 날이라고 뭐 특별할 것도 없을 내 남편을 마주할 자신이 없던 나는 갑작스레 어디론가 가고픈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갈 때가 없었다. 정말 돈 없이 갈 때는 한 군데도 없었다.

내 피를 나눈 가족 곁밖에...

그렇게 해서 내려간 날.

서울서 평택,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건만 점점 왜 그렇게 내게서 먼 곳처럼 느껴지는지...

갈등하다 늦게 출발했기에 도착한 시간이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모두가 나와 아이들을 기다리느라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올케들이며 조카들이 ‘고모’를 외쳐대며 반겼다.

밥상 앞에 앉자 생각지도 못했던 딸이 왔다는 반가운 마음이 큰 엄마는 다 크다 못해 늙어(?)가는 딸의 궁둥이를 토닥거리며 “우리 딸, 와줘서 고맙다.” 하신다. 과묵하신 아빠는 말씀대신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내 쪽으로 밀어주셨다.

샘 많은 올케가 “어머님, 저도 엉덩이 두드려 주세요. 저도 왔는데...” 하며 엄마 곁으로 다가와서 한바탕 웃음이 머물렀다.

밤 11시쯤...

늦은 시간이었건만 중요한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하나 둘씩 방으로 들어가더니 꾸러미들을 들고 나왔다.

큰 동생은 아빠에게 유명메이커 운동화를, 엄마께는 고가의 화장품을 내놓았고 막내는 흰 봉투를 두 분께 똑같이 나눠드렸다. 그리고 어기적거리며 엄마 앞에 눈에 익은 쇼핑백 하나를 더 건네 드렸다.

“뭐냐? 이건... 엄마만 더 주는 거야?”

“네... 이건 어디서 주웠어요...”

“이게 뭐야...아! 이거 목욕탕 가면 여자들 잔뜩 얼굴에 바르고 있더만 그거구나. 이걸 어디서 주웠어?”

막내와 올케가 곤혹스런 듯 보였다. 나 역시 난처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눈치 없이, “아! 이거...” 라며 입을 열고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아이들의 말을 잘라버렸다.

“아, 이거 엄마 유명한 거잖아. 광고 많이 나오던데. 엄마는 좋겠네. 며느리들 시어머니 사랑이 지극해서!!!”

이런 상황이 닥칠 줄 알았다면 아이들의 입단속을 시켰을 텐데...계획에 없던 휴가였기에 무방비 상태였다.

동생들이 부모님께 선물 전달식이 벌써 끝난 줄 알고 있었던 나였기에 더욱더.

선물을 받고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딸 때문에 들어내 놓고 기뻐하지 못하는 부모님들께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는 한 가지뿐이다. 결혼 전까지 철부지로 지냈던 딸의 모습을 재연하는 것.

“아빠, 엄마는 어떠한 선물보다 비싼 딸이 온 것으로 만족하지? 나 보기가 나라님 보기보다 어렵단 것 다들 인정하잖아. 그치 아빠?”

하고 활짝 밝은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그럼, 그럼!!! 딸은 그냥 온 것만으로도 선물이지.”

약주 한잔 하신 아빠의 기분 좋은 목소리에 이어서 곁에 있던 엄마는 또다시 나의 궁둥이를 두드려 댔다.

겉으로 웃고 있는 나였지만 자꾸만 목이 메여왔다. 눈물이 맺힐 것만 같았다.

아무도 오지 않은 남편에 안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남편 역시 처가 부모님께 전화 한 통화가 없었다.

아빠의 사랑은 딸인 것처럼 아영이가 스파이처럼 몰래 제 아빠랑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아빈이 14살, 아영이 9살...

15년 후의 나와 남편의 모습은 어떨까? 효자 부모아래 효자 자식 낳는다고, 자식도리 못하는 우리가 내 아이들에게 효도를 바랄 수나 있으려나...


부모님 곁에서 2박을 하고 올라 올 때, 씨래기며 청국장 가루, 데친 시금치 등등... 배낭이 터지도록 담아주신 음식들을 받아들고 올라오며 난 그 무게의 몇 십 배 되는 마음의 무게를 짊어져야만 했다.

어떻게든 남편과 아이들과 잘 사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다... 잘 하자.... 잘 살자... 눈물을 머금고 엄마가 남몰래 손잡는 척 내게 쥐어주신 동그랗게 말린 지폐를 보고 다짐하며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기력한 상태다.

남편역시 무능력하기는 마찬가지다.

나가 남편을 임할 때의 마음은 늘 반전에 반전이 반복되기에...생각조차 지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일까?

내가 어떠한 사고를 갖고 있었는지도 가물거린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