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릴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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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에 목련꽃이 한창일 때
뒤뜰엔 앵두꽃이 뭉게구름처럼 떠다녔어요.
교실 앞 화단에 황매화가 지면 자주 달개비꽃이 피어났지요.
우린 그렇게 같은 반 교실에서 만났어요.
희수는 내 짝이었고요.
소진이는 내 뒤에 앉아있었고요.
효경인 소진이 짝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앞뒤로 앉아서는
도시락도 까먹고
쉬는 시간엔 이 시를 노래 불렀지요.
“목련꽃 그늘아래서~~~빛나는 꿈의 계절아~~”
희수는 내 짝이라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짝꿍아~~하고 불렀어요.
효경인 두꺼운 안경에 하얀 피부를 가진 조용한 아이였어요.
소진이는 명랑하게 잘 웃던 콧날이 오똑했던 친구였답니다.
우린 서로 친하게 어울려서는
방과 후엔 떡볶이도 먹으러 다녔고
공부한답시고 옥수동 희수네 집에 몰려가서는 노는데 정신을 더 쏟았었지요.
친구들 중에 희수가 제일 세상살이에 앞서 가고 있었어요.
제 1회 대학가요제 레코드판을 가지고 와서 쉬는 시간에 틀어 놓기도 했고
가요 가사를 적어 노래를 배웠답니다.
그래서 희수는 친구들 중에 시집도 제일 먼저 가고,
나중엔 레코드 가게를 차려 열심히 살았지요.
효경인 키가 크고 얌전한 여학생이었어요.
말수가 적고 공부도 잘했던 조용한 소녀였는데
알고 보니 남자들에겐 말도 잘하고 애교가 넘치는 정말 여자다운 여자였답니다.
당연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남자들 가슴을 울리기도 했는데
첫 번째 결혼을 실패했지만 지금은 재혼을 해서 잘 살고 있답니다.
소진이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얼굴도 예쁘고 키가 컸던 소진이는 미국에서 잘 살고 있었어요.
지금은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고 있답니다.
자연을 벗 삼아 들꽃을 꽃병에 꽂아 놓고 지난날의 친구들을 떠올리고 있을 겁니다.
여고 때는 서로 똑같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놀고 사색에 잠기기도 했지만
삼십년이 지난 지금은 사는 모습이 많이 달라 있습니다.
그래도 우린 친구랍니다.
여고시절 그 모습, 그 마음 그대로 남아
오래도록 함께 할 겁니다.
지금 교정엔 등나무 꽃이 보라색 꿈으로 흔들리고,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던 한 그루 해당화꽃이 몽우리를 품고 있겠지요.
목련나무 그늘아래에서 춘추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우리처럼 시를 읊고 있을 겁니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그네들도 우리처럼 여고시절로 남아
나이가 들어 오십을 바라보면 같은 추억으로 친구들을 그리워하겠지요.
여고시절 교정에 피던 이름모를 꽃과
초록 손바닥 나무와
낡은 창가에 흩어지던 빗물과 창밖에 나부끼던 낙엽의 낭만과
냄새 풀풀 나던 재래식 화장실과
풀 먹인 하얀 칼라, 엉덩이 번질거리던 까만 치마,
귀 밑 일 센티 촌스런 단발머리,
문방구에서 군것질거리로 바꿔먹던 회수권.
쫑미야~~~하고 소리쳐 불렀던 친구들…….
강원도 사투리를 따라하던 친구들…….
편지를 주고받던 친구들…….
밤늦도록 가요를 부르다 옥수동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가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될까? 늙어서도 이렇게 만나자.\"
오늘은 유독 그 시절, 그 꽃, 그 노래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