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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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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에서 띄운 편지


BY 개망초꽃 2007-04-30

상아야, 안녕? 편지 잘 받았어.

색연필로 색을 입힌 편지를 읽으며 엄마가 네 나이처럼 22살이 된 것 같았어.

엄마도 그 맘 때 편지 쓰느라고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었거든.

내가 네가 되어 벚꽃 잎 휘날리는 도로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달리기도 하고,

연분홍빛 나고야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 놓기도 했어.


엄마도 새 자전거를 장만했어, 밝은 주황색이야.

꽃순이 태우는 앞 바구니도 제일 큰 걸 달았어.

꽃순이를 태워 한참 가다보면 

꽃순이는 비스듬히 누워 자전거 밖 세상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단다.

자전거 타는 맛을 알게 된 거지. 개 팔자가 상팔자 맞아. 하하

벚꽃은 호수공원에도 많은 편이야.

꽃이 피어 있을 때도 좋지만 꽃잎이 함박눈 되어 떨어질 때가 더 좋아.

꽃잎을 받아다가 주둥이 넓은 유리잔에 띄워 창가에 놓으면 눈처럼 빨리 녹지 않겠지?

늙을 대로 늙어 삐가닥삐가닥 철컹철컹 엄살을 떨던 자전거를 타다가

새로 산 자전거를 타니 나비가 새가 되면 이런 기분일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후훗~~

호수공원 벚꽃은 하르륵 지고, 지금은 조팝나무 꽃이 새하얗게 흔들려.

느티나무 새순이 강아지처럼 귀여워서 너 너무 귀엽다, 하면서 쓰다듬어 주기도 했단다.


너를 보내고 한 동안은 네가 타국 땅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어.

일주일이 넘도록 전화 통화도 할 수 없고, 문자도 보낼 수 없다는 걸 알고서

동해바다 건너 독도를 지나 섬나라 어디쯤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손수 밥을 해 먹고, 홀로 밤에 젖어 있을 너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오더라.

근데 울지는 않았어.

네가 공항에서 말했듯이 엄마는 냉정한가봐.ㅎㅎ


그러나, 저번 주엔 눈물을 많이 흘렸단다.

증조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

연세가 아흔여섯이라 장수를 하셨지만

두 번 다시는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얼굴위에 마구 떨어지더라.

내가 너에게 얘기한적 있었나?

외할머닌 외손주 딸인 엄마를 친딸처럼 보살펴 주셨어.

내가 8살 때 아버지를 잃고, 청상과부가 된 엄마는 돈 벌러 서울로 가시고

나는 외할머니 품에 안겨

소젖처럼 쭉 늘어진 외할머니 젖을 만지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었어.

산 고갯길에 저녁놀이 질 때마다 울던 나를

외할머니는 때 국 절은 앞치마로 눈물을 닦아 주시며

에휴~~우리 애기, 오늘 밤 자고 나면 내일은 엄마가 올 거여, 하셨단다.

내가 성인이 되고 부터 외할머니는

강원도 비탈 밭에 목화를 심어 가을이면 곡식 넣어두는 항아리에 목화솜을

모아 두고 계시다는 걸 내가 스무 살이 넘어 알게 되었단다.

외 손녀딸 시집갈 때 목화솜 이불 해 주신다고 갈고리 같은 손으로 씨를 심고 때양 볕에

김을 매고 목화열매를 따서 차곡차곡 모아 두신 거였지.

양떼구름 같은 목화열매가 항아리에 가득 찰 때쯤 엄마는 네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고,

가을에 너를 낳고 목화솜이불을 덮고 몸조리를 했었단다.

너를 보신다고 증조외할머니는 비포장 산길을 넘어, 완행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또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오셨지.

그때가 서울에 살다가 네 아빠가 도박으로 서울 집을 먼지 털듯 탈탈 털어내고,

성남 남한산성 산자락 밑으로 이사를 갔을 때였어.

너를 안아주니까 입을 쫙 벌려 웃었나봐, 해당화 같이 생겼구나, 하시더라.

그때 너는 순해서 어르기만 해도 까드득까드득 잘도 웃었는데…….

네가 열 살이 넘어도 스무 살이 넘어도 증조외할머니는 나를 만날 때마다

네 안부를 물어보며 해당화 같았는데, 하시며 옛일을 회상하시곤 하셨지.

장례식장에 가던 날도 발인날도 봄날은 눈부시도록 화창했어.

춘천 가는 길가 산들은 분홍 진달래 치마를 입고 있었고,

장례식장엔 벚나무 가지마다 빼곡하게 핀 꽃이 옥수수 강냉이 같더라.

언덕엔 냉이 꽃과 꽃다지 꽃이 어우러져  표현할 수 없는 그 아련함이란...

하늘은 맑디맑았어.

목화솜 이불은 오 년 전에 쓰레기로 변했지만

엄마대신이었던 나의 외할머니는 뼛가루 한줌으로 세상에 남아계신단다.

증조 외할머니가 예쁘다 하셨던 해당화 꽃은 올 여름에도 빨갛게 피겠지.


삼촌들이 네가 외할머니에게 편지 쓴 걸 보더니 생각이 깊다고 칭찬하더라.

외할머니는 네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셨단다.

내가 외할머니의 애잔한 사랑을 느꼈듯이

너도 외할머니에게 같은 사랑을 느끼고 있다니…….

부모님의 사랑은 아래로 아래로 되물림 되나봐. 그치? 상아야?

예쁘고 착하구나. 고맙고…….


상록이도 잘 있고, 꽃순이도 물론 잘 있어.

네가 보낸  편지 속에 꽃순이랑 호수공원 가고 싶다고 썼는데

삼촌들하고는 가고 싶다는 말을 안했다고

자기들은 개보다 못하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단다.


꽃순이는 엄마 꼬랑지고, 엄마 그림자야.

여전히 잘 먹고 여전히 내가 출근하는 시간을 잘 알아서 데리고 나가라고 보채지 않다가

호수공원에 자전거 타러 가는 줄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는지…….

데리고 나가라고 난리를 치는통에...알지? 너도 여러번 봤으니까.

자전거 태워 달라고 앞발을 들어  바구니에 앉히면

(시장바구니인데, 꽃순인 자기 의자인줄 알잖아.)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쳐들고, 고무도 당당하게 사람들을 쳐다본단다.

아주 건방진 표정으로 아주 편안하게 자전거 밖 세상을 바라보지……. ㅎㅎ


상록인 이번 주에 중간고사가 있어서 학원에서 종일 살다시피 해.

학원에서 본 시험 성적이 나왔다고 의기양양하게 성적표를 가지고 와서는

고무도 당당하게 내 앞에 내밀며 아주 건방진 표정으로 엄마를 보더니

편안하게 옆에 앉더라고.ㅎㅎ 시험을 잘 봤다는 거지…….

이번 중간고사가 어떻게 될지…….기대를 해도 될까?


엄마는 도서관 잘 다니고 있어.

복지회관 무의탁 노인 식당보조로 발령을 받았었는데,

도서관에 오기로 한 사람이 펑크를 내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출근을 하게 된 거야.

웃기잖냐??? 화딱지 났었어.

나이만 보고 엄마 능력은 전혀 보지 않은 처사였어.

시청 담당 공무원을 한방 날려 버리려다가 바다같이 깊고 넓은 엄마가 참기로 했단다. 히히


언제나처럼 오늘도 산에 갔다 왔어.

계곡 사이로 개구리 알이 얼마나 많던지 몇 알 건져와서 어항에 넣었더니

상록이는 좋아서 쳐다보고 꽃순이는 신기해서 쳐다보더라.

꽃순이가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앞발로 건져 먹으면 어쩐다니,

하면서 상록이랑 깔깔깔 웃었단다.

네가 알다시피 엄마랑 네 동생은 말이 없어서 집안이 절간 같잖아.

꽃순이 때문에 떠들고 웃게 되니 우리 집엔 꽃순이 없으면 저절로 절이 될 거야.


우린 배터지지 않을 만큼 잘 먹고 있으니,

여기 걱정일랑 붙들어 매고 잘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놀고, 공부도 잘 하그라.


 

2007년 잎새달(4월엔 잎이 돋아나는 달이라 이렇게 부르나보다) 28일

봄날이 너무너무 아까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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