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54

줄다리기


BY 동해바다 2007-02-07


     3.

     \'여보 미안해, 다신 안그럴께\'
     \'야, 이혼해줄테니 빨리 내려와\'
     \'절대 이혼안해줘 네 맘대로 살아봐\'
     \'여보 나 아파, 죽을것 같아\'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로 온 신경이 곤두섰다. 이젠 절대 돌아보지도 않으마,
     나는 이혼을 요구하며 강경한 입장을 비추었다. 거의 한달이 되어가니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걸려왔다. 남아있던 연민은 증오심으로 불타 오르고 이제 목소리만으로도 
     가슴이 콩당콩당 뛰게 되었다.

     9월 한 달이 몇 년을 보낸 듯 길게만 느껴졌다. 
     입고 나온 한여름 옷으로 대충 버텼지만 가을은 성큼 다가와 스산함을 더해만 준다.
     올케언니에게서 얻어입은 옷가지 몇 벌로 줄기차게 버텨 나갔다. 
     나를 받아줄 아늑한 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시댁식구라고 해봐야 시누 둘과 형수, 그녀들은 철저히 그를 버렸다. 남자라고는 남편
     혼자 뿐이였다. 점쟁이는 콩가루집안이 되간다고 했다. 시누 둘은 영적인 싸움이 극대화
     되고 있다. 빨리 교회를 다니라 말한다. 나부터...
     연민으로 감싸주고 어줍잖은 용기를 심어준다고 내 자리를 고수한 것이 몇 년이던가.
     시간이 치유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친정집에 얹혀 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교회문턱을 조금씩 드나들었다. 하지만 찾아드는 것은 울컥임과 내 서러움 뿐...

     일이 필요했다. 돈도 필요했다. 무작정 눈칫밥만 먹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할텐데 어디 일자리 구하기가 쉬운 일인가.
     그와의 줄다리기 속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구인 광고지가 손에 들려 있었다.
     쉽지않은 일자리들, 주제도 모르고 일반 사무직이나 깔끔한 의류판매점을 거들먹거리며
     구직을 하고 있으니 어디 입맛에 맞는 떡이 있단 말인가.

     반찬가게하는 친정언니의 도움으로 며칠 그곳에서 일하고 아예 나보고 그곳에서 눌러
     언니 일을 배우라 한다. 그러려면 일하는 사람 2명을 나가게 해야 하는데 내 상황이
     계속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웬지 반찬보다는 좀더 나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거절하였다. 아직도 배가 불러 있었던 것 같다.

     딸아이 수능은 한달 앞으로 다가오고, 아들은 12월 18일 군 입대날짜를 확정받아 놓은
     상태였다. 마음이 어수선한 가운데 동생 친구로부터 일할 곳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의류할인매장...
     서울 근교 찾아간 그곳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변 조립식 창고매장이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가게안은 골프웨어와 남성복으로 유명한 의류업체의 대리점 겸 할인
     매장인데 전화통화했던 사장님 인상도, 보수도 모든 것이 구미에 당겼다. 나중에 연락할
     테니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성실히 잘 할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집에 와서 기다렸지만 기분이 찜찜하였다. 
     저녁무렵 남성정장을 판 경력부족으로 죄송하다는 전화 한통에 허무함이 몰려왔다. 
     기대했던 터라 실망감 또한 컸다. 모처럼 마음에 든 일자리였는데...

     다음날 올케언니와 배낭하나 질끈 메고 북한산을 올랐다. 
     일 하고픈 욕망은 그득한데 숫자만 더한 나이는 나를 구제하려 하지 않는다. 
     단순노동만  이 할 일이라는 씁쓸함이 더욱 허허롭게 만든다. 홀서빙이니 주방보조같은  
     일에도 뛰어들어야 할 것 같았다. 가려서 뭣하겠는가. 
     닥치는대로 일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밀어 부쳤지만 마음은 자꾸 의류판매쪽으로 기운
     다. 난 장사체질이 아니라면서 했던 3년간의 의류업이 그나마 경력이랄수 있었으니...

     산에서 돌아오니 친정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냐? 이서방이 올라왔는데 어떻게 할거냐.\"
     갑자기 뛰는 심장박동에 판단이 흐려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취해 오늘 올라간다고 말할땐 취중에 한말인 줄 알고 무시했었는데...
     그 몸에 어찌 올라왔는지...
     \'취한것 같지않더라. 얘기하다 화를 버럭내고 나갔는데 심장떨려 죽겠다\'
     못할짓이였다. 나로 인해 온 가족이 크고작은 시달림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친정엄마는 조심스럽게 재산분할을 요구했던
     모양이다. 

     아파트 주변에서 달포만에 만난 그는 병색짙은 초췌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후즐근한 봄잠바를 입고 구부정하게 벤치에 앉아있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냥 당신 보고싶어 왔어. 할말도 없고, 내가 무슨.....그냥 갈게. 봤으니까 됐어.\'
     무슨 긴 말이 필요하랴. 밀려드는 죄책감에 할 말을 다 못하고 고개숙여 버리는 그,
     연민은 이제 없었다. 

     \'이혼해주라, 그렇지 않으면 내게 살 방이라도 하나 마련해달라. 아이들 내가 책임지겠
     다.\'  진심어린 말을 건냈지만 그의 눈빛은 불쌍한 자신을 거두어달라는 느낌이다. 술기
     운이 채 가시지 않아 보였다. 흐려져 있는 판단력으로 무얼 주고 무얼 받는단 말인가. 
     그 후 그는 내려갔고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아이 말로는 술도 마시지 않고 운동하면서 
     반성의 여지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백화점 의류행사도 뛰고, 간간히 언니가게 들러 도와주고 친구도 만나며 나름대로 바삐
     보냈다. 노오란 은행잎이 도로바닥을 가득 메우고 가을을 질주하고 있었다. 
     다행히 할인매장 여사장으로부터 일자리를 소개받아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쉬는 날에는 
     산을 타며 건강을 다지기 시작했다.
     일 자체만으로 행복했고, 귀머거리에 장님에 안보고 안들으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매어 있는 끈이 어찌 쉬이 풀리랴. 


     **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무기력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글쓰기도 괜히 시작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어서야 했습니다. 더 힘든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도 난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할까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