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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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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BY 낸시 2007-02-07

\"잘 갔다 와.\"

\"가는 것은 잘 갈건데 오는 것은 나 몰라. 가자마자 어디로 사라져 버릴까도 생각해...\"

\"또 그 쓰잘데 없는 소리...\"

\"......\"

섭섭한 눈으로 남편을 잠시 더 바라보고 뒤 돌아서서  걸었다.

정말 이번에 한국에 가면 어디로 사라져 버릴까...하는 생각을 곱씹으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동경에서,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꼬박 하루도 더 걸리는 여정이었다.

지루함과 씨름을 하면서 비몽사몽간을 헤매기도 하면서 내 무의식과 의식은 남편이 있는 곳과 현실을 수시로 오고갔다. \'뒷마당에 자라고 있는 상추들을 살펴봐야지.., 빨래 개켜야지..., 현관 문 열쇠가 어떤 거지?... 아, 내가 촛불을 껏든가?... 얼른  돌침대 속의 따끈함 속에 발을 뻗어야지...\'하는 무의식 속의 생각들은 곧 \'내가 지금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대기실에서 졸고 있는 거지...\'하는 의식으로 바뀌면서 피식 날 웃게 만들곤 하였다. 남편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의식  속의 나를 한번 더 돌아보게 하기도 하였다.

 

\"가벼운 뇌졸증이 본인도 모르게 지나갔거나, 아니면 종양이 뇌 속에 자라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두 달 전 쯤 내게 내려진 진단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몹쓸 병에 걸렸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보다 남편에 대한 섭섭함이 더 컸다. 그 섭섭함으로 정확한 진단마저 받아보길 거부하였다. \'그래 나 없이 살아보라지...\'그 마음이 끊임없이 날 파고 들었다. 결국  \'아니야, 남편은 불쌍한 사람이야. 사는 날 까지 내가 아껴주어야 할 사람이지...\'하는 결론을 내리고 진찰을 받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매하였으면서도  섭섭함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던 것이다.

 

언니와 형부를 만나서 남편의 어리석음과 고집스러움을 끊임없이 토해내었다. 언니와 형부는 내 말에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남편을 감싸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원망이 조금씩 수그러 들었다.

남편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했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도 병원에 다녀왔다는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 동안 남편의 전화는 공교롭게도 내가 잠자는 사이에 왔다.

아마도 남편은 내가 여전히 자기에게 화가 나 있는 줄 알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남편이 갑자기 불쌍하다.

화 잘 내는 남편의 모습은 멀리 사라지고  자상한 남편의 모습만 자꾸 생각이 난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나처럼 심통쟁이 마누라가 아니고 사랑스런 아내인데...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가 우습다.

이혼하자고 박박 우기던 모습도 우습고,  침착한 척 하면서 우리 사이가 얼마나 심각하게 멀어져 있나를 설득하던 모습도 우습고, 남편으로 인해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던 모습도 우습고,,,

내 어리석은 모습들의 기억이 재미없는 영화를 보듯 것  같다.

그래 겨우 떨어져서 이틀도 못가 그리워 할 것을...

남편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 본연의 막내기질을 충분히 살린, 사랑스런 아내만이 보낼 수 있는 메일을 보냈다.  

미안하다고,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메일을 보냈다.

언니 말대로  남편이니까 내 꼴을 이십오년이 넘도록 봐 주고 또 여전히 염려해 주는 건데...

남편의 미운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살아 온 것 같아 부끄럽다.

내 사랑스런 모습만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남편의 미운 모습은 잊어버리고, 사랑스런 모습만 기억하는 오늘은 내가 마음에 드는 날이

다.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가 마음에 드는 날만 계속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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