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크리스마스 전 주에 스키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은 만능 스포츠 맨이고
나는 초보자 코스를 겨우 면한 수준이다.
아이들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첫 날 아이들을 스키스쿨에 보냈다.
겁이 많은 딸아이는 마지 못해 가고
재방이는 티브이에서나 보던 걸 해 본다는 새로움에
별 생각없이 따라나서는 눈치였다.
따듯한 남쪽에서 온 우리는 혹 기온차 때문에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릴까봐 내복을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목도리로 꽁꽁 싸매었다.
점심 때 데리러 오마 약속을 하고는
나도 억지춘향으로 남편에게 끌려서 올라갔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 갈 때 마다 몸을 돌려
스키스쿨하는 곳을 돌아보며 올라갔다.
처음 올라 가면서 보니
옆으로 서서 걷기를 열심히 따라하고 있다.
\'흐흐~ 고생들 하는구나....\'
세번 째 올라 가면서 보니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브레이크 잡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재방이가 보이질 않는다.
\'아니, 이 녀석이 어딜갔나?\'
안돌아 가는 허리를 억지로 돌려 찾아보니
한 쪽 구석에서 모자도 벗어 던지고, 잠바도 벗어던지고 ,
목도리도 팽개친 재방이가 구부리고 서서는 눈을 뭉치고 있었다.
\'음.... 재방아... 여기까지 와서 늘 하던대로 하면 어쩌냐 --;;\'
네번 째 올라 가면서 보니
내려오면서 브레이크 잡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모두 한 줄로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데
재방이는 사선으로 저만치 아래 서 있었다.
\'뭐야, 일번으로 내려 간 건가? \'
짧은 점심시간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반응에
오후에도 열심히 배우라고 격려하면서 데려다 주었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연습장으로 갔기 때문에
내 시야에 들어오질 않았다.
오랫만에 하는 과격한 운동 때문에 다리가 풀린 나는
내 몸 하나 들어 오르고 내리기 바쁘다 보니
다행히 금방 시간이 지나버렸다.
남편은 워낙 멀리 간지라
스키 스쿨이 마칠 시간에 맞추어 나 혼자 연습장으로 갔다.
선생들이 부모들에게 한명씩 개인적으로
자세히 코멘트를 해 주고 있었다.
딸아이는 초보자 코스에 갈 준비가 되었으니
내일부터 데리고 타도 좋고
초보자 스쿨에 넣어도 좋으니 원하는대로 하란다.
(기특한 딸래미. 투자한 보람이있군.)
재방이 차례.
갑자기 선생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이러면 난 긴장이 된다. 또 무슨....
\'He is a rubbermade free style skier.\'
(재방이는 고무로 만들어진 자유형 스키어에요)
헉 이게 칭찬이야? 아님 ?
\'무슨 이야기이신지?\'
어정쩡한 표정으로 되묻자
선생이 재방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몸이 너무 유연해서 폼이 안나온다나.
( 그럼 그렇지. 에궁 )
게다가 줄 세워 놓고 돌아서면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
찾아보면 저 아래 구석에 넘어져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서고 있더라고.
(그래 그래 그 장면이었구나. 너 혼자 저 아래 서 있던게 --;;)
칭찬인지 위로인지
아이가 스마트해서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해보면 되겠다 싶어서
자유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 보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란다.
(에구 걱정은.무슨.... 맨날 있는 일이구만)
결국 그 창의적인 학습태도 덕분에 오늘도 헛 돈 썼구나 싶었다.
선생이 얼마나 짜증스러웠을까 싶어서 눈치를 보니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다음 날
재방이는 하루 더 강습을 받으면 도움이 될꺼라는
친절한 권유를 물리치고 초보자 코스에 함께 올랐다.
딸아이는 속도는 느려도 한 번 넘어지지도 않고 잘도 내려온다.
이뻐서 쳐다보다가 재방이를 찾으면
저 아래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때 마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친다.
\'안녕 재방아>>>> 오늘 아주 멋있다>>>>\'
내 아들이지만 도대체 모르겠다.
창의성이 만발해서 지 멋대로인 이 아이의 매력이 무었인지.
한 번 같이 놀아 본 사람들은 모두 귀여워서 어쩔줄을 모른다.
오후에는 중급자 코스를 가겠단다.
나는 온 몸이 아파서 기력도 없는데
남편은 저 높이 가 버리고
할 수 없이 아이들과 대책없는 모험을 할 수 밖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 하는 꼴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왜 재방이가 고무로 만들어졌다고 하는지 확인 할 수 있었으니....
폼은 어설픈데다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구석에 쿡 쳐박히고
그래도 다시보면 또 내려가고 있고....
그런데 어디 한 군데 멍든 곳도 없고, 아픈 곳도 없고
근육통도 없고.
너무 심하게 넘어졌다싶어 급히 따라가 보면
자기가 왜 넘어졌는지를 아주 과학적으로 설명 해 주질 않나.
어쩌다 내가 넘어지며 코치를 해 주질 않나...
저녁에 점점 심해지는 근육통을 호소하며
아이구 아이구 하며 돌아다니니
눈을 반짝거리며 재방이가 말한다.
\'엄마 선생님이 스키는 모든 근육을 쓰는 운동이래\'
어이구 그래 너는 과학적인 고무인간이라 좋겠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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