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 되면 5년차 직장인이 되버리는 20대 후반에 한 여인네..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면서 어쩌다보니 5년이란 시간동안을 한곳에서 나름 잘 버텼다. 아..그랬더니 팀내에서 최대 근속 일수를 자랑하는 그런 놀라운 사람이 되버린게 아닌가!
남들은 1년정도 회사를 다니다가도 조금만 마음에 안들면 잘만 때려친다는데, 이놈에 모질고도 모진 극단적 우유부단함과 귀차니즘은 회사를 옮기는것도 맘편하게 만들어주지를 않았다.
하여튼 그렇게 4년 이상 회사를 다니다보니 온몸에서는 재충전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신기라도 들렸는지 온몸에 살이 쭉쭉 빠져서 피죽도 못얻어먹은 (본인이 말하길 월남한사람같다고나 할까..)꽃제비가 되어버리니.. 모두들 안타까울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도 예전에 사놓은 옷들이 너무 헐렁해져서 못입을 정도가 되버렸고,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쉬어보겠는가\'라며 배 째라라는 심정으로 회사에 한달간 휴가를 신청했다.
뭐 그때는 니네가 휴가를 안주면 내가 나가던가, 아니면 허락을 안해도 내 맘대로 휴가를 쓰면 짤라버리던가라는 배짱도 있긴 했었고, 또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을 대신 해줄만한 인력도 없었기에 어느정도 자신감이 있던던 터. 무사히 한달간의 건강을 챙기겠다는 일명하게 뻥튀기 휴가를 얻게 되었다.(만세~!!)
휴가를 얻었으니 왠지 할일이 많아진것같은 느낌. 남들은 이 좋은 기회에 멋지게 해외여행을 가라는둥 이것저것 옆에서 부채질을 해댔고 나도 그 부채질에 호흥하듯 이리저리 날라다니고 싶었지만 그동안 미뤄왔던 눈밑 지방을 없애는 작업부터 제일 먼저 착수했다. 내 십몇년동안 이 날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던지..
이 눈및 지방이라는게 별게 아닌것 같더라도, 어린나이부터 있었던거였기에 제 나이보다 보통 세살 이상은 띄엄띄엄 올려받거나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데 피곤해보인다는 소리를 듣는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진 찍거나 안경을 벗으면 내 얼굴인데도 보기 싫을 정도로 내가 나를 외면하는 이 못난 자존심에 용기를 팍팍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거였다. 그동안 틈틈히 병원을 알아봐왔었기에 빨리 수술날짜를 잡고 쉬기 시작한지 삼일째 되던날.. 연예인보다도 더 바쁜 취미활동 스케쥴을 가지신 엄마와 병원에 가서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짧고도 살짝 긴 수술을 마치고 어지럽게 집에 귀가. 집에 와서 내 몰골을 보니 이건 인간이하의 모습이었따. 지방제거로 인해 눈 흰자에 실핏줄이 모두 터져버려서 흰자위에 흰색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눈 주변은 k1선수랑 한판 한 것처럼 시퍼렇게 멍이 들었으니 내가 무슨 정신이 있었겠는가. 밖에도 못나가고 집에만 누워 맹찜질과 온찜질을 번갈아가며 멍을 없애고 실핏줄을 없애고 흉터때문에 아픈 눈을 어루만지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휴가에 이주가 후딱 가버리고 말았다.
이주가 지나고 나니 추석 한주가 눈깜짝 하니 사라져버리고..
남은건 달랑 한주.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 황금같은 휴가를 끝내버릴 수는 없다. 이러면 안돼. 어떻게 얻은 휴간데, 어떻게 내가 요따구로 시간을 보내버릴 수 있단 말이야. 그건 안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우선 피폐해진 내 외모부터 어떻게 바꿔보고자 미용실로 향했다.
한달 쉬는동안 제거 수술을 받느라 지갑도 비어버렸고, 싼게 좋다고 동네 미용실 모닝파마를 이용하기로 선택! 다른날과 다르네 아침부터 일어나서 씻고 동네 미용실로 향했다. 뭐..추석도 끝나고 다들 바빠서 사람도 얼마 없겠지 하고 문을 연 순간 왠놈에 동네 사람들이 죄다 나와서 머리만 하고 있는지.. 거기다가 일하는 사람은 달랑 두명. 그래도 이 동네에서 머리를 해본곳은 여기밖에 없는지라, 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죽치고 앉아서 머리를 하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잡지를 뒤적거리며 마음에 드는 머리를 찾아서는 원장아줌마(이 아줌마한테 받기 싫었다.) 한테
\"이 머리 무슨 파마예요? 디지털 파마라는게 이렇게 나오는게 맞아요? 이렇게 자연스러우면서 스타일리쉬한 머리가 나올 수 있는거예요?\"
하고 물었더니 키메라 화장을 한 원장아줌마왈 무조건 그렇단다. 조금만 집에서 손보면 다 그렇게 예쁘게 나올 수 있다며 자기만 믿으란다. 현란한 손동작으로 손바닥을 앞으로 뒤집었다가 뒤로 뒤집었다를 반복하면서 그 파마를 하면 말릴때 앞으로 꼬면 앞으로 꼬여서 예쁘고, 뒤로 꼬면 뒤로 꼬여서 태가 나 예쁘다며 나도 사진속 여자 모델처럼 될 수 있다했다.
그말에 신이 났던 나는 오래 기다렸던것도 까맣게 잊은채 앉아서 예쁘게 머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싼값에 이렇게 머리가 나올 수 있다는데 안신날 수가 없지 않은가? 머리에 롤을 말고 기다리는 동안 재미로 다른 아줌마들 머리하는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60대 초반 아줌마 머리를 상담하고 있던 원장 아줌마가 그 아줌마한테 나랑 똑같은 파마를 추천하며 나한테 했던 말과 동작을 그대로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때부터 스물스물 밀려오는 몬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나름 아가씬데.. 좀 싼값에 머리하러 동네로 오긴 했지만 설마.. 아줌마 스타일로 해주지는 않겠지? 혹시 내가 애엄만줄 알았나? 화장이라도 하고 왔으면 아가씨로 봤을라나? 하며 온갖 시나리오를 짜가며 나랑 같은 파마를 하는 그 아줌마를 주시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두려움이 부풀어만 갔다. 그렇게 두시간 반쯤(?)이 지나자 원장 아줌마가 중화제를 발라주고는 머리를 감겨서 거울 앞에 나를 앉혔다.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는데 이게 왠걸? 이건 내가 아까 잡지에서 봤던 그 머리랑 완전 딴판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줌마들이 오래오래 파마기를 간직하려고 뽀글뽀글하게 마는 파마가 내 어깨죽지까지 내려오고 있는게 아닌가..
화들짝 놀란 나..
\"이게 디지털 파마예요? 잡지에 있던거랑 다르잖아요. 이건 아줌마 머리같예요\"
그랬더니 원장아줌마 아주 호들가바 스럽게 왈
\"어머 언니.. 센스없게 어떻게 이게 아줌마 머리야.. 이게 얼마나 컬이 예쁜 머린데.. 처음이라서 그렇지 이틀 후에 머리감으면 진짜 예쁜 컬이야. 이 디지털 파마가 컬이 살아있어. 내가 아까 그랬잖아 집에서 손만 좀 보면 정말 예쁘다고. 잡지에 나온 사진들 그것도 다 드라이로 손을 보니까 그렇게 나오는거지.. 언니도 손보면 그렇게 돼.\"
라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아니.. 누가 파마를 해서는 맨날 드라이기로 머리를 세팅하면서 다니냐고요. 잡지랑 똑같이 나올 수 있다고 그래놓고서는 아까 스쳐지나가는 말로 손을 조금 보면 된다는 말을 이렇게 비중이 큰 말로 바꿀 수 있는거냐 이말입니다요.
계속 머리에 불만을 가진채 거울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니까 옆에 앉은 할머니(진짜 할머니였다)를 붙잡고는 예쁘게 나오지 않았냐며 내 머리를 칭찬까지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 할머니 마지못해 예쁘다며 파마가 잘 안풀리겠다는 강력한 말 한마디를 나한테 날려주기까지 했다.
우유부단한데다가 소심하기까지한 나는 끝까지 강력하게 불만을 표시도 못한채 양머리를 해서는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
서글픈 마음에 좌절모드로 집구석진곳에 앉아있으니 학교에서 돌아온 남동생이 내 머리를 보고는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데우스 머리스타일이 컨셉이었나며 한바탕 비웃고는 지 폰에 내 머리 사진을 찍어가버렸다.우울할때 즐겁기 위해 보기 위한 코믹사진이라나..
그나저나 난 다음주부터 출근을 해야하는데.. 도대체 이 머리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양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빗질을 엄청나게 해대고 하나로 묶어서 쪽진것처럼 말고 있긴 한데..
돈은 돈대로 쓰고..
상처는 상처대로 받고..
이래서 친구들은 시내에 나가서 머리를 하는건가..
하아.. 한숨만 절로 나오고.. 오늘도 좌절모드로 집구석에서 빗질만 하고 있다.
에이.. 진짜 요따구로 해놓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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