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본 것, 터득한 것 경험한 것을 잊지 않고 뇌에 저장을 한다면 뇌는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아마 뇌가 과부하가 되어 뇌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별스런 상상을 해본다. 천만다행으로 하느님은 망각이라는 절묘한 기능을 우리 뇌에 추가해 주셔서 인간은 적당히 저장하고 적당히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한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망증이라는 기능이 강해지니 탈이다. 나도 이삼십대 전후에는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곧잘 듣곤 했는데 불혹이 지나고 지천명이 가까워지니 뭘 깜박깜박 잊는 경우가 많다.
가끔 그림소재를 찾고 싶을 때, 카메라를 들고 섬진강 주변과 농촌마을을 훑고 다닌다. 헐렁한 모자를 뒤집어쓰고 디지털 카메라를 챙겨들고 섬진강을 향해 달렸다. 섬진강은 언제 보아도 단아하고 정갈하다. 김용택 시인의 표현대로 누이 같은 후덕함으로 수선스럽지 않고 조신하게 흐르는 강이다. 강을 경계로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눠지지만 이웃동네이고 손짓만 해도 왔다 갔다 하는 아랫마을 윗마을 정이 휘감아 도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 강가의 하동 솔밭의 푸름이 나를 유혹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배를 내밀고 오지랖 넓은 이웃 아주머니처럼 지나는 사람들이 다 쉬어갈 수 있을 만큼 푸짐한 솔밭이다. 어느 유치원에서 자연학습을 나왔는지 노란 병아리들의 재잘거림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움직이는 모습 그대로가 포즈이고 자연미이다. 웃고 떠들고 노는 모습이면 그 이상 좋은 순간의 포착 감이 없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디지털 카메라로 몇 컷을 눌렸을까 배터리의 에너지가 다 소진되었다는 빨간 경고가 들어왔다. 카메라의 동작이 멈추자 나는 가방을 뒤졌다. 아무리 손을 넣어 휘저어 봐도 배터리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가방을 훌렁 뒤집었다. 우르르 잡동사니가 다 쏟아졌지만 배터리처럼 생긴 것은 흔적조차 없다. 순간 나는 주먹으로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멍청이…….
집에서 막 나오려는데 친구 한데서 전화가 왔다. 전화는 꼭 외출을 하려고 나서면 벨이 울린다. 섬진강 촌 아낙의 얼굴이 뭐 그리 볼 게 있다고 얼굴 한번 보여주라고 성화다. 모임이 있다는 얘기며 누가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둥 아들이 군대에 갔다는 둥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통화를 끝냈다. 친구와 통화중에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배터리는 전화기 옆에 슬쩍 놓았던 모양이다.
사진 찍기는 물건너 갔고 섬진강 유람이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백사장으로 내려갔다. 강물은 유리알처럼 반들 반들거리며 넘실대고 백사장은 화색 좋은 새색시 같다. 발밑에 삭으락 거리는 고운 모래 감촉은 신발을 벗게 한다. 주저 없이 샌들을 벗어 손에 들었다. 발바닥에 스며 오는 부드러운 모래감촉처럼 내 기분도 감각적으로 모래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모래를 밟고 강물의 유연함을 함께 바라볼 동행이 있었다면 섬진강의 운치가 배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고 느낄 즈음 저 멀리 가슴께 까지 물에 온몸을 지탱하고 재첩을 잡고 있는 아낙들이 보였다. 섬진강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드문 희귀한 모습이다. 나도 이곳 섬진강 가에서 처음 대한 풍경이니 가까이에서 재첩 채취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강바닥을 파고들듯이 내려다보며 재첩 용 커다란 끌채로 강바닥을 훑는다. 보통강의 하류 쪽에는 많이 오염되어 맑은 물에서 자생하는 재첩 같은 밑물 조개류는 살아내기 힘든데 유일하게 섬진강에는 바다의 짠물과 민물인 강물이 만나는 하류에 재첩이 살고 있어 강물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강물 속이 고요한 듯이 보이지만 강물은 끊임없이 생명을 품고 잉태와 번식으로 강은 움직인다.
몇 번이고 끌채로 강바닥을 훑고는 끌어올린 재첩을 훌렁 훌렁 흔들어 자갈과 씨알이 작은 재첩은 추려내고 함지박에 챙긴다.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아주머니를 불러 재첩을 팔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판다고 한다. 참 수지맞은 날이다. 섬진강 가까이에 살고 있지만 섬진강재첩이 대부분 예약판매로 생산량이 한정되어있다 보니 원조 섬진강재첩은 먹어보기는 힘들다. 가격은 비쌌지만 신선한 재첩을 얻었기에 잠시 전의 내 머리를 쥐어박을 만큼 심란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횡재 맞은 걸음으로 백사장을 빠져나왔다. 저녁 메뉴로 부추를 동동 띄운 재첩국과 재첩 알갱이로 새콤달콤하게 묻힌 재첩 회를 먹을 생각을 하니 행복하다.
살다 보면 어디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그런 것뿐이겠는가. 야외스케치를 나가서 팔레트를 빠뜨리거나 붓을 씻어 놓고 가져가지 않아 하루 내내 빈둥거리다 오는 경우도 있다. 외출을 하다 가스 위에 냄비가 올려 져 있지 않나 되돌아와서 확인하고 간 적이 부지기수다. 나의 건망증을 잘 아는 남편은 중요한 물건이나 고지서 따위는 나에게 맡기지 않는다.
십여 년전 이었던가 모 철강회장의 비리연루 청문회가 떠오른다. 청문회가 끝난 뒤 그분의 별명이 ‘모르쇠’가 되었다. 자신이 로비한 거물급들이야 왜 기억을 못 할까 만은 그 상황에서 노인이 기억력을 되살려 다 내뱉은 들 자신의 면죄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술수였겠지만 어쩌면 더러는 정말로 그 노인도 잊어 버렸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의구심도 드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나의 고질적인 건망증에 머리를 칠 또 하나의 일이 있었다. 몇 달 전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수납하는 공간박스세트를 주문했다. 물건이 배달되어 왔는데 품질도 허접한 불량이 섞여있었다. 그래서 반품통보를 하고 물건을 배송 지로 보냈다. 이런저런 일로 그 물건에 대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지내다 까마득히 그 반품 건에 대한 것을 잊고 있었다. 반품을 했으면 당연히 물건 값을 되돌려 받아야 하는데 그곳에서도 내게 반품 값을 되돌려준다는 통보도 없었고 나도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쇼핑몰에서 그 공간박스를 보다가 “맞다 그때 그 박스 물건 값” 하는 생각이 퍼 득 떠오르는 것이다. 벌써 3개월이 지났을 동안 난 까마득히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통장을 아무리 살펴봐도 반품 건에 대한 환불금이 찍혀있지를 않았다. 또 내 머리를 쿡쿡쿡 쥐어박았다.
건망증에 대한 대비책으로 내 나름대로 여러 가지 예방책을 써보기도 한다.중요한 서류니 공과금 영수증 따위는 방의 한 곳에 따로 박스로 명패를 붙여두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서류나 공과금영수증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것을 명시 해 두었다. 행사니 약속 등을 항상 보는 거울에 선명하고 눈을 자극하는 글씨로 메모 되어 있다. 그리고 내 가계부는 일기장 겸 가계부로 활용한다. 그곳에 하루 지출을 기재하는 것은 물론 이지만 오늘 누구와 어디서 만났고 또 무슨 일로 몇 시까지 있었다는 것을 꼭 기재해둔다. 그렇게 해 두는 것이 한참 지난 후에 기억이 가물 해질 때쯤 들춰보면 아 그날에 무슨 일로 누구와 동행을 했다는 기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건망증도 습관인 것 같다. 그것을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려니 버릇이려니 하고 버려두는 것보다 자기 나름대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으면 훨씬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터득해가고 있다.
살다 보면 잊는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순리인지 모르겠다. 항상 나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건망증이 성가시고 나를 당황하게도 하지만 한편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주기도 한다. 한번 잊었던 것은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두 번 세 번 자신에게 세뇌를 시킨다. 나의 경우 건망증은 바쁘게 서두를 때 가장 취약하고 외출을 하기 전에 반드시 외출의 목적에 필요한 물품 소용되는 모든 것들을 한 번 더 점검을 해보게 된다. 나이 들어가면서 건망증이 자연스런 순리라면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나와 동반으로 내 여정 길의 동무로 삼으며 함께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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