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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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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 날마다 꾸는 꿈


BY yeppy1 2006-09-07

어린시절, 내가 생각하는 꿈은 쉽사리 가질 수 없는 아주 예쁜 색의 그 어떤 것이라 생각했었다. 막연히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버거운 형편에 꿈이란 사치일 수도 있었다. 아니, 꿈이란 걸 입에 올릴 여유가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만 같다. 단지, 그날의 하루 세 끼를 어떻게 잘 해결했는가가 아주 중요한 문제이던 시절이었다.
검정고무신에 책보를 들고 시오리 길을 걷던 내게 초등학교 시절이란 부끄러움 그 자체였다. 친구들은 예쁜 가방에 화려한 구두나 운동화를 신었는데 나는 마치 원시인처럼 초라한 몰골로 다녀야했다. 부끄러웠다. 즐거움보다는 내 몸을 꽁꽁 감싸고 있는 부끄러움 때문에 산다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가 못했다. 적어도 또래보다 영악했던 내게 가난이란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같은 것으로만 여겨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들로 산으로 야생마처럼 뛰어다녔고, 좀 더 자라서는 농사일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다보니 날마다 보는 산, 강, 들이 너무도 바라보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까, 어머니는 겨울맞이 털신 한 켤레를 사다 주셨다. 발목에 노란 털이 달린 빨간 털신... 그 털신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모두 잠든 사이 털신을 신고 마루에서 뛰다가 결국 어머니께 꾸중을 심하게 듣고는 그대로 껴안고 잤다. 삭막한 산골소녀였던 내게 있어 처음으로 맞이했던 꿈은 바로 그 털신이었다. 어찌나 행복한지, 좋은지 세상 모든 걸 다 주어도 바꾸지 못할 소중한 털신. 털신 덕분에 나는 얼른 아침이 되어 학교로 달려가고 싶었다. 마땅한 겨울잠바가 없어도 좋았다. 그저 그 털신을 신고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갈 그 시간을 위해 밤잠을 설치며 아침을 맞이했다.
학교에 도착해 아직도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친구들 앞에서 보란듯이 털신을 신고 달렸다.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몇몇 친구들의 그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다행인 것은 나보다 더 가난해서 육성회비 조차 제때 내지 못해 교무실에 불려가던 시절, 단 한번도 이름이 불리워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유일하게 나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었다. 옷을 잘 입은 친구가, 머리에 퍼머를 한 친구가 교무실에 불려가면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그래, 난 너처럼 육성회비가 밀리진 않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어느 때부터였던가. 담임선생님은 장래희망이란 걸 조사했다. 선생님이 희망의 종류를 죽 불러주시면 그 중에 나의 희망사항에 손을 들면 됐다. 그러면 나는 정치가가 되었다가, 시인이 되었다가,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드디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얼음 녹듯이 스스로 작아진 내 꿈은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맥도 학연도 없는 나에게 \'평범한 회사원\' 조차도 과분한 것을 느끼던 순간 세상에 대한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남들보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직장생활을 했건만 삶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죽음앞에서 되돌아 온 순간도 있었고, 아껴 모은 돈을 모두 남에게 잃게 된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의 작았던 보이지 않던 꿈들은 모래알처럼 온 세상으로 흩어졌다.

어느날, 우연히 접하게 된 책 속에서 나는 스승을 발견했다.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선물은 바로 지금 \'현재\'라는 선물이란 것을 배웠다.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뒤늦게 철이 든 느낌이었다. 세상은, 삶은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바라보기가 너무도 지루했던 산과 들이, 작은 풀꽃마저도 소중하게 다가올 때 내 나이는 이미 마흔 고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정 내가 꿈꾸었던 직업을 가지지 못했어도 나는 후회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그 꿈을 이루기위해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았기에.
지금 나는 날마다 꿈을 꾸며 산다. 오늘의 소중함을 깨달은 내게 있어 꿈이란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들을 꿈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어린시절, 털신 한 켤레에 마냥 행복했던 시절엔 털신 한 켤레가 나의 꿈이었었고, 사경을 헤매던 시절엔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었다. 진정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본 세상엔 높고 낮음이 없었다. 이웃을 살펴볼 줄 알고 또 나늘 반성하며 오늘을 즐겁게 살면 이것이 곧 꿈의 성취란 걸 깨달았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작은 꿈을 꾼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감사하고, 내가 숨쉴 수 있는 것이 행복해서 꿈을 꾼다. 이 모든 편안함이 곧 나의 꿈의 조각들이 뭉쳐진 것이라 믿는다. 꿈은 곧 내 마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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