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현관옆에 있는 신발장 문을 열고 오래된 신발을 버려야 하는 지 말아야 하는 지
고민하고 있던중이였다. 바쁘지 않으면 운전 좀 해줄 수 있습니까... 하는 윤의 말에 그러겠다고 흔쾌히 답을 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버릴 것을 찾지 못하고 오래 전 신었던 감청빛 운동화를 내 놓은 채 신발장 문을 닫았다.
집 밖으로 나오자 팔에 깁스를 감은 윤 이 3동 아파트 슈퍼앞에 서 기다리고 있었다.
윤은 도면을 들고 현장에서 작업지시를 하던 중 이층에서 인부가 등에 지고 나르던 벽돌이 떨어져 팔목이 부러졌다고했다.
정말이지 큰일날 뻔 했어요. 했을 때 윤은 인부가 떨어지지않고 벽돌이 떨어진게 다행이라고 했다.
목적지가 상주시청이라고 했을 때 나는 윤에게 국도로 가겠다고 했다.
윤 은 <좋으실대로 하십시요.>라며 웃었다.
윤은 기분좋게 말을하는 장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 어느 누가 들어도 짧은시간안에 그의 편이 되고마는 매사가 긍정적인 사람이였다.
어느 날은 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좋아 전화기를 귓속에 묻히게 할 작정으로 힘을 주고 가까이 하다보니
전화기가 귓볼에 눌려 끊어진 적도 있었다.
이따금 윤의 웃음소리를 훔치고 싶어했던 내 마음을 그는 모를 일이다.
비가 조금 씩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 해 봄, 그야말로 무슨 봄바람이 불었는지 서울 종각에 있는 소설가선생에게 글쓰는 공부를 하러 다녔다.
한주일에 한번 씩 찾아가는 그곳에서 나처럼 소설공부를 하러 온 윤을 만났다.
나는 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인접인 군북리에 살았다.
서울 가는 길은 기차를 이용했고 올 때는 윤의 차를 타고 함께 내려왔다.
그해 여름 병중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을 내 생활의 일직선에 세워놓고 소설공부를 접었다.
언제나 시작은 좋았으나 끝을 맺지못하는 게 내 생이 부실했던 최대의 이유였다.
가끔씩 윤에게 전화가 왔다.
짧았지만 그 시간을 기억하는건 유쾌하지 않았기에 윤의 전화를 별로 반갑게 받지 않았다.
주로 내 대답은 왜? 무슨 일로? 라는 식이였다.
그는 할말을 찾지못해 더듬거렸지만 언제나 잘지내야한다는 안부를 놓고는 끊었다.
어느 날은 조심스럽게 인터넷 <다음>에 소설가 지망생 카페를 개설했는데 혹시 도움 될 지 몰라 알린다는 말을 전하는 윤에게 관심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쓴 소설은 한번도 읽어 보지 못했지만 그가 전화로 하는 말을 듣고 몹시 친절한 사람이고 속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보은에서 상주가는 길은 내게 익숙한 길이였다.
몇 년 전인가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상주 넘어 가는 고개길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오토바이와 충돌한 적도 있었다.
그 고개를 넘어야만 나오는 작은도시에서는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는 이도 없었는데 위험한 고개길을 타고 넘어갔다.
속리산 말티고개처럼 구비구비 도는 구티재를 넘어섰다.
말없이 앉아있는 윤에게 나는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했다.
말 잘듣는 아이처럼 윤은 한쪽손으로 담배를 꺼냈고 불을 붙였다.
오른쪽에 보이는 저 학교는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한때는 초등학생 전교생이 오백명이 넘은 적도 있었대요.
이 산골에요? 윤은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고 해요. 지금은 조용하게 비어있는 이 동네가 천지사방 어른들과 아이들 소리로 북적거렸대요.
저 산너머에도 동네가 많았다고 해요.
참, 두부좋아하세요?
윤은 그의 단정하고 짧은 머리처럼 내 질문에 <좋아합니다.>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두부 잘 하는 집이 있는데 우리 거기서 점심먹고 갈래요?
<짧은 소설 긴 이야기.>
동북쪽으로 국도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아주 드문드문 작은 동네가 있고 이따금 경운기가 지나가고 하늘을 빼고는
온통 숲과산, 논과밭....이 있는 이곳. 구병산 시루봉.
그리고 내를 지나 이 산과 저 산 능을 넘어가도록 동네도 없고 읍내와 읍내를 잇는 멀다면 너무도 머언거리의 도로에 그 흔한 주유소도 없어 나는 그곳으로 넘어가기 전 기름을 가득 채웁니다.
이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흐르지 않지만 한때는 이 마을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여자들. 멱감는 아이들.
논과 밭으로 나가 김을매고 밭을 일구는 어머니와 아버지.
둥구나무 아래 앉아 부채로 한 여름 더위를 쫓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대처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밤이 지나고 이 마을의 아침은 잠자고 있는 아이들이 이불을 들춰내며 시끄러웠고 즐거워 했습니다.
지금 사람소리 나지 않지만 저 건너 마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얼마를 더 지나가면 오층의 모텔이 있습니다.
한번 보실래요.
인근에 유원지가 있어 놀러온 사람들을 상대로 지어낸 숙박업소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과 몸을 눕히러 이곳 까지 찾아와 불륜을 저장할 장소로는 너무 먼 거리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차량이 빈번한 도로도 아닌 이곳에 그렇게 근사하고 커다란 모텔이 서있을 곳은 전혀 아닌데 말이지요.
저 모텔을 지은 주인은 장사를 할 목적이었을까.. 아니면 조용한 곳에 파문처럼 올려놓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 곳을 지날 때마다 한쪽 길에 차를 세워놓고 모텔을 한참이나 바라보고는 했습니다.
조금 더 이만큼 앞서가다 한번 뒤돌아보게 하는 그 모텔을 지나면 충청북도에서 경상북도로 넘어가기 바로 전 작은 동네에 직접 손 두부를 만들어 파는 허름한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메주를 띄워 담북장을 끓여내고 거기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손 두부를 한 접시 올려놓아
오늘 처럼 비 오는 날은 한번 쯤 생각나는 집이지요.
어느 날 할머니가 끓여 내놓은 비지장과 두부 한 접시와 반주로 소주반병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데
창밖으로 비가 더욱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인정이 넘치시는 주인할머니께서 비그치면 가라고 내놓은 간이 의자에 앉았는데 마주 보이는 버스 정류장.
한시간에 한대씩.... 하루 여섯 대 있는 그 심심한 버스 정류장에 한 건장한 남자가 앉아있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멎고 남자는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혼자 웃습니다.
그러다 일어서고 일어서서 나를 바라보다 웃고 하늘을 바라보다 웃고 정류장 지붕아래 서있다 비내리는 거리로 나와 중얼중얼 거리며 빙빙 원을 그리며 돕니다.
내가 몸을 움츠리자 할머니께서는 \"저기 산아래 돌집에 사는 아들여... \"하십니다.
\"아.. 그래요.. 저 사람이 돌집에 사는 사람이구나..\'
작년 이맘때 면직원한테 들었던 그 돌집...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애간장 다 녹아 내리면서 숙연하기 조차 했던... 맘이 아파 영 놓아지지 않았던 그 기억.
산아래 돌집에는 두아들이 있었는데 두아들 모두 생각이 모자라는 바보였다고 했어요.
아래동네 윗동네 할 것 없이 동네 꼬마들까지 나서서 두아들이 지나가면 바보라고 돌을 던지며 따라다니는 놀림감이었다고 하지요. 큰아들은 우리 또래였다고 했습니다.
같은 나이의 청년들이 외지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큰 바보아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더라지요.
그 큰 바보아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짓을 하더랍니다.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고 아니면 버스가 올 때를 기다리다 버스에서 여자가 내리면...
밭에서 땀이 범벅이 되어 밭을 매는 젊은 아낙을 보면 곧바로 쫓아가 그녀들 앞에 서서 바지를 내려 모두들 비명을 지르고 놀라 달아나 바보 엄마에게 그 원망이 돌아갔다지만. 바보 어머니.. 두남자의 바보 어머니....
폭염이 쏟아지는 한여름 긴 밭고랑에 서서 담배 독이 오를까봐 무릎을 넘어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
땀 닦을 틈 조차도 갖지못하고 바보 어머니는 버스를 향해 바지를 내리고 여자들을 향해 웃고 있는 큰아들을 잡으러 쫓아다녔고 안 잡히려 도망가는 큰 바보아들...
그 큰 바보의 동생 작은바보아들은 엄마가 형을 따라 다니는 것을 보고 뒤쫓아 다니며 웃고 다녔다고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바보네집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답니다.
그 집 누렁이가 그 바보의 신체일부를 잘라먹었다는....
그래서 이제 동네여자들은 큰 바보아들을 피하여 둑길을 넘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그리고 또 다른 입소문은 새카맣게 타들어간 얼굴로 막걸리를 몇사발 채 쉬지 않고 들이키던 바보 아버지가 그 일을 꾸몄다고 이야기하는것을 누군가 들었다고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말입니다.
두 장정은 남의 고추밭에 들어가 고추 를 따고 배추를 뽑아서 읍내 장에 가서 막걸리하고 바꿔먹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흙먼지 이는 거리에 누워 잠을 잤다네요. 형과 동생이 함께...
그런데 아주 큰 11톤 화물차가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안고 무료하게 아주 무료하게 정적을 그으며 크락션 울리는 것을 잊고 달려갔답니다.
형의 몸을 타고서 말입니다.
어쩜 화물차의 무게보다 더 무거울 그 삶을 그 거리에 그렇게 내어주고....형은 동생을 옆에 두고 그렇게 세상을 접었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그 바보 동생은 피범벅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형을 자꾸만 자꾸만 바라보고 있더랍니다.
그 동생이 지금 저기 저 사람 이라네요.
보세요. 저기 앉아 있는 저 사람.
잡히지 않는 바람과 비를 보고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저 사람...
여름날 긴 정적이 거두어간 형이 없어 너무도 생이 외로운 저 사람.
둑길에 우비를 입은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이 걸어오십니다.
그 사내를 향해
\"밥먹어야지..\"하고 손을 내미니 허공을 빌빙 돌던 그 사내는 어머니를 보자 말 잘 듣는 순한 어린아이처럼 뒤따릅니다.
어머니가 지나가고 그 뒤로 바보 아들이 지나가고. 그 뒤로 비가 따라갑니다.
너무도 작은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생가슴을 저미며 세월을 삼켰을 그 어머니가 슬픈 풍경으로 다가와 정신을 놓을뻔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금 내 마음은 말이예요.
어머니의 뒤를 따르는 작은 바보 아들에게 정신이 돌아와 이제 그만
\"어머니.. 제가 업고 가겠습니다. 불쌍한 우리 어머니\"하고 이때쯤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렇게 이야기를 내놓는다면....비가... 비가.. 이 비가...그치지 않을까요.
<돌머리 식당>
식당의 유리문은 흐릿했고 문을 열고 닫음에도 몇번의 실갱이가 있어야 했던 그 식당 작은 방에는 호마이카상 두개가
그때처럼 놓여 있었다.
나는 마주앉은 윤에게 무거운 이야기를 들려주어 슬쩍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두부를 위해 술한잔 하면 어떠냐는 우스개 소리를 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윤은 타들어가는 담배를 손에 끼운 채 눈을 감고 있었고
가끔 신음소리마저 새어나오던...이야기에 깊이 빠져있는 윤의 얼굴이 흔들리고 있었다.
윤은 어떤 어머니든지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가슴아프다고 말했다.
누가 그렇게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함께 들어 주었던가...
그런 말을 하는 윤을 보니 갑자기 업어주고 싶어졌다.
내가 업어줘도 되요? 하니 윤이 놀란다.
......
♬..Mandolin,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