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에이형이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난 정말 기계치, 전기도 무서워하고, 뭔가 내손으로
작동시킨다는게 두렵다. 전화도 걸고 받으면 되고
다행히 문자는 찍을줄 안다.
그런내가 운전을 하게된 계기는 남편 때문이다.
남편과 사귀기 시작했을때 남편은 하루 날잡아서
나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었다.
약간 언덕배기였던 한적한 공원에서, 시동이 걸린건지
안걸린건지 소리를 듣고도 구분못하는 내게 운전대를 맡겼는데
냅다 밟아 버렸더니 언덕을 들이받아 그이차 앞부분이
다 찌그러졌다.
어찌나 미안 하던지..(속으로만) 뭐뀐놈이 성낸다고
그날 대판 싸웠다.
씩씩대며 각자 집으로 갔는데, 결국은 그이에게 운전배우는건
포기하고, 학원에 등록해서 면허증을 땄다.
그러나 어언 십여년을 장농에 묵혀둔 이 면허가 지금 내생활에
톡톡히 밑천이 되어주고 있다.
남편이 운영하던 가게를 두고 다른곳에 일자리가 생겼는데
조건도 좋고, 남편이 일을 더 배울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는데
문제는 삼일안에 결정을 해야 돼는 일이 생긴것이다.
남편은 가게수입도 그런대로 괜찮고, 이래저래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가 두려울 때였고, 마누라(나)는 아직 아이가 어려 가게를
맡기고, 아이와 살림까지 다 맡겨도 되는지도 걱정이었고...
당시 세살짜리 동에번쩍 서에번쩍하는 아들땜시 맨날사는게
전쟁같았던 나는 이처럼 절호의 찬스를 놓칠수가 없어서
가게는 나혼자 할수 있다며 큰소리 뻥뻥 치고는 가게까지 출퇴근
할수있도록 운전 연수나 시켜 달라고 했다.
남편을 옆에 태우고 출퇴근길만 대 여섯번 반복하고 나니 할수
있을것도 같았고 부랴부랴 동네 놀이방에 아이 등록도 마쳤다.
매일매일 출근할일과 퇴근할 일이 걱정이었다.
무사히 집에 도착한 날은 도착하자마자 그 벅찬 감격의 목소리로
여보! 나 무사히 집에 도착했어~ 하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해댔다.
가게에 있을때도 손님이 오면 물건이 어디있는지 못찾아서 수시로
남편에게 전화하고, 뭘찾는지 몰라서 당황하기 일쑤였고
손님이 오는게 두렵기까지 했다.
비오는 날은 비오는 날대로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고 집에까지
차를 끌고갈 자신이 없어 택시타고 다니고, 눈오는날도 마찬가지..
겨울이 되니 왜그렇게 빨리 어두워지는지.. 신호대기때마다 라이트를
꺼야 한다는 남편에게 어떻게 그렇게 많은 조작을 한꺼번에 할수
있냐며 신경질도 내고, 어떤날은 쌍라이트를 켜고, 집까지 달려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개꼬리 삼년이라고 같은길을 만 이년이 넘게 왔다갔다 하니
다른길도 슬슬 눈에 들어오고 가까운 마트 정도는 차끌고 갔다
올수 있게 되었다.
작은 아이를 뒷자리에 태우고 퇴근을 하며 슬슬 운전에 여유도 생기는
자신을 보면서 문득 처음 운전하며 출퇴근할때의 내모습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왔다.
운전만이 그러하랴, 가게도 어느새 척하면 척이게 손님만 봐도
뭐사러 왔는지 알만큼 (이러다 관상쟁이 될라)매끄럽게 손님볼줄도
알게 되었으니...
그러나 뭐든지 그대로 쭉 평안하게 가는 길은 없나보다.
바로 맞은편에 나보다 훨씬 큰 똑같은 업종의 매장이 들어서는 것을
입만 떡 벌린채 바라봐야 했던 그 심정은 어디다 비유를 할까..
약육강식, 그 싸늘한 진리를 또한번 가슴깊이 느끼며
삶의 현장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쳤던 지난날을 뒤로 한채
또한번 평탄하게 굴러가는 가게에서 만족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미루기만 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오늘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 잘 돌아가지 않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매일매일을 나자신을 얼르고 달래며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배워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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