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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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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달4


BY 라헬 2006-08-31

음식하면 광주를 따라올곳이 없지.그 감칠맛 나는 김치하며 이름도 다 알수 없는 각종 젖갈들.그리고 건강에 좋다는 보양음식에까지 그야말로 광주를 비롯한 남도의 음식은 정평이 나있는바.순희는 자기 사무실 건너편 비교적 작고 허름한 바지락 칼국수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어.


비가 내려서인지 들어가는 입구가 죄다 젖은 우산들로 질퍽거렸고 주방이 바로 코앞에 있어서인지 부글부글 거리는 칼국수 큰 솥을 눈으로도 마주볼수가 있었어.어딜가나 단체로 몰려다니는 아줌마들은 그 수다스러움에도 파워풀한데.순희와 나는 함초롬히 주방앞 자리에 앉아 칼국수를 먹고 나왔어.제법 김치가 맛있었어.


난 원래 먹는탐이 센편이어서 실제는 배터지게 먹지 못해도 음식을 주문하는데 있어서 늘 과하다 싶게 주문하는 버릇이 있어서 칼국수에다 왕만두도 시키려고 움찔움찔했는데 순희가 단호하게 배불러서 못먹으니까 그냥 칼국수만 먹자고 해서 아쉽지만 왕만두는 접어야 했지.


사실 칼국수나 왕만두가 문제는 아니었어.첫날 방값을 치를때부터 속상한것이 계속 두꺼비아가씨처럼 가슴한켠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월세가 주는 부담이었지.큰애가 첫달 지나고 두번째달부터는 방값은 벌수 있다고는 해도.물가비싼 서울살이에서 월급에 거나 반가까이 되는 큰돈을 내야하고.제몸에도 들어가야하는데.그냥 광주에서 보수는 적어도 집세내지 않는것으로 만족하며 산다면...하는 이미 결론난 일을 되짚어 가며 아쉬워했어.


그 반면에는 괜히 풍족치 못한 부모로써 미안함이 더 강하게 자리했는지도 모르지.순희와 최서방과 함께 쇼핑을 하며 오가는 길에 내가 둘러보았던 서울.서울.서울.그 서울의 수많은 집들을 바라보며 일년후에는 가스렌지도 사용할수 있는 집을 전세라도 얻어줘야겠다는 일념밖에 없었으니.월세가 주는 압박과 함께 가스렌지를 사용할수 없다는 불편함은 아마 큰애와 함께 내가 공용하는 부담이 될수 밖에 없었지.


소심하기도 하지만 저으기 긍정적인 면도 없지않은 나는 이미 이렇게 되어진 일에 두손 모으고 쳐져있을수 없었지.어쨋든 나도 비싸서 쓰지 않는 쿠쿠전기압력밥솥에 시험삼아 밥을 해먹어야 안심이 되었거든.큰애는 벌써 서너번쯤 사용설명서를 읽었는지 몇페이지 되지않는 책자가 부풀어 있었어.이깟 설명서가 뭐가 필요해.잠그고 열고.버튼만 누르면 되겠지.


이튿날 아침 일찌기 일어나 하얀쌀(큰애가 좋아하는 흰밥)을 씻어서 솥에 넣고 밥을 지었지.집밥은 하얀쌀을 찾아내기가 힘들만큼 죄다 시커멓고 거칠고 해서 애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건강에도 좋다하고 내몸에 과한 콜레스테롤인가 뭔가때문에 그렇게 먹는건데 이번에 내려가면 나도 하얀쌀밥을 해먹기로 다짐했지.


밥은 정말 기막히게 맛있었어.윤기가 흘렀고.딸과 단둘이서 머리가 맞대어지는 작은 상에서 그런대로 맛있게 아침식사를 했어.이런저런 잔소리겸 당부겸.빠르게 말을 내려놓고는 이른시간에 원룸을 나와 강남터미널로 향했어.


골목을 나서자 바로 위치한 3호선역이 있었으며 지하철 타는것에 능숙치못한 나는 큰애의 도움을 받아가며 낯설게 지하철에 올랐지.다들 무에가 그리 바쁜건지 걸어가는데도 내옆으로 몇차례씩 사람이 바뀌곤 했어.큰애 말에 의하면 아침출근길은 유령들처럼 둥둥떠간다는 표현이 가깝다나.이미 출근시간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에 연계하여 터미널에 도착했어.


조금이라도 더 빠른 차편을 택한 이유는 큰애와 오래도록 이별앞에 놓여있고 싶지 않아서였지.표를 끊고 여운이 길면 단정한 안녕도 점차 아쉬움이던지 미련이던지.어찌되든 그런 변형된 서글픔으로 마음을 쑤석이고 다니니 내심 간결한 이별을 선택한거야.도착한지 오분만에 광주행 우등버스에 올랐고 딱 한번 뒤돌아서며 어서 들어가.하며 손을 한번 내젓고는 의자에 등을 붙였지.


차가 서서히 미끄러지듯 터미널을 빠져나오는데 고개를 삐긋이하여 개찰구쪽으로 시선을 보내봤어.큰애가 아직 그쪽에서 나를 보려고 발돋움이나 할까해서 말이야.예상은 깔끔하게 빗나갔지만 섭섭함은 없었어.앞으로 그애와 나는 이런 짧은 만남과 이별들을 수없이도 해야하니까.익숙해지는게 서로에게 좋을듯 싶기도 한거지.


이제는 집이다.집은 집인거야.나흘간 부재중이었던 내 집의 내 자리에 돌아가는것은 마땅한 즐거움이자 왠지 책임감같은 거였어.반들반들 정성들인 세간살이는 아니어도 이십여년간 함께한 세간들은 이제 나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고 관망해주는 듯.언제나 너그러운 정겨움으로 닥아와.아마 늙어 죽을때까지 큰애가 자라며 기쁨을 주었던 그 자리로 인해 난 가끔 외롭고,그립고,고독해지겠지만.발로 밟으면서라도 가다보면 볼수 있는 서울에 있다는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위로를 받을거야.


장마비로 어수선한 서울을 뒤로하고 좌우로 차분한 신록을 끼고 고속도로에 진입했어.안녕.서울아.고마워.내 딸을 잘 돌봐주렴.잠시 멈칫했던 비가 버스천정으로 사납게 떨어졌지.내가 잠시 머물렀던 서울하늘에는 분명 달이 없었어.서울의 달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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