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키웠던 작은아들 마져 서울로 떠나보냈다.
나는 이녀석을 큰아들보다는 애지중지 키우지 못했지만 3년전에 서울로 보낸 큰아들 보다 더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아니다. 마음 한구석이 아니라 마음 한중심이다. 내 마음 한 중심이 뻥뚤려 버린거 같다. 갑자기 몸무게가 20Kg은 줄어든거 같다. 내곁은 지키고 있던 마지막 아들마져 떠나보내고 나니 또 다시 우울증이 찾아온다. 울지는 않았다. 두통을 동반한 우울증에 눈물보다는 두통약을 먼저 찾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눈물을 보인다.
큰녀석보낼때는 쳐다도 안보던 양반이 작은녀석보낼 때는 눈물을 보이다니...
마지막 한 녀석까지 보내다 보니 마음이 많이 아픈가 보다. 솔직히 큰녀석은 큰걱정꺼리가 없다. 해외오지여행도 많이 다니고 모든걸 자급자족하는 듬직한녀석이다. 하지만 작은 녀석은 막내라 그런지 형만큼 하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어쨋든 나는 오늘 내 젖물려 키운 두아들중 마지막 작은아들마져 보내고 작은아들의 방을 정리하고 있다. 이제 이방에 녀석의 냄새가 풍길일은 일년에 두번. 설날과 추석뿐이다. 어쩌면 일년에 한번이 될 수 도 있고 없을 수 도 있겠다. 갑자기 두통이 더 심해졌다. 머리가 깨질듯 아파도 걸레질을 하고 있고 녀석의 책상을 정리하고 있다. 아파도 할일은 꼭 할수 있을 때 주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작은아들의 책장을 정리하던중 나는 낡은 앨범을 하나 발견했다. 먼지가 가득쌓인 앨범을 털어내고 겉표지를 넘기자 \"1973년 봄을 찾다\"라는 휘갈려쓴 글씨와 말린은행나무잎이 보인다.
걸레질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그때의 봄을 찾기 시작했다. 촌스러운 컬러사진에 요즘 젊은친구들이 사이에서 유행인 썬그라스와 셔츠 나팔바지에 통기타. 지금은 연락도 되지않는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 몇 년전에 고인이 되었다는 친구모습도 보이고 지금도 간간히 통화가 되는 친구의 모습도 보인다. 1973년의 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그때의 향기가 나는듯 했고 나는 그 시간 을 추억하고 있다. 예전에는 하얀봉투였을듯한 누렇게 낡은 편지한통이 눈에 띈다. 연애편지인가? 우정편지인가? 궁금한 마음에 속을 들여다 봤다. 겉에는 젊음과 자유라는 볼펜으로 역시나 갈겨쓴 글씨와 몇 장의 내용물이 보인다.
그 누구에게 보낸다는 표시 없이 그저 일방적으로 쓰여진 글이였다. 분명 예전 나의 글씨체임에 틀림없지만 작성된 이유가 궁금했다. 한줄한줄 읽어갈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가사였다. 30년전 나는 다니던 대학의 밴드에서 기타를 맡고 있였다. 다른친구들보다 키와 덩치가 컷던 나는 박력있는 기타를 선배로 부터 추천받아 배웠고 밴드까지하는 음악에 열정을 보였다. 그 당시에 썻던 가사들이였다.언젠가 내가 쓴 가사로 곡을 만들고 음반을 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젊었을 때의 막연한 열정으로 만들었던 소중한 시간과 꿈이었다.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분명 그 당시는 심각했으리라... 두꺼운 허벅지에 딱 달라붙은 청바지는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세월은 모든것을 변화시킨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도 있다. 내가 왜 그때의 꿈을 접고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결혼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않지만 그것 도 나의 소중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앨범을 한장한장넘겨 보다보니 어느새 내가 큰아들을 낳아 안고 있는 사진이 눈에 띈다. 조막만한 손을 입속에 넣어 빨고 있다. 이녀석은 싫었는지 울상이다. 지금 객지에 나가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또 생각이난다. 방금 떠난 작은녀석도 생각난다. 몇장을 더 넘기자 하얀피부를 가진 큰아들 뒤로 검은 피부를 가진 작은아들이 보인다.
둘다 내 배로 낳았지만 어찌 이리 다를 수 있는지...마냥 우습다. 아이스크림을 쏟아 울상을 하고 있는 작은녀석이 보이고 조심조심 아껴먹는 큰녀석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는다. 두 아들이 태어나서 부터는 내사진과 남편사진은 보기 어렵다. 항상 같이 있지만 남편과 나는 두 아들의 사진을 찍기에 바빳나 보다. 가끔 등장하는 남편과 내모습은 모두가 다른 사람처럼 변해있다. 늙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나의 젊음을 바쳐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얻는 잔인하면서도 기쁨을 주는 삶의 의식이라고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즐거웠고 행복했다. 두아들 녀석들의 손과 발이 자랄때 마다 내 손과 발은 줄어들고 허리는 굽어갔었지만 나는 행복했다. 두 아들녀석들과의 시간은 나에게 꿈같은 시간이었다.
달콤하고도 아름다운 꿈.
그 길고 행복한 꿈을 깨어보니 나는 늙어 있었다. 그 꿈은 나의 두 아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그속에서 나는 나만의 꿈을 꾸고 행복했고 두아들과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제 앨범의 마지막장을 넘기는 일만 남았다. 마지막장을 넘기는 순간 나는 꿈을 깨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두 아들을 모두 객지로 보낸 약간은 고달픈주부로 돌아가겠지만 나머지 꿈은 두 아들녀석들을 위해 남겨두고싶다.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꿈은 두 아들녀석들이 대신 해줄것이다. 내게 주어진 꿈꿀 수 있는 시간들 두 아들들을 위해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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