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년 4월경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갔을때였다.
한국에 온 김에 달라진 종로도 구경할 겸
기간이 다된 여권도 연장할 겸 종로구청을 찾았다.
작성하라는 걸 다 작성했지만 한국을 오랫동안 떠나있어
주민등록이 말소됐단다.
여권엔 아직 기간이 좀 남아있고 해서
독일서 연장하자는 생각에 종로구청을 나왔다.
구청앞에서 동대문에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마침 택시한 대가 왔다.
택시를 잡아 앞자리 조수석에 앉았다.
운전하시는 분은 40대 후반정도 되어보이는 중년의 아저씨로
(중년의 아저씨들은 거의가 비슷비슷해 보여서
그 얼굴이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손님과 얘기하는 것을 즐기는 분 같았다.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는 대뜸 내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아가씨예요, 아줌마예요?”
여자손님에게 던지는 질문치고 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의 의도도 다분히 기분나빴다.
이 나이에(36살) 아가씨라고 하면 왜 아직 결혼을 못했는지 흠을 잡을 것이요,
아줌마라고 해도 무슨 흠을 잡지나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유들유들하게 대답했다.
“보시기에 아가씨같아요, 아줌마같아요?”
“아니, 글쎄, 그게 아리송하니까 묻는거 아닙니까. 아가씨예요, 아줌마예요?
“아줌만데요. 왜그러시죠?”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흠을 잡는다.
“아줌만데 왜 아가씨처럼 하고다녀요?”
아줌마가 아가씨처럼 하고 다니든 아저씨처럼 하고 다니든 무슨 상관이람
하며 떨떠름한 기분이 되어 택시를 내렸다.
내가 정말 나이에 안맞게 아가씨처럼 하고 다니는건가?
하고 쇼윈도를 들여다봤다.
보통 청바지에 좀 때이른 감이 있는 짧은팔 티셔츠,
그리고 운동화를 신었을 뿐이다.
이게 뭐 어쨌다고.
그런데 내 차림새를 자세히 살펴보다
아저씨가 내게 아가씨처럼 하고 다닌다고 혐의를 둔 것은
의상이 아니라 내 헤어스타일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나는 바로 그 전날 스트레이트 파마를 했던 것이다.
아줌마가 감히 긴 생머리를 한다는 말이렷다!
내 머리카락은 숱이 많고 굵고 강하다.
(그것이 얼마나 굵고 강했으면
한 번은 잘려진 내 머리카락중 한 가닥이 내 손바닥에 꽂혀있는 걸 보기도 했다)
게다가 붕뜨는 스타일이라 그냥 풀어다녔다간 머리가 신체의 반으로 보인다.
파마를 하면 더 감당이 안되고 커트를 하면 까치머리가 된다.
하는 수 없이 내내 묶어다니든가 쪽을쪄 다니다가
한국에 오자마자 미장원으로 달려가 스트레이트 파마를 했는데
첫날부터 임자를 잘못만나 택시아저씨한테 그 소릴 들은 것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아줌마같이 하고 다니는 것일까?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정답은 며칠 후 내 친구들한테서 찾을 수가 있었다.
귀밑까지 내려오는 길이에 컬이 약간만 들어간 파마머리.
만난 친구들의 절반 이상이 이 머릴한 걸 보니
이 머리가 내 나이에 맞는 아줌마 스타일인 모양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그 전날 미장원에서 한치의 주저도 없이
‘매직 스트레이트’를 해달라 하지 않았던가?
한 번 머리를 들쳐보면 최소 백발 하나쯤은 찾아낼 수 있는 이 머리를 하고서.
게다가 그 미장원은 다른 곳도 아니고 이대앞에 있는 미장원이었다.
나보다 열댓살은 어린 젊고 탱탱한 여대생들이 우글거리는...
하지만 나는 표준 아줌마머릴 할 생각은 없다.
누가 뭐래도 이 생머리를 고수할 것이다.
최소 40대 후반까지는.
생머리를 고수하려는데는 사실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이 스타일은 돈이 안든다.
2년에 한 번씩만 미장원에 가서 단발로 머릴 자르면 된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이 아깝다고 껍벅 넘어가는 미용사를 보는 재미도 만만찮다.
이렇게 한번에 한뼘 반씩 2년에 한번만 잘라내면 미장원갈 일이 없다.
머리가 좀 길어져 겨울이 되면
까만 코트에 어울리는 치마를 받쳐입고 부츠신고 거기다
긴 생머리를 좀 휘날려주면 금상첨화다.
붕뜬 머리가 신체의 반으로 보여도 상관없다.
여기선 그것도 먹힌다.
존레논의 부인 오노요꼬도 그 헤어스타일을 하고 무척이나 각광받았던 걸로 안다.
(그녀는 나이들어 짧게 커트를 했는데 난 왕년의 그 스타일이 오노요꼬답고 좋다.)
그러니 아저씨들이여,
긴 생머리는 더이상 20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좀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이든 여자들의 패션에 대해 얘기할 땐 예의를 좀 갖추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