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갱지의 책표지가 나도 모르게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붓글씨로 흘려쓴 좁쌀 한 알 이라는 제목에 잠시나마 온 생각이 멈춰지고,주름진 얼굴에 세상의 이치를 다 터득한 듯한 미소로 도란 도란 말주머니를 쏟아 낼것만 같은 눈을 가진 흑백 사진한장에서 난 흡사 이책을 다 읽은 듯한 착각이 일었다.
장일순....
그에 관한 이야기 이다.
천상병...
그가 고인이 되기전 그의 시집을 읽었을때 난 울고, 또 웃고, 시집을 사서 선물하고, 읽고, 암송하며 그의 시를 내 품속에 넣으려 하면서도 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가 고인이 되었다고 할때 난 그가 보고 싶었다. 그의 시집을 보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것처럼 난 그의 얼굴한번 못 보고, 그의 목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함이 그렇게도 애석스러웠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때 난 다시 그때의 애석함이 몰려와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어딘가 한구석이 아파왔다.
그는 고인이 되었나보다. 이 책을 엮은 분들이 그분의 말과 눈빛과 손짓하나 추억거리에 이책을엮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라 불러도 크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그분께 차한잔 대접하고 고개 끄덕이며 머리에서 가슴으로 나도 모르게 닫아 버렸을 속물스런 내 깊숙한 곳까지 그분의 목소리를 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괜시리 모서리만 꼬불 거린다.
--겨울에 모가지를 들어서는 안돼. 그러면 얼어죽어--
--추운 겨울날 저잣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사람이 써붙인 서툴지만 정성이 가득한 군고구마라는 글씨를 보게 되잖아? 그게 진짜야. 그 절박함에 비하면 내 글씨는 장난이지. 못 미쳐.\'--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어. 그럴때 내 마음 지그시 눌러주는 화두 같은 거야. 새상에 제일 하잘것 없는게 좁쌀 아니가. \'내가 조한알 이다.\' 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르는 거지--
그렇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심장에 그대로 꽂히우고, 그 화살들이 내 뼈속 깊은 곳까지 부끄럽게 만든것은 바로 내가 모자기를 들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음이요, 그 발버둥을 합리화시켜 옳다 세뇌 시킴이었다.
바다는 낮은 곳에 있단다. 왜냐하면 높은 곳에서 흐른 물이 낮은곳으로 모여 큰 바다를 이루기때문이지 않은가.
지식으로 머리로는 낮은 자세로 목소리를 작게 사는것이 참삶이라 하면서도 도리어 난 사지육신 다 동원하여 얄팍하고 무지하기 짝이 없는 내 머리를 과대 평가한채 좀더 높이 뛰어 보고자 크게 소리질러 \'내가 여기있음을\' 알리고자 버둥해고 있지 않았는가 ...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타인을 먼저 사랑해하 하는 것이고,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자연이 먼저 잘 살아야 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책 하나가득 그분의 일화속에서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그분의 말과 행동들이 뒤섞여 있지만
--작아지고, 낮아지고, 모자지를 절대 들지마라---
그 한마디로 모든것을 함축시켜 날 견제할 것이다.
조한알의 가르침으로 살아가신 그분의 지혜와 덕이 조한알에 새 의미를 부여하고, 이책을 덮는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조한알의 새로운 의미를 가슴에 새기리라.
기본만이 참된 진실인 세상에서 나를 다시금 기본으로 리셋시키기를 다짐하며 흑백사진속의 그분께 약속하듯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