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도 없고 칠판 지우개도 없는 낡은 칠판이 하나 있었다.
쓸모가 없어 구석지에 세워 두었다가
키 작은 이젤을 사고, 색색 분필로 가격을 쓰고
명자나무 앞 카페 들어오는 입구에 세웠다.
허브꽃 난타나 화분을 갖다 놓으니
돈 별로 안들이고 이색적인 간판이 되었다.
카페 옆 잔디밭이다.
토끼풀이 돗자리처럼 깔려 있고,
개망초꽃이 안테나처럼 우뚝 솟아 있다.
나무 주변으로 코스모스씨를 뿌렸더니
잘 성장하여 한송이씩 꽃을 피우고 있는중이다.
나무밑에 의자만 갖다 놓았더니
건물 주인 아줌마가 안쓰는 네모난 탁자를 주셨고,
탁자위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올려 놓았다.
냉커피 한잔과 풀꽃과 나무그늘.....
에어콘 바람이 아닌 자연과 함께한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
꽃무늬 쿠션이 있는 깔끔하고 목가적인 실내다.
탁자마다 토끼풀꽃을 뽑아 작은 유리잔에 꽂아 놓았다.
창 밖으로 나무가 보이고 꽃 얼굴이 수줍게 살짝 살짝 보인다.
파라솔도 원래 있던 것이다. 파라솔 뒤로는 꽃이 만발했다.
나무 의자에 앉아 생과일 주스랑 쌀과자를 먹곤 한다.
카페 앞으로 넓은 공간이 있어서 답답하지 않다.
노천카페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다.
유럽의 한가롭고 아름다운 노천카페 같다.
낡은 화분과 낡은 카페 창틀과
마구잡이로 살고 있는 풀들과
화원에서 사서 심은 꽃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
자연스럽게 인위적이지 않게 가꾸려고 한다.
들꽃을 중심으로 화려한 꽃도 섞으면서 풀도 함께 키우고 있다.
그리고 어릴적에 시골에서 본 꽃도 추억되어 살고 있다.
나무 의자는 거칠거칠한 상태로 반짝이지 않는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별 준비없이 카페를 시작하고 꽃과 함께 몇달을 보냈다.
현수막도 걸지 못하고 하다못해 커피 판다는 종이장도 붙히지 못했다.
내 카페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 겨우 칠판을 세워 놓고 색도화지에 손수 글씨를 써서 창에 붙였다.
그것도 길거리 커피 가격으로 대폭 할인한 상태로...
남는 것은 없지만 일단 차를 판다는 걸 알려야 한다.
카페 이름이 카페 이름같지 않아서
소품파는 곳인지 곰인형 파는 곳인지, 여기서 뭔 짓을 하는지 모른다고들 한다.
\"들꽃과 함께 차 한 잔\" 하는 곳으로
널리널리 소문이 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