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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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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나의 실수...1


BY 일상 속에서 2006-06-10

바다는 제가 자라 온 곳 입니다. 답답한 도심 속에 살며서 한때는 비릿한 바닷 내음이 어찌나 그립던지... 그제, 어제 죽다 살았습니다. 갑자기 맥이 풀리고 머리가 아프더니  토하고... 눈이 퀭하니 들어가서리... 남편이 사다준 약과 죽을 먹고 기운 차렸드렸죠. 날씨는 왜 이런데요?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천둥번개에 비까지 쏟아 지다가 다시 환하게 밝다가...어째 저의 겉잡을수 없는 다혈질 성격 같아요. ^^ 주말 잘 들 보내시구요. 참...자꾸 시리즈로 나가려고 하네요. 하지만 짧게 2탄에서 끝내도록 노력할게요. 저의 수다는 짧게 안되나 봅니다. 에휴...

 

 

어릴 때 자라면서 엄마의 지갑에 손댄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지도...

내가 아주 어릴 때로 기억하는데 나이는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침에 나가면 깜깜해야 들어오시던 부모님,

엄마는 나를 위해서 늘, 방 한쪽에 상을 봐 놓으시고 상보를 덮어 놓고 나가셨다. 지금처럼 24시간 tv가 나올 때도 아니고 어린 내가 어떻게 하루를 버텼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함께 있었어야 할 두 살 터울 남동생의 기억도 없다. 엄마가 업고 계셨나?)


내 엄마는 내가 밖으로 함부로 나다니다 다칠까봐 걱정 됐던지 입버릇처럼 늘 나가시기 전에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집 잘 지켜. 그렇지 않으면 도둑이 들어와서 집에 있는 것 다 가져간다.”

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가져갈 문건이 없던 집 같은데

어린 나에게는 여간 무서운 소리가 아니었다.


“다?”

“응.”

“텔레비젼도, 선풍기도 이불도 그릇도 옷도?”

“그럼.”

“!”


어찌나 반복 되던 얘기인지 지금까지도 그때 엄마와 주고받던 이야기가 생생하다. 난 어릴 때부터 책임감 하나는 투철했던 것 같다. 엄마의 말대로 좀체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러던 어느 날,

숨이 턱턱 막힐 뜨거운 여름이었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아이들이 구멍가게에서 물고 나오는 ‘하드’가 내 두 눈 안으로 클로즈업되었다.

어찌나 맛나게 쪽쪽 빨던지.

엄마가 더울 때 먹으라고 수돗물에 오렌지 가루를 타서 냉장고에 넣고 가신 오렌지 쥬스는 그 ‘하드’의 시원함과 감히 비교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먹!고!싶!다!’


보는 것만으로 군침이 돌았고 난 그 군침으로 배를 채울 판이 되었다.

문득 엄마가 찬장 서랍에 아무렇게나 집어넣고 다니는 돈이 생각났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열어보니 제법 많은 동전과 지폐가 있었다.


5원...(오늘 나의 뇌가 제법 제 몫을 한다. 분명 10원을 가지고 가면 ‘하드’를 딱 두 개 살 수 있었다. 우습다. 나도 제법 오래 된, 세대 차이 심하게 벌어질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니...지금은 10원짜리 길바닥에 뒹굴어도 누구하나 거들떠도 안 보더만... 그때는 얼마나 절절하고 소중하던 동전이었던가.)

처음 경험하는 나쁜 일...

가슴이 크게 벌렁거렸지만 난 잠깐 겁을 상실하기로 하고 ‘하드’의 유혹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훔친 돈으로 사먹는 ‘하드’의 맛... 기가 막혔다.

그 맛을 경험하고 치러야 할 부작용이 있다면 엄마가 돌아와서 혼낼 것이 두렵다는 것.


그런데...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모르셨다. 사라진 5원의 행방을.

처음이 무섭지 두 번째는 좀 더 수월한 마음으로 5원을 가져가서 그 맛난 ‘하드’를 사먹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5일 도둑질을 하고 나니 다시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계속 그러다가는 내가 도둑년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겼던 것이다.

만화에 나오는 도둑은 얼굴이 온통 까만색이었다. 그것이 도둑의 특징을 표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시절, 북한 괴뢰군은 모두 얼굴이 늑대이고 몸은 보통 사람.

김일성은 돼지 얼굴에 뚱뚱한 몸을 가진 사람.

만화영화로 등장하던 그 모습 그대로가 사실로 비춰 지는 순진무구한 사고를 지녔을 당시니...


- 어촌에 살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책은 인어공주였다. 그리고 엄지공주였다. 왜? 부모님이 싫어했지만 가끔은 혼날 것 각오하고 나가 본 바다는 붉은 석양이 물들어 있었고 바다 이곳 저곳에서 커다란 숭어가 보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 낼만큼 높은 점핑을 시도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그 모습, 바다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숭어의 머리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꼬리 쪽 몸통 반은 동화책 그림 속에서 보았던 인어의 그 모양 그대로였다. 그때 속으로 바라는 소원이 있었다. 아빠가 걷어 올리는 그물 속에 꼭 나만한 어린 인어 한 마리가 잡혔으면. 그러면 인어에게 수영하는 법도 배우고 인어 왕궁에도 놀러가며 둘이서 신나게 노는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엄지공주 역시, 내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친구였으면 싶었다. 그래서 장미꽃 속을 뒤지기도 하고 국화꽃 속을 뒤지고 다니기도 했었다.

참으로 외롭게 자라야 했던 어린 꼬마에게 당연한 공상이었으리라 -

잘 보세요, 어쩌면 이 물 속에 인어가 숨어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언제쯤 철이 들까요?


어쨌거나 그 당시 난 도둑들은 모두 얼굴이 시커매 지는 줄 알았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정말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얼굴이 점점 검게 변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어찌나 무섭던지.

그래서 도둑질을 스스로 자제하려고 이틀이나 ‘하드’의 유혹을 이겨내고 있을 때였다.

엄마가 밤늦게 돌아 오셨는데 ‘하드’를 한 봉지 가득 사서 들고 오셨다.

그리고 그것을 냉동실에 넣어 두란다.

순진한(?) 나는 지금의 내 딸이 조금만 풍족하다 싶으면 그러는 것처럼,


“와! 우리 집 부자다!!!”

를 외치며 엄마의 말대로 소중하게 그것들을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엄마의 속도 모르는 철부지...


지금도 시골의 취침 시간은 이르다. 그 시절은 더 했다.

밤 8시면 한밤중.

그 늦은(?)시간 어쩐 일인지 엄마는 나를 업고 어둠을 뚫고 어딘가로 가셨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엄마는 환한 대낮처럼 성큼성큼 잘도 걸어 가셨다.


약한 나를 단련시키고자 엄마는 언젠가부터 업어주지 않았었는데 뜻밖에 호강에 나는 마냥 엄마의 등에서 행복하기만 했다.

‘엄마, 어디 가?’ 하는 물음에도 대꾸 없는 엄마의 심정도 헤아리지 못했다.


얼마나 걸으셨을까? 엄마가 날 내려놓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폭신한 풀의 감촉이 느껴졌다.

희미한 달빛의 도움을 받아 보니 아빠가 술 취해서 행패가 심한 날이면 곧잘 오던 마을 뒤편에 있는 작은 동산 앞이었다. 엄마는 무슨 일로 아빠가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동생도 없이 나 혼자만 데리고 그 많은 논둑길을 걸어서 그곳까지 온 걸까... 뒤늦게 겁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할 말 없어?”


엄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난 엄마가 무슨 말을 하시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

“엄마에게 숨긴 것, 엄마 몰래 한 일! 솔직하게 말해봐.”

“?......!!!....”


설마... 엄마가 그걸 알고 묻는 것은 아니겠지... 쥐도 새도 모르게 한 일인데.

엄마가 놓았던 동전들의 모습까지 빈틈없이 만들어 놓았건만...

그걸 리가 없지... 하지만...


어린 나는 여간 불안하고 복잡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감히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도둑을 지키랬지...”

엄마가 먼저 입을 여셨다. 침착하셨다.

“응...”

“엄마가 끝까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 (사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길 바랬다.)

“세상에는 끝까지 감출 수 있는 나쁜 일은 없어.”

“.....”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순실이 고모(구멍가게 아줌마의 호칭;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리 불렀다.)가 부르더라. 요즘 어쩐 일로 네가 군것질을 잘 한다고...”

“...” 

“얼마 가져다 사먹었어?”

“25원...”

“커서 도둑 될 거야?”

“아니...”

“그럼 왜 그랬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럼 엄마한테 얘기하면 되잖아.”

“엄마가 힘들게 일하는데...돈 달라고 하면 속상해 할까봐...”

“너희 먹여 살리려고 돈 버는 거야. 도둑질 하는 딸보다 엄마는 솔직하게 돈 달라고 하는 게 더 좋아.”


우리 엄마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 때, 덜 묻었는지 욕을 하지 않았다. 나를 17살에 낳으셨으니... 아마도 그때 나이 스물 셋, 넷은 되지 않으셨을까 싶다.

욕은 하지 않으셨지만 내 엄마는 때때로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찬바람이 쌩쌩이는 분이셨다.


그 날, 난 한 대의 매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껏 생생하게 기억될 만큼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섭게 뇌리에 박혀 버렸다.


그 날 이후, 다시는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아니지... 그러고 보니 또 있다. (말하고 보니 내가 도둑년이 되어버린 듯하다.)

고등학생시절, 난 사춘기를 제대로 앓았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에 나이트클럽, 성인영화관...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가며 하고 돌아다닐 때가 있었다.

그 시절 어울렸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모두 퇴학...

내가 고등학교를 온전하게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내 엄마의 눈물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제법 시골에서 산다하는 집에 딸들이었다. 나 역시도 그 속에 한명. 그러니 돈이 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스릴감(?)을 즐기고자 도둑질을 일삼았다.

옷집을 털다 잡혀서 퇴학당한 애도 있었다.

난 어릴 때 엄마와의 그 추억 때문인지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이 영 꺼림칙했다. 하지만 악세사리 집에서 딱 두 번 도둑질을 했다. 친구들이 훔치고 있을 때 난 죄책감과 싸우며 돈 내고 물건 사며 반지 두어 개를 더 집어 왔었다.


달랑달랑 별이 달려 흔들리는 특이한 디자인의 반지를.

그 당시는 왜 그런 것들이 멋진 행동으로 받아 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