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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아니면 악연? 5


BY 일상 속에서 2006-06-08

드디어, 인연의 끝을 막을 내립니다. 아...눈이 빠질라 하네... 중간에 형님이 다녀가시는 바람에 수다를 떨다가 이리 늦어 지고 마네요. 끝가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난 살면서 뻘쭘한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해석하기가 좀 난해하다.

어쨌든 주인공인 녀석의 지랄병 난 언행들은 입 꼭 다물고 지켜보던 기사들이 잠시 잠깐 이성 잃고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잊고 오버하며 목소리 높인 나를 한순간에 불청객에 방해꾼으로 만들어 버렸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식사할 때, 내가 그리도 즐겨 마시는 소주가 무한정 이곳저곳 나뒹굴고 있어도, 누군가 한잔하라고 권해도, 깨끗한 맨 정신으로 녀석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려고 마다했건만... 한잔도 들이키지 않고 얼굴이 그리도 시뻘게 질 수가 있단 말인지.


“죄...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하고 송구하고...쥐구멍이 어딘지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얼마나 일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광경을 전에도 접한 적이 있었을까나?


새 신랑된 사람이 제 아버지를 상대로 쌍소리 해대며 지랄예병 떨고, 누나라는 덩치 좋은 여자가 나타나서 몇 번 달래는 가 싶더니 한 술 더 뜨질 않나... 그야말로 세기에 남을 결혼식이 아니었을까.


나의 뻘쭘함을 녀석이라고 눈치 못 챘을라고...


“누나가 이해를 못해서 그러는데...정말 미치겠다니까...”

녀석이 나를 향해서 자기를 이해해 달라는 듯 애원의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비디오가 돌아가고 있다니 이성을 찾은 나는 더 이상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단지, 내 얼굴을 거울로 보지는 못했지만 인상은 가관이었겠지.


굳게 다문 입술, 녀석 못지않게 어금니를 꾹 깨물고 있었고 이마가 저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으니... 다행이 내 얼굴로 카메라가 줌인 되지는 않았다.

녀석이 조용해 졌다. 잠시 잠깐 이겠지만... 그 틈을 타서 녀석의 아버지는 자리를 뜨셨고 녀석의 새어머니가 묵직한 봉투를 하나 폐백상 위에 올려놓고 황급히 나가셨다.


더 이상 절 받을 사람이 없었다. 그것이 끝이라면 끝일 폐백이었다.


“절 받으실 분...이제 없으신가요?”


도우미가 잔뜩 주눅 들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나가 받아도 되나요?”


내가 물었다. 내가 결혼 할 때도 그랬고 주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봐도 그랬고 젊은 누나가 절 받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격식에 맞는 건지 틀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폐백이 끝나면 허전 할 것 같아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그럼요. 그냥 받으셔도 되고, 맞절 하셔도 되요.”

난 도우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족쇄 같은 힐을 벗어 던지고 물집이 커다랗게 잡힌 맨발로 폐백 상 안쪽으로 들어섰다.


“누나, 어떻게, 그냥 절 받지?”


상황파악 못하는 녀석이 그래도 기죽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제일 행복하고 아름다워야 할 신부의 얼굴은 피곤함이 가득했다.


불쌍한 것... 고마운 것...


올케를 향한 내 눈은 분명 따뜻했을 것이다. 저런 개차반같은 녀석의 곁에서 아이들 낳고 있어주는 것이 그 순간 얼마나 고맙던지...


“입 다물고 그냥 절해.”

“옛썰!”


이성이란 아예 없는 녀석인지... 씩씩하게 내게 절을 했다. 곁에서 올케도 조심스레 엎드렸다. 나도 둘을 향해서 함께 맞절을 했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지금보다 더욱 예쁘게 살기를 바란다. 올케 고맙다. 이건 우리 엄마가 주시는 돈이야. 올케에게 주라시더라. 저 놈 주지 말고 이것으로 올케 먹고 싶은 것 다 사먹어. 알았지?”


엄마가 주신 돈으로 생색을 내며 올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올케가 고맙단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

돈을 전해줘서? 아니면 폐백실 따라 들어와서 시누란 사람이 행패(?) 부린 것?


어쨌든 결혼식은 끝났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돌아가고 판 끝난 뷔페식당 안에서 나의 친정 식구들과 녀석의 부모님과 함께 자리 했다.

앉은 자리도 제대로... 녀석의 아버지는 내 옆에, 녀석은 내 맞은편에서 한 자리 오른 쪽에 앉아 있었다.


“와 줘서 고마워요.”

이모부는 끝가지 내게 말을 놓지 않으셨다. 나 또한 굳이 ‘편하게 말씀하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서로 곁에 있는 사람들과 주거니 받거니 분위기 좋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고맙긴요. 당연히 왔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이모부, 저희들 앞에서 필성이가 하는 행동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녀석이 저래도 속정이 얼마나 깊은데요. 올케도 착하고, 손녀들도 순하게 잘 크고...”


혹시나 해서 드린 말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옛 조카 앞에서 망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까봐 노파심에 드린 말씀이었다.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며느리 년이 더 나빠. 뭘 줘도 고맙습니다, 하는 법이 없어요. 이래도 저래도 그냥 입만 꾹 다물고 있지.”


아하...통제라... 노파심 아니 가져도 될 법 했다. 세월을 어디로 드셨는지 그 많은 연륜을 갖고도 속은, 녀석의 젊은 혈기로 좁아터진 그것과 조금도 치우침이 없었다.


올케의 성격은 내가 봐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뚝뚝하다. 항상 화난 사람처럼 뚱해서 있긴 하다. 웬만해선 속내도 들어내지 않는다. 하지만 올케의 그런 무딘 성격 탓에 지금껏 녀석을 견대내지 않았겠냔 말이지.


왜 이모부는 그것을 보고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은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한다지만... 너무 겉만 보고 판단하시는 이모부의 얕으막한 생각이 아쉬웠다.

얼만큼 살아야 우리들은 참 사랑을 깨달을수 있을까요?

그토록 많은 시간, 평균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주고받은 얘기에도 변함없는 사고를 지닌 녀석.

나의 말 몇 마디가 그 녀석 아버지의 관념 또한 뒤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보면 언제 녀석의 아버지를 뵙겠나... 조금이라도 노여움을 풀어드리고 싶었다.


“이모부, 올케가 성격이 좀 뚱해서 그렇지, 제게 얼마나 이모부 자랑을 많이 하는데요? 필성이가 제 가족 팽개치고 밖으로 나돌 때, 이모부께서 식비부터 생활비까지 모두 대주셨다면서요?”

“.......”

“그리고 이모부, 필성이를 보면 볼수록 이모부와 붕어빵 같아요. 말하는 것부터 생김새까지요. 하나뿐인 아들이잖아요. 그냥 힘들어도 녀석을 지켜봐주세요.”

“... 저 놈이 내가 돈 좀 있었으면 벌써 날 죽였을 거야...”


이모부의 목소리가 조금은 안정을 찾은 듯 했다. 어쩌면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고...


“씨팔!!! 그래도 저 입 벌리는 것 봐봐.”


저만치 앞에 떨어져서 앉아있던 녀석... 곁에서 다른 사람과 담소를 나누는지 알았건만 우리들의 얘기를 모두 엿듣고 있었나보다.

복화술로 날 놀래 키더니 어느새 소머즈 귀까지 착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분위기는 쏴아~ 해졌다.


내 바로 아래 동생이 녀석의 곁에 앉아 있었다. 동생 역시 아버지에게 그게 무슨 망발이냐고 꾸짖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이모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셨다.


녀석의 곁에 있던 내 엄마와 사촌 언니도 녀석에게 조근조근 타이르며 다독거렸다. 그래도 녀석은 지가 잘났다고 떠들었다.


워낙 개차반으로 소문 난 녀석... 내가 사람 됐다고, 지 식구 귀한 줄 안다고, 열심히 살아서 이제 기반도 잡아 가고 있다고 그렇게 떠들고 다녔건만...

내 말이 모두 거짓말이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막내 동생의 애인(예비 올케)이며 필성이 처제와 처남들까지 있는 자리... 정말 조심해서 서로를 대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녀석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고 제 위에 아무도 없다는 행동을 일삼고 있었다.


탁!!!!!!!!


나의 두 주먹이 애꿎은 식탁을 내리 치는 소리, 당사자인 나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그때는 아픈지도 몰랐다.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왜 두 손날이 그리도 아픈지 깨달았다.)


“너, 조용히 해!!! 결혼식 끝났으니까 이제 다들 가면 되지? 엄마, 언니, 니들 다 일어나. 저거 그냥 떠들라고 내버려 두고 그냥 가자고.”


녀석이 안됐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난 그런 녀석을 상대로 대화했던 지난 시간들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나의 욱하는 성미... 내 식구들도 다 안다. 한번 터지면 아무도 걷잡을 수 없는 나.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참을 만큼 참았어~ 봐줄 만큼 봐줬어~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묵고할 수 없었다. 녀석과 나와의 어떤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길래 이렇게 질기고도 지겹게 엉켜버린 것인지, 한 뱃속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나의 친 혈육보다 나를 챙기기도 많이 + 속을 뭉개기도 그 못지않은 녀석과의 연을 이제는 확실하게 끊어버리고픈 마음, 간절했다.


일일이 확인할 수 는 없었지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분명 내게 향했을 것이다.


녀석도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반응에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떨구는 것도 보였다.

나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향했다.


그 상황에도 엄마와 언니와 동생들을 향해서 먼저 가겠다는 인사도 빠트리지 않았다. 녀석의 몰상식한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덕분에 물집 잡힌 발바닥의 아픔도 저만큼 도망가 버렸다.


“누나!!!”


웨딩홀 건물 밖을 막 벗어났을 때, 계단을 다 내려가기도 전에 녀석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난 아이들 잡은 손을 더욱 꽉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었다.

아빈이가 ‘삼춘이 불러요.’ 하고 얘기했지만 대꾸하지 않고 앞을 향했다.


헐레벌떡 따라온 녀석이 내 앞을 가로질러 막고 섰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더니,


“누나는 왜 나를 이해 못해?” 한다.

난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비켜서서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누나!”

“부르지마! 제 부모도 몰라보고 입을 함부로 하는 새끼가 그깟 사촌 누나가 누나로 뵈기는 뵈? 너 같은 놈을 그래도 사람이라도 상대 해줬던 지난 시간이 아까워서 미치겠다. 천하에 썅놈의 새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사촌끼리 너무 오버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을 것이다.

내 오지랖 넓은 성미는, 녀석이 제 아버지나 엄마를 죽이던 살리던 욕을 하든 말든, 왜 그것을 무시하지 못하고 집고 넘어가려는 것인지... 다른 사촌들처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넘어가면 그만인 것을... 왜 난 그러지 못하고 내 신세를 내가 볶는 것인지, 나에게도 화가 났다.


“미안해.”

녀석은 ‘씨팔’을 입에 달고 사는 것 마냥 ‘미안해’도 거리낌 없이 뱉어냈다.


“너, 미안해 뜻이 뭔지 알고나 하는 말이야?”

“그냥...난 자꾸 내 부모를 보면 화가 나. 미치겠어. 누나는 몰라. 이모, 이모부와는 아주 딴판인 인간들이라고.”

“그래도 네 부모야. 왜 남들 앞에서 그런 추한 꼴을 만들지 못해서 안달이야. 내가 그동안 뭐라고 말했어? 너와 네 부모의 일은 남들 없는 자리에서 해결을 보던지, 거기 다들 너보다 위에 사람들이야. 넌 너 밖에 없어? 왜, 다른 사람들이 네 눈치를 보게 만들어?! 이제 이런 말도 지겨우니까 너랑 말하고 싶지도 않아. 저리 꺼져.”

“이렇게 하고 가면 누나 마음 편해?”

“니가 다른 사람 마음이나 헤아릴 줄 아는 놈이야? 지금 네가 뱉어 내는 소리가 개소리야. 니 아버지 말이 개소리가 아니고. 이런 놈을 동생이라고 오늘 여기까지 오느라고 벌인 쇼를 생각하면 내가 병신이지. 에이씨~!”

요즘 꽃들이 많이 보입니다. 못난 마음 꽃을 보면 좀 아름다워 질라나?

난 끝내 녀석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표시를 보니 내 엄마다.


“응, 엄마.”

“잘했다.”

“뭘?”


엄마에게 인사는 했지만 정겹지 못했건만 내 성질에 못 이기고 그곳을 뿌리치고 나왔기에 후에 욕이나 진탕 들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뜻밖에 격려를 하셨다. 그것이 도리어 어찌나 죄송하던지.


“그 놈 그나마 이겨 먹는 것이 너 아니냐. 희한타. 뭔 인연인지, 궁합인지... 니 이모도 그러더라. 예전부터 놈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너였고 지원애비(아래동생)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엄마, 미안해. 엄마 가는 거 지켜보고 왔어야 하는데 이 더러운 성질 때문에 못 참고 먼저 나왔네. 나 때문에 더 엉망이 돼버렸지?”

“아냐. 어차피 더 있어도 좋은 꼴은 보지 못했을 겨. 너 나가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지. 필성이 놈, 잘못했다고 계속 뇌까리더라. 그래도 어떡하냐, 의지할 때라고는 너희 밖에 없는 놈. 그렇게 사람 만들면서 사는 거야.”

“내가 뭐라고 누굴 사람 만들어. 나도 사람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우리 딸만 같으라고 해. 잘 했어. 그 놈 너 나가고 기 팍 죽어 있었으니까.”


내 엄마는 속상해서 가고 있을 딸에게 잘했다며 앞으로는 한 단계 더 높여서 지랄을 떨란다. 놈을 자극 시킬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 하시며... 난 정말 싫은데... 나 한 몸 사는 것도 벅찬 세상. 어찌 그런 징한 놈을 가르치라 하시는지....

왜 다들 그렇게 알고 당연한 듯 놈과 나를 엮으려는 것인지...


할머니 살아 계실 때도 그러셨다.

놈이 속만 썩이면 전화를 하셔서 혼내 주라고.

이게 뭔 조화 속인지...

한번 웬수면 영원한 웬수로 다신 안 볼 것처럼 단호한 나 역시, 놈에게 이상하게 약해져서 다시 또 엮이고 엮이고...그러면서 지금껏 온 것 같다.


아... 힘들다.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내게 안정제이며 자장가 같다.

화가 불끈 솟았다가도 잠이 오지 않다가도 엄마와 말만 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잠이 오기도 하고 그런다.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발의 통증이 되살아났다.


“아빈아, 신발 꺼내라.”

“네?”

“발 아파서 그래. 갈아 신을 거야.”

“엄...마... 여기 사람들 많은데...갈아 신으시게요?”

“창피하냐?”

“네...”

아영이도 오빠 말에 동조해서 창피하단다.

“니들, 엄마 발 편한 것이 중요하니, 아니면 창피한 것이 중요하니?”

“엄마 발 편한 거요.”

“그치?”

“네...”

“그럼 신발 줘. 아니면 가방 주고 저만치 떨어져 있어라. 니네 엄마 아니라고 할 테니.”

“헉...엄마, 안 창피해요. 여기 신발 갈이 신으세요.”


아빈이가 제 보조 가방에서 넣어왔던 통굽 슬리퍼를 꺼내서 내 발 아래 가지런히 놓았다. 주변 사람들의 눈이 있었지만... 뭐 어때... 내 발만 편하면 되는 거지.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나만 약간 스타일만 구겨지면 만사가 편한 것을...


녀석은 왜 보통의 사람처럼 편하게 세상을 대하지 못할까?

나이를 몇 살을 더 먹어야만 좀 어른스러워 질라나?

녀석을 탓할 것만은 아니다. 나 역시 언제쯤 이놈의 성질 머리를 고쳐먹을 수 있을까?


그날은 녀석에게 연락이 없었다. 솔직한 나의 심정은 끝가지 연락이 없었으면 싶었다. 녀석에 대한 모든 기억도 깡그리 지워버리고 싶었다.


다음 날, 오후 늦은 시간...

집으로 전화가 왔다. (내가 필히 집 전화기도 발신자 제한 표시로 신청할 테다.) 그때의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곁에 있었다. 그래서 녀석의 전화를 냉정하게 끊어 버릴 수가 없었다.


부부라도 내 약점, 특히 친정 쪽에 관련된 어떠한 이유라도 책잡힐 건수는 만들고 싶지 않은 나였기에. 하지만 녀석의 “누나” 하는 말에 반갑게 “응” 하고 대꾸할 수는 없었다.


“왜?”

“지금 온양 온천 가. 그 날 신혼여행 못 간 거 오늘 가려고.”

“알았어.”

“사실은 오늘 누나네 집에 가려고 했는데 집 사람이 누나 힘들다고 안된다고 말려서 말이야.”

“올케 생각이 맞다.”

“아직 화났어?”

“......”

“누나, 노력할게. 정말 나도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왜 주체가 안되는지 몰라.”


제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는 녀석.

제가 필요로 할 때 단 한 번도 곁에 없어줬던 제 부모에 대한 원한.

자신의 인생은 제 부모에 의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녀석...

한 번도 부모님의 사랑을 접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녀석...


어릴 적, 내 눈에 보인 제 부모는 나름대로 각자의 책임감을 이행하기 위해서 녀석에게 신경을 썼다.

녀석이 가지고 놀며 유세를 부렸던 움직이는 로봇이며 유명 메이커의 의복이며 하루가 멀다하고 배달되는 빵이며 용돈들...


재벌 부럽지 않게 살았던 녀석이건만...

녀석은 늘 빈곤했단다.

늘 외로웠단다.


내가 본 녀석의 삶은 간접적이었을 뿐, 직접적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녀석의 말대로 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매 한번 제대로 때린 적 없는 제 부모보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주먹(?)을 날렸던 나와 매를 달고 살았던 할머니를 오히려 더욱 의지하고 드는 녀석의 특이한 성격이... 이해되지 않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그 자리에서 똑같은 입씨름을 언제까지 벌여야 하나...이제 할머니도 없으니 녀석에게 남은 것은 정말 나 혼자란 말인지...

내 동생들은 워낙도 유순한 성격이었지만 세상에서 인간사를 겪으며 점점 머리 복잡한 일에 개입하려 들지 않아서 때론 가족 일에도 조금은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그것들은 약게 사는 법을 알아 가건만... 나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걸까...


난 지금도 머리가 복잡하다.

녀석과 나... 그 질기도 질긴 인연은 어디까지 닿아있을 것인지...

그 인연 끝까지 인연으로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악연으로 바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