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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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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아니면 악연? 4


BY 일상 속에서 2006-06-08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것이 시간이라는데 우린 왜 그렇게 모든 것들과 대립하며 살아야 할까요?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과 담소를 나두나 보니 벌써 시간은 2시 10분경이었다.

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어도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남아 줘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식사를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랑 언니는 가서 사진 안 찍어?”


접시 하나 가득 음식을 담아 놓고 식성 좋게 그것들을 대하는 엄마와 사촌언니에게 물었다. 하지만 다들 가지 않는 단다. 모양새가 이상할 거라는 이유로... 막내와 큰 동생가족은 벌써 내려간 상태였다.


내가 걱정 했던 대로 외삼촌들과 사촌들은 오지 않았다. 녀석의 처갓집 식구들은 북적거렸지만 녀석 쪽으로는 일가친척도 하나 없는 것 같았다.

필성이가 속상해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듯 싶었다.

결혼식 하는 아들의 청첩장을 녀석의 아버지는 친척들에게 하나도 돌리지 않았단다.


그러니 예식장 안 풍경은 괴기(?)스러울 수밖에.

녀석의 선후배...다들 검정 양복에 짧은 스포츠머리다.

녀석의 아버지가 노가다에서 부리는 인부들... 딴에는 차려입고 왔겠지만 다들 점포차림에 형형색색...정신이 심란할 정도다.


법적으로는 생판 남이요, 혈육으로 따지면 그나마 나와 내 남동생 둘, 내 엄마, 사촌 언니가 일가친척이라면 일가친척인데 녀석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마나님(?)을 생각하면 선뜻 나설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그러니 엄마와 언니는 조심스럽단다.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으니 할 수 없이 난 아이들과 함께 식이 한창일 식장으로 내려갔다.

2시 13분 쯤?

그런데,


어라...분위기 이상타...

난 축의금도 내지 않았건만 신랑 측 축의금 내는 자리에 앉아 있던 총각이 몸을 일으키고 벌써 판 끝난 화투 패 섞듯이 쇼핑백에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넣는 거다.


“어? 벌써 끝났어요? 나 아직 안냈는데...”


급하게 백 속에서 봉투를 꺼내고 남편의 이름 석 자를 크게 써서 뒤늦게 냈다.

20만원...

처음 생각에는 녀석이 줬던 30만원을 다 내려고 했건만... 사람의 간사한 생각이 이틀이란 길지 않은 시간에 ‘휙’하니 뒤집고, 10만원의 이득을 남기고자 했다.


결혼 시작한지 15분도 채 되지 않았건만...식이 모두 끝났단다. 내가 내려갔을 때에는 이미 마지막 촬영으로 친구들과 한 컷이 끝난 뒤였다.

요즘 시대가 아무리 초스피드시대라고 한다지만 뭘 어찌 진행 했길래 15분 안에 사진촬영까지 끝낼 수 있는 것인지...


난 녀석의 결혼사진이며 비디오 촬영에 단 한 컷도 등장하지 못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녀석이 얼마나 섭섭했을까?

그마나 동생 둘은 사진을 찍었다니 다행이다.

도우미아가씨가 촬영 끝난 녀석에게 폐백실로 어서 가란다.


“뭐야? 뭔 결혼식이 이렇게 빨랑 끝나? 다시 하라고 해. 나 못 봤으니까 인정 못한다.”

미안했다. 그러니 내 주특기인 억지 부리기가 튀어 나올 수밖에.

내말 한 마디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웃어댔다.

아...주체할 수 없는 나의 푼수...


“하여튼 누가 누나를 말려.”


도우미의 말도 무시하고 녀석이 억지 쓰는 내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야! 핸드폰이라도 하지. 전화 장식으로 달고 있어? 사진 찍는다고 말했으면 얼른 내려왔을 거 아냐?!”


이제 불똥이 곁에 있던 두 동생과 올케에게 떨어졌다. 적반하장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겠지? 나의 막무가내 식의 억지에 다들 정신이 없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야!”

녀석이 어딘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네, 형님!!!”

두어 명의 시커먼 사내들이 달려 왔다.


“지금부터 내 누나와 나의 사진을 제대로 찍어라. 누나, 결혼식 다시 할 수는 없고 이걸로 대신하지 뭐.”


상황이 이상하다. 내가 미안해서 몸을 배배 꼬아야 할 판에 녀석이 나를 달래고 있으니...


“너 빨랑 폐백실 오라잖아. 어서 가.”

“내 결혼식이 마지막이야. 신경 쓰지 말고 마음 풀릴 때까지 사진이나 찍읍시다.”

“좋다~ 어이, 총각이여 아저씨여? 어쨌든지당간 사진 이쁘게 찍어 줘요. 각도 잘 잡아서 내 얼굴 최대한 작게~ 뽀사시하게~ 나와야 되니까. 알았지요?”

“네!!!”


녀석이 부른 두 명의 시커먼스와 남동생 두 명... 합이 4대의 카메라 후라쉬가 터지기 시작했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유명 연예인의 인터뷰가 부럽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기서 펑! 저기서 펑!......


우여곡절 끝에 난, 녀석의 결혼식에 왔다는 기록은 남겼다. 도우미 아가씨의 성화에 녀석이 뒤늦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조카님!”


정신 좀 가다듬으려는 찰라... 누군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녀석의 아버지였다. 한 20년 만에 뵙는 것 같다. 훤칠하게 잘생겼던 녀석의 아버지... 그 역시 세월을 비켜가지 못하고 얼굴 구석구석에 그 많은 시간의 때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모부의 곁에서 한복을 곱게 입고 부끄러운 듯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녀석의 새엄마가 서 계셨다.

처음 뵙는 분이었지만 난 고개 숙여 깍듯하게 예의를 표했다.


“이모부! 축하 드려요. 이제 할 일 다 하셨네요. 하나뿐인 아들 장가 보내셨으니. 건강하시죠?”

“그럼요. 그런데 어째 이렇게 살이 많이 쪘대?”


“ -_-;;;”


누가 부자지간 아니랄까봐... 둘 다, 입에 걸음 망이 없다. 몇 십 년 만에 만난 조카에게 기껏 한다는 말씀이 살이 그냥도 아니고 많이 쪘단다. 그 말을 ‘많이 후덕해 졌어’ 라던지 ‘ 건강해 졌구나’ 라고 바꿔 쓰면 얼마나 좋아... 에휴...

귀 속에 걸려서 도저히 밖으로 내쳐지지 않는 그 말을 겨우 머릿속에 가라앉히고 이모부의 얼굴을 활짝 웃는 낯으로 바라보았다.


“저도 벌써 애가 둘인 걸요? 애들 키우려면 엄마가 건강해야 하니 좀 찌우고 있는 중이에요. 하하하하...”

“껄껄껄... 하긴 세월이 많이 흘렀지...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아빠는 바쁘셔서 못 오시고 엄마는 오셨는데 시장하시다고 식사하고 계시는 중이세요.”

“아... 그래? 내가 엄마 용돈 좀 드려야지.”


그 아들의 그 아버지. 이모부 역시 입이 가볍고 걸어서 그렇지 정은 많은 신 분이셨다. 단지 연세가 70에 가까우신 분이 아직 상황 판단을 못하시는 것이 흠이라면 흠... 새 부인 곁에 두고 옛날의 막내 처제에게 용돈을 주시겠다니...


“이모부는 폐백 하는데 안가세요?”


말의 방향을 전환키 위해 나의 머리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찾아낸 말을 뿌듯하게 뱉어냈다.


“아...! 가야지.”

이모부와 그의 마나님이 저만치 멀어져 갔다.

한시름 놓고 식당으로 올라가니 엄마가 봉투를 하나 내미신다.


“이거 새 아기(올케)한테 폐백 할 때 줘라. 니 에비가 부주 십 만원만 하라고 해서 그것만 내긴 했는데 여간 걸리는 것이 아니야.”


착한(?) 나는 두말없이 그 돈을 받아서 폐백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늙어 죽을 때까지 길이길이 남을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떡대같은 어깨 두어 명과 올케의 친정 쪽 동생이라는 젊은 여자 두 명, 젊은 남자 한명, 사진 촬영하는 사람 두 명, 도우미 아가씨 한명이 빼곡히 들어있는 폐백실 안으로 나는 조용히 들어갔다. 문가에 등 돌리고 앉아있는 녀석은 나의 등장을 보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여기 대추와 밤을 던져 주시고 덕담 한마디 해주시면 됩니다.”

도우미 아가씨의 말이었다.


“뭐야? 나 보고 또 애새끼를 낳으라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녀석의 말이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거기까지 그런대로 괜찮았다.


어쨌든 녀석의 부모는 신랑신부를 향해서 한웅큼의 밤과 대추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에... 사람은 자고로 누군가 뭘 주거들랑 그것이 크건 작건 간에 늘 감사합니다. 해야 하는 법이다. ‘이게 뭐야?’ 라는 말이나 ‘당연한 거지.’ 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고....”

“에이~ 씨팔!!! 또 개소리 한다.”


.............


이모부의 말을 중간에 자른 녀석의 말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순간 ‘쏴아’한 냉기가 감도는 폐백실...


“그딴 소리 할 거면 입 다물고 있어. 도대체 해준 게 뭐야? 결혼식만 해도 그래. 돈 대줬어? 준비해줬어? 내가 다 했잖아.!!!”


녀석의 말대로 이모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내가 그리 입이 닳고 닳도록 부모 자식 간에 넘지 말아야 할 도리에 대해서 얘기를 해줬건만...난 그동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었던 거다. 모든 것이 그렇게 허망할 수가...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난 어떻게든 그 순간을 좋게 마무리 짓는 것을 보고 싶었다.


모두들 녀석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인지...


“필성아, 이 좋은 자리에서 그러면 되겠니? 조용히 넘어가자.”

두 주먹 불끈 쥐고 난 아주 나긋나긋한 소리를 쥐어 짜내야 했다.

내 그 말에 험악하게 인상이 구겨진 녀석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알았어, 알았어.” 한다.


“부모님께서는 이제 일어 나셔서 새 출발 하는 두 분에게 밑거름이 되라는 뜻으로 성의를 표하세요.”


도우미 아가씨가 애써 웃으며 입을 떼었다.


“됐어! 더러워서 그 딴것 안 받으니까 내 놓지마. 너(올케에게)! 저 돈 받지 마.”

녀석이 복화술이라도 배웠는지 앙 다문 입사이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재주를 보였다.


“주지 마. 저렇게 나오는 녀석에게 주긴 뭘 줘!”

이제 이모부도 뒤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흐미... 내가 여길 왜 왔을꼬... 내 운명은 왜 이리 자꾸만 시궁창 구덩이 같은 곳에서 헤매게 되는 것인지...이 무슨 운명에 장난 이란 말인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오는 녀석의 아버지 인상도 험악했다.


“이모부라도 참으세요. 아직 젊은 혈기에 저러는 거니까...그래도 며느리가 착해서 얼마나 좋아요?”


난 어떻게든 좋게좋게...를 속으로 뇌까리며 입가에 경련이 일정도로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착한 며느리 다 죽고 없나보다. 내가 착한 며느리 데리고 와서 보여 줄까요?”

녀석 아버지의 입에서 지뢰 같은 말이 튀어 나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했던가...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째 상황은 자꾸만 극에 달해 가는 것인지...


“씨팔!!! 그래도 잘 났다고 떠드는 것 봐봐. 내가 애새끼들만 없으면 진즉에 일냈어!!!”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그래도 입을 닫지 않고 계속해서 제 할 말을 다 해대고 있었다.


“이런... 콱!!! 너 정말 입 안 다물어? 너 결혼식 누구 좋자고 하는 거야? 이따위로 할 거면 뭐 하러 결혼식을 하고 지랄이야? 이런 ‘개망신’ 여러 사람 앞에서 보이려고 이런 일 벌인 거야? 지금 시트콤 찍어!!!”


욱하는 성미 여러 번 참았다. 더 참았으면 좋았겠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나마 욕은 삼가 한 것만 해도 어디냔 말이지...


콕콕콕...


열 제대로 받아 있는 나의 옆구리를 누군가 콕콕 찔렀다. 비디오 촬영기사였다. 그분이 나를 향해 두 번째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란다. 촬영에 목소리가 모두 들어간다나....


한때는 멋진 로맨스만 그리며 살았던 저였는데 요즘은 아주 일상 속에 푹 파묻혀서 나오질 못하네요. 생각외로 인연의 시리즈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중으로 어떡하든 끝을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