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달때 들어 와 주셔서 읽고 리플을 달아주시는 분들이야 말로 정말 제 글을 읽으러 와 주시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글을 기약하며 오신 분들이니... 남다른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
문제의 디데이...녀석의 결혼식 날이다.
가야 되나, 가지 말아야 되나... 갈등 수없이 많이 했다. 그동안 변변한 옷가지 하나 없어도 폼 나는 장신구 하나로 제법 기죽지 않을 수 있었건만... 그마저도 없으니...
어쨌든 녀석의 결혼식 날이 밝았다.
웬수(?)같은 내 남편... 제 특기를 살리는 바람에 난 아침부터 열을 제대로 받아야 했다.
한 달 전만해도 필성이의 결혼식을 걱정하는 내게 꼭 같이 자자고 얘기했었다. 보름 전만해도 그 생각 변함없었다.
전 날 뜨뜨미지근하게 대답하더니 당일 날 한다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자기란다.
평내로 해서, 강남으로 해서 판교까지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 댕겨야 한다나?
꼭 때만 대면 발을 쏘옥 빼고 마는 남편...
그래서 시댁이나 내 친정에서는 그런 남편을 도마 상에 올리며 우스갯소리로,
“ 그 돈 다 벌어서 엇따가 싸놓으려고? ” 하고들 말씀하신다.
그때마다 난 너털웃음을 짓고 어물정 넘어가려 하지만 속으론 여간 뜨끔한 것이 아니다.
능력 없는 내 남편은 융통성도 없다. 아... 내 기구한 팔자타령은 언제쯤 막을 내리려는지...
수원역에서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에 있다는 로즈웨딩홀.
어쨌든 지하철로 2시간은 족히 가야할 거리.
우리나라 지하철의 문제점... 노선을 바꿔 타기 위해선 다리품을 여간 많이 팔아야 한다는 것.
아이들 옷을 입히고 마지막으로 대충 내 옷을 꺼내 놓으니 신을 신발이 없다. 이거야 원...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이 그 순간 어찌나 간절하던지...
야채 박스 속에 있는 애호박으로 황금마차는 관두고서라도 중고라도 좋으니 티코라도 하나 만들어 줬으면 싶었다.
옵션으로 기름 값 비싸다니 수돗물로 기름으로 만들어 주시고...
피에르 가르댕이나 샤갈은 아니라도 좋으니 그럴싸한 입고 갈 정장에 유리 구두 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쁘고 발 편한 신발 하나 만들어 주시고 시간은 넉넉하게 12시간 효력이 유지 될 수 있기를...
(역시나 내 머리는 비현실적으로 발달 되어 있었다.)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급해지고... 그 순간 내 뇌리를 강타하는 것이 있었다. 남편이 6년 전 사준 굽 높은 샌들... 두어 번 신었던가? 큐빅이 촘촘히 박혀있는 화려한 그 신발은 수제화라며 가격도 제법 비쌌던 거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 화려한 것을 신고 나다닐 만한 곳이 없어서 처박아 두고 신지 않아서 잊고 있었건만... 내 머리, 치매는 아니었다.
안 신는 신발을 베란다에 있는 수납장에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것이 생각나다니... 기특한 내 머리.
신발을 꺼냈다.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깨끗한 신발... 그 멋스러운 것에 광채까지 도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통굽 슬리퍼나 찍찍 끌고 다니며 긴장을 풀고 살던 내 발이 그 세련되게 잘 빠지고 힐에 가까운 굽을 갖고 있는 신발을 받아들이기가 쉬울 것 같지 않다는 것.
신발을 신고 거울 앞에 서니 제법 옷태도 나는 것 같았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안심하려는데 발바닥의 조심이 심상치가 않다.
벌써부터 그러니... 지하철로 가며 걸어야 할 거리까지 계산하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대한의 아줌니... 폼에 살고 품에 죽기도 하지만 때론 상황에 맞게 폼死할때도 있다.
“아빈아, 네 보조 가방에 엄마 슬리퍼 싸라.”
“왜요?”
아들아, 엄마하는 일에 제발 태클 좀 걸지 좀 마라... 피곤타.
“올 때 갈아 신고 올 거야.”
“왜요?”
“자식이, 외요는 일본 놈, 이불이 외요구. 그냥 싸!!!”
몇 년 만에 신는 삐닥 구두를 신고 걸으며 몇 번을 삐끗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쪽을 여러 번 팔리고도 남았을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식장에 도착하니 30분 전이다.
인어공주가 사람의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고 인간의 다리를 얻었지만 걸음걸음 걸을 때마다 가시밭길 걷는 것 마냥 발이 고통을 느꼈다고 했던가...
난 그 날, 인어공주의 그 고통을 똑같이 겪었던 것 같다. 훗날 안델센을 만나거들랑 여쭤봐야지. 인어공주의 아픔이, 익숙지 않은 신발신고 걷는 바람에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서 겪는 고통과 비교해도 손색없겠느냐고...
식장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검정 턱시도... 통나무를 연상시키는 떡대같은 덩치...
녀석의 주변에 흩어져있는 검정 양복의 사나이들...
매스컴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었다.
결혼식장이 아니라 내가 들어선 곳이 꼭 조직의 집합소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누나, 왔어?”
녀석이 육중한 제 몸을 실어 나를 끌어안았다.
“더워. 올케는 어딨냐?”
“제가 모시고 갑죠.”
녀석이 내 손을 잡아끌더니 신부대기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늘씬하게 예쁜 신부가 앉아있었다.
“올케는?”
“저기 있잖아.”
“헉...저거 올케야?”
녀석과 살면서 생긴 기미와 주근깨는 어떻게든 화장으로 감춰지겠지만 서도 동그란 눈에 길쭉한 속눈썹...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도저히 올케가 5개월의 임산부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올케...?”
믿기지 않아서 묻는 내 말꼬리는 심하게 올라갔다. 내가 들어서자 올케의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뒤로 물러났다.
“네...형님 오셨어요?”
“그래. 지금 왔어. 어쩜 이렇게 이쁘니? 세상에...누가 올케보고 애기 엄마라고 하겠니?”
“^^...”
옷에 따라서 몸 매무새도 조심스럽다더니...올케는 곧 3아이의 엄마가 됨에도 불구하고 수줍은 미소를 띠며 장갑 낀 손으로 입가를 가리는 예의까지 보였다.
“축하한다.”
“고마워요, 형님.”
“밥은 좀 먹었니?”
밥 힘으로 산다는 아줌마의 사고를 제대로 드러내는 나의 질문... 전에 내가 치뤘던 결혼식이 떠올랐다.
나 역시 살다가 아빈이 4살 때 결혼식을 했었다. 아이를 낳고 드럼통과 맘먹는 나의 몸매는 웨딩드레스 입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날 저녁부터 쫄쫄이 굶고 다음날 식이 끝날 때까지 눈이 퀭하니 들어가서 아사 직전까지 가지 않았던가... 식이 끝나고 바로 피로연, 그리고 빠듯하게 신혼여행지로 떠나며 비행기 안에서 친구가 내민 과일바구니에서 바나나 하나 꺼내서 게눈 감추듯 허벌나게 먹던 가슴 아픈(?) 추억이 주책 맞게 그 순간 왜 떠오르던지...
그 후로 결혼식 하는 신부들만 보면 ‘얼마나 배가 고플까?’ 하는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단순무식한 뇌는 내 삶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을 비교하곤 한다.
어쨌든 내 눈에 비친 녀석과 올케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좀 남았고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니 먼저 식당에 다녀오겠다고 놈에게 말하고 그곳을 벗어났다.
식당에 올라가니 바로 아래 동생과 올케와 조카가 먼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 누나! ” “ 형님! ” “고모, 안녕 하세요.”
들어서기가 무섭게 문가에 자리하고 있던 동생가족들의 인사를 받느라고 잠깐 정신이 없었다.
“응. 빨리 왔네.”
“퇴근하자마자 오느라고 배가 고파서 여기 와 있었지.”
동생은 청와대 외각에서 근무하는 경찰로 격일제로 24시간 근무한다. 그러니 밤새고 나왔을 동생이 배고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뷔페의 음식들이 제법 다양하고 정갈했다. 동생식구들과 앉아서 먹고 있는데 얼마 안 있어서 엄마와 돌아가신 2째 이모의 딸인 이종사촌 언니가 함께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식사를 중간에 멈추고 다시 왁자지껄 서로를 반기고 안부를 묻고 다시 자리를 넉넉하게 준비해서 앉았다.
그야말로 음식이 귀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빠는?”
어느 정도 환경이 안정(?)이 되자 혼자오신 친정엄마에게 물었다.
“쉿!(007작전이라도 벌이듯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엄마가 조용히 하란다. 그리고 내 곁으로 바짝 다가앉으셨다.) 아무 말 하지마. 니 에비 안 온대. 여기 사실 우리가 올 자리는 아니잖니. 필성 아빠가(이모부) 새 부인 데리고 온 자리인데... 니 애비 나도 가지 말라는데 어찌 그렇게 해. 아빈 아범은 왜 안 왔어?”
엄마 역시 궁금한 듯 내게 물었다.
“쉿!!!(오버해서 엄마를 흉내 내며) 묻지 마러, 다쳐. 히히히히... 엄만, 아빈 아빠 본 적 1년도 안됐는데 벌써 보고 싶어? 이 사람이 얼마나 바쁜지를 엄만 여적 몰러?”
“옌병할 놈... 그래... 넌 마음 좀 가라 앉혔냐?”
역시나 내 엄마의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그 말은 곧 내 엄마는 여적 건강하단 말씀이니 반갑다. 사위 욕에 이어 며칠 전 당한 딸의 일이 걱정된 듯 잊지 않고 물었다. 기억력도 딸보다는 나은 듯하고...
^^ 부담 갖지 마시어요. 재미 나길레 퍼 온 건데...혹여 제가 리플 안 달았다고 이런 짓을 하겠어요? 이 말이 더 무서울 라나? ㅎㅎㅎ 좋은 하루들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