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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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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우.


BY 일상 속에서 2006-05-01

<img src = http://hompy-img.dreamwiz.com/PROFILE/h4y5m6/f00001/f1m/h4y5m6>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1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는 재래식 시장이 가까이에 있어서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사면되는 편리한 곳에 살고 있다.)


반찬 좀 만들어 보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파]란 놈이 한 뿌리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만 입는 편한 옷차림으로 있던 나는 옷 갈아입기가 귀찮아서 딸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아영아, 엄마 파 좀 사다줄래?”

“응”


두말없이 나갔던 딸이 10여분도 되지 않아서 들어왔다.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심부름 잘해서 이쁘냐고 아양을 떨어야 될 것이 닦으란 말도 하지 않았는데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닦는 소리를 냈다. 그리곤 식탁 바로 옆에 털퍼덕 주저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시츄레이션?’


또 다른 컨셉으로 엄마의 관심을 끌려나 보다고 생각하면서 딸의 다음 행동이 어떤 것인지 모른 척 하던 일을 계속했다.


“엄마... 있잖아.”

“응, 있어.”

“아니...”

“그래, 아니.”

“......”

“?”

“앙앙앙....!!!”

“!!!”


딸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내 곁에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놀란 나의 몸은 하던 것을 자동적으로 all stop.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 앙앙앙...있잖아...”

“그래 뭐가 있는데. 무슨 일이야. 빨리 말해!!!”


왠지 모를 불길한 마음이 조급증을 불러 일으켰다.


“어떤 오빠가... 나보고 이리 오라고 해서...”

“응. 갔어?”

“아니, 안 갔더니 그 오빠가 나한테 오더니 내 입에 뽀뽀했어.”

“뭐?!!!”


무서운 세상, 흉흉한 세상...뉴스만 틀었다 하면 별 거지같은 일들만 쏟아지는 세상. 딸의 말에 흥분과 함께 치밀어 오르는 화를 느꼈다. 하지만 내 불같은 성질도 엄마란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생각이란 것을 해보게 했다.


딸의 모습으로 보아 마음의 상처가 컸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딸의 입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심장이 콩닥거리고 뛰기 시작했다. 난 차분하고자 심호흡을 몇 번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 오빠가 뽀뽀 많이 했어?”

“아니... 한번.”

“그런데 많이 빨갛네.”

“내가 닦았어. 드러워서. 엄마 그 오빠 때려줘. 앙앙앙...”


놀란 딸이 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생각 없이 심부름을 보낸 것이 후회되었다. 우리 집 앞의 골목은 자가용이 2대는 족히 다닐 정도로 널따랗다. 으슥한 곳도 없다. 환한 대낮이었고... 아무런 걱정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걱정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오산이었다.


딸이 다녀 온 시간은 짧았다. 분명 열심히 뛰어서 다녀왔을 테니까.


“앙앙앙...엄마, 그 오빠 얼굴에 큰 점 있어. 앙앙앙... 그리고 교복 입었어. 앙앙앙... 키도 우리 오빠보다 조금만 커. 앙앙앙... 그 오빠 혼내 줄 거야?”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힌 엄마의 속도 모르고 딸은 할 말 다 하면서 끝없이 울었다. 그 상황에서 볼 것은 자세히도 다 본 딸이었다.

그날 난 딸을 진정 시키느라고 3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꾸며 돼야 했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파악했을 때 다 맞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내 딸의 경우는 얼추 비슷한 듯하다.


A형...소심함의 극치, 딸은 집 안에서 까불어 대는 것과 다르게, 밖에서는 말도 잘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무슨 일이건 되새기는 습관이 있다.


“우리 아영이가 얼마나 이뻤으면 지나가는 오빠가 뽀뽀를 다 했을까?”

“이쁘면 아무한테 뽀뽀해?”

“아니지...(난처했다. 여기서 말 잘못했다가는 아무에게나 입술을 내줄 수도 있을 테니... ) 그 오빠가 잘못은 한거지만... 나쁜 마음을 갖고 뽀뽀하지는 않았을 거야.”

“나쁜 마음이 뭔데?”

“... 그러니까... ”


밤이 되도록 딸은 혼자 우울해 했고 무서워했다. ‘어린 것이 뭘 안다고 뽀뽀하나에 상처씩이나 받고...’ 안쓰러운 마음 저편으로 생각 이상으로 조숙한 딸에게 놀랐다.


그 일이 있은 후, 딸은 악몽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다. 어느 때는 잠자는 것도 무서워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쯤, 밤에 잠이 안 오면 좋아하던 동화의 내용들을 상상하다가 잠이 들던 것이 생각났다.


잠자는 것을 싫어하게 된 딸, 밤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늦어도 9시에는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인형을 좋아하는 딸 옆에 불을 끄고 누웠다.


“아영아, 엄마가 어제 꿈나라에 갔더니 곰돌이 푸우가 널 기다리고 있더라.”


“정말?”


“응. 푸우가 사는 곳에 갔는데 너무 좋아. 커다란 나무 아래 작은 집이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니까, 집이 너무나도 넓은 거야. 푸우네 집 바로 옆 나무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원하는 음식들이 모두 나와. 푸우가 좋아하는 꿀도 나오고 아영이가 좋아하는 딸기도 나오고...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나와.”


“와~ 나는 딸기도 좋고 방울토마토도 좋고 포도도 좋은데...”


“그래... 그런 것들이 모두 나와. 그리고 푸우네 집 앞에는 작은 옹달샘이 있는데, 거긴 마술 옹달샘이거든. 내가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은 모두 보여. 그곳으로 푸우는 아영이를 보고 있대.”


딸은 내 얘기를 좋아했다. 자기를 기다리며 예쁜 여러 인형들을 만들어서 인형 방을 꾸며 놓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좋아했다.


밤마다 노란 몸의 곰이 빨간 티를 입고 아영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좋아했다.


“엄마, 그럼 난 매일 거기 가도 돼?”


“그럼.”


“거기 어떻게 가야해?”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 있지? 마녀의 구두를 신은 도로시는 구두 뒤축을 3번치고 가고 싶은 곳을 생각만 하면 되잖아. 아영이는 푸우한테 언제든지 구두 없이도 가고 싶다, 가고 싶다. 생각만 하면 갈수 있어.”


첫 날 나의 얘기를 들은 딸은 편히 잠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엄마, 거짓말쟁이... 가고 싶다고 했는데... 못 갔잖아.” 했던 딸.


머지않아 아영이는 꿈에서 정말 푸우를 만났단다. 엄마의 말과 똑같은 그곳에서 푸우와 신나게 놀았다고,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꿨다고 말했다.


후로 아영이는 잠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세상 참으로 살기 쉽지 않은 곳이다. TV로 봤던 일이 언제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방심할 수도 없다. 무서운 세상에 내 새끼들을 내놓은 죄...


엄마란 참으로 쉽지 않은 자리다.


그런 일이 있은지도 벌써 1년이 훌쩍 지났건만...

아영이가 낮에 갑자기 말했다.


“엄마, 푸우는 매일 나만 보고 있어?”

“... ! ... 응.”

“그럼, 날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내 편이겠네?”

“그럼...”

“나도 세상에서 푸가 제일 좋아.”

“그럼, 엄마는?”

“엄마랑 푸랑 똑같이 좋아.”

“그래? 그럼 엄마도 엄마 친구들이랑 아영이를 똑같이 좋아해.”

“...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제일 좋고 푸우가 다음으로 좋다. 엄마는?”


귀여운 딸이다. 속 썩일 때만 빼고.


앞으로 얼만큼 키워야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걱정을 덜 수 있을까? 내 부모님을 보니 시집, 장가보낸 자식들 일에도 밤마다 한숨이 끝이질 안던데...


정말 세상 떠나는 순간까지 이어질라나? 그럼...부모는 무슨 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