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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이야기.


BY 일상 속에서 2006-04-28

 

예전에는 TV드라마 주제가 대부분 불륜을 소재로 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거기다 대부분이 남편들의 불륜... 가슴 아파하던 여자 또한 기댈 수 있는 남자를 만나서 맞바람을 피게 된다는 것이 짜증스러웠다.


도대체, 왜 다른 곳에 한 눈 파는 남자와 한 지붕 안에서 한 공기를 마시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그랬다. 절대로 + 결단코 + 하늘이 두 쪽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남편이 다른 년(^^)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끝장이다. 뒤도 안보고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나만 훨훨 날아가겠노라고 목청껏 소리 높여 떠들었다.


그랬었는데... 그랬던 나였는데... 그렇게 떠들었다면 진작 난, 훨훨 날아서 제비가 되어 강남으로 갔던지 다른 새가 되어 어느 시베리아 하늘을 날고 있어야 했다.


몇 해 전이었다. 한, 5년 전쯤?


그때 난 10원 벌어오면 20원 가져가는 남편의 무능력 앞에서 세상을 향해 도약이란 것을 해보겠다고 잠시 동안 공인중개사 학원을 다녔다.


자고로 여자와 바가지는 밖으로 내돌리면 깨진다는 얼토당토한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처음부터 반대가 장난 아니었던 남편. 그때까지만 해도 난 주변 사람들 신경 덜 쓰고 나의 고음을 자랑스럽게 집 밖으로 흘려보내곤 했다.


남편이 돼먹지 않게 살림을 때려 부수는 흉내를 내면 난 그것을 그 자리서 아작을 내곤했다.


예를 들면, 전기밥솥 살짝 집어 던져서 겉만 살짝 찌그러진 꼴을 보면 그 밥솥을 다시 들어서 제대로 파워있게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안의 내용물까지 확인하고야 말았다. 또, 무선전화기나 리모콘을 집어 던졌는데 별로 반응 없는 체로 있으면 난 그것들이 산산이 부서질 때까지 남편이 보는 곳에서 던지고, 던지고 또 던졌다. (결코 자랑은 아니다.)


그리고 나의 한마디...


“ 그래!!! 너 돈 잘 버는데 부수려거든 제대로 부숴. 내가 도와주리??? ”

“ ....... ”


나의 친정아버지는 엄마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시며 살았다. 그리고 한때는 여자까지 들여서 뼈가 시리도록 찬바람이 불어치는 한 겨울, 아랫목만 철철 끓는 곳에 첩을, 아버지는 가운데, 엄마는 냉골인 윗목에서 주무시는 진풍경을 만들기도 했단다.


(이런 얘기, 엄마가 해주신 적은 없다. 이모들로부터 들은 얘기니까...)


아버지는 노름에도 일가견이 있으셔서 집 여러 채를 날리기도 하셨다. 버시기도 쓰시기도 잘하신 분이다.


초등학생 때, 학교 옆에 엄마는 외할머니가 사실 집을 마련해 주셨다. 우리들이 버스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이면 집에 가곤했는데 어느 때는 엄마의 앞니가 하나도 없었다. 부엌에서 넘어지셨다고 했다.


어느 때는 움직임이 이상해서 주무실 때 살펴본 몸에서 검게 물든 피멍들을 봐야 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난 속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 나닐 때였다. 한창 사춘기 시절, 그때는 임신한 여자들만 봐도 불결했고 내 눈에 비친 어른들이 제대로 된 인간들도 없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것을 보고 아빠에게 대든 적도 여러 번.


“ 저년이 사람 죽인 년이야!!! ”


술 취해서 떠드는 아빠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머지않아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첩으로 데리고 살던 여자가 엄마를 쫓아내려고 자기 친정식구들을 불러 들여 엄마에게 몰매를 가한 적이 있단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어처구니없게도 매일 집에서 술판을 벌이고 노름판을 벌이던 그 여자가 지식구들을 불러서 엄마를 잡아 뜯게 했단다.


- 이 광경은 어렴풋이 나에게도 생각이 난다. 아주 어릴 때였는데...엄마가 여러 사람에게 맞았고 난 울고불며 엄마에게 가려고 했는데 누군가가 부둥켜안는 바람에 꼼짝을 할 수 없던 광경이... 엄마는 그 날 저녁 어딘가로 피신해서 날품에 안고 우셨다. 그리고 “ 선자야...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데리러 올게... ” 하셨다. 난 싫다고, 안된다고 울고 매달렸다. 엄마가 어디로 갈까봐서 항상 불안해했던 나였다. -


그 여자의 식구들이 엄마를 때리고 있을 때 아빠가 바다에서 돌아와 그 광경을 봤고 뜯어 말리며 엄마를 보호 했단다.


그리고,

“ 이 여자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때립니까? ” 라는 한마디를 하셨단다.


그길로 여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머지않아 목을 맺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단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엄마는 아빠에게 사람 잡은 년이 되셨다.


난 커가면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매일 바보같이 맞고 있으니까 아빠의 손찌검이 끝임 없는 거라고... 맞는 사람이 더 바보 같다고... 왜 참고 사느냐고... 그냥 이혼을 해버리지...


자식의 발악에 엄마는 “ 너희들 때문에... 너 때문에... ”라는 말로 답하셨다. 내 귀에는 변명도 그런 어리석은 변명이 없었다. 왜 우리 때문일까...


난 아빠에게 참 많이도 대들었다. 아빠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떠들었고 엄마를 때리면 부둥켜안고 있다가 덩달아 맞았음에도 겁 없이 고개 빳빳이 쳐들고 더 때리라고 그래서 다들 죽이고 아빠 혼자 거지 같이 살라고 울부짖어 댔었다.


언젠가는 그런 내 앞에서 아빠는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 저 년이 왜 나만 저렇게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 하시며...

왜 미워하는지 정말 몰랐을까...


나의 이런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생각한 것은 남편의 손찌검 앞에, 술주정 앞에 절대로 여자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과 독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밖으로 돌았을 남편 역시 술주정이 심했다. 성질 못된 나는 그런 남편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그러니 신혼 초부터 우리가 벌였을 신경전이야 불 보듯 뻔할 것이다.


남편은 얼큰하게 술 취한 늦은 퇴근 시간에, 대접에 소주 한가득 따라서 안주 없이 원샷까지 해대는 마누라의 모습을 수없이 봐야 했다. 내게 있어서도 참으로 험난할 때였다.


시댁에 내려가면 다들 곧잘 하시는 말씀들이 있다. 생글생글 곧잘 웃고 싹싹한 내 앞에서,


“ 5남이 저것이 원체 사람이 되버렸시야... 매일 사고만 치던 것이...”


하고 말씀들 할라치면 속으로 뜨끔뜨끔 얼마나 찔리던지.


남편은 차츰 나의 성질을 인정했고 받아 들였다. 한 번씩 남자의 자존심을 운운하며 입에 게거품 풀 때가 있는데... 나의 요령이 이제는 그냥 그쯤은 내버려 두며 봐주게 한다.


마누라의 성질을 파악하고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그럼에도 매일 새벽 2~3시에 술이 떡이 돼서 들어오는 것이 다반사였지만 그 역시도 참았던 나다.


노가다 판에서 사람 관리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나 싶어서...

그렇게 나름대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학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고 예습하다가 깜박 잠들었을 어느 때였다.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따르르릉.....

“ 나, 집에 들어왔다. ”

찰칵.


따르르릉....

“ 나 집에 들어왔다고...”

찰칵.


따르르릉....

“ 뭐, 어쩌라고... ”


이런 소리들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참... 그 기사들 대충들 좀 하지...사장 등골 제대로 휘려 드네...’ 하고...


그런데, 내 귀에 이어서 들리는 소리가,


“ 너 나한테 주려고 애 쓰냐?... ”

!!!....


내 육중한 몸도 빠를 수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선 몸이 거실로 나가는 순간, 놀란 남편이 김치 냉장고 옆에 쭈구리고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 폴더를 닫는 거였다. 나의 ‘설마’가 발등 찍는 순간이었다.


곧 나에게 핸드폰을 뺏긴 남편은


“ 네 맘대로 해. ”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어린 딸 옆으로 누워버렸다.


난 떨리는 마음으로 남편의 핸드폰에서 제 다이얼을 눌렀다.

‘어머나’ 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가 찍히고 신호음이 갔다. 그리고 간드러지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럴 수가... 드라마에서 있던 일이... 내게도 벌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 누군가요? ”

“...네? 여긴 술집인데요... ”

“ 술집인데 뭘 어쩌라고 남의 신랑한테 늦은 시간에 전화질인가요? ”

“ 손님이 없어서요. ”

“ 그 술집 우리 신랑이 먹여 살리던가요? ”

“ 네? ”

“ 우선 알았으니까. 끊어요. 남편과 얘기부터 해보죠. ”


그날, 새벽 2시 조금 넘어서 주변 사람들은 다들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을 것이다. 그리고 날이 밝는 대로 다른 곳으로의 이사를 심각하게 고려해 봤을 것이다.


핸드폰에 이름도 아닌 ‘어머나’로 새겨 넣은 것도 기가 막혔고 집에 쥐뿔도 갖다 주는 것도 없는 사람이 여자 있는 술집으로 들락거렸다는 것도 기가 막혔다.


그럼에도 그토록 남편이 딴 여자에게 눈길 주면 두말없이 훨훨 날아가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것이 불같이 화만 내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미칠 지경이었다.


남편은 그 여자의 전화번호를 입력한 적도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농간이고 계략이며 세상에 여자라고는 달랑 나 하나라는 말들로 달래려 했지만 내 귀로는 개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남편의 말을 뒤로하고 다시 여자에게 전화를 했다.


“ 여보세요. ”

겁 없이 전화를 받던 여자의 차분한 목소리 앞에 잃을 이성도 없는 나는 졸도하기 직전이었다.


“여보세요? 너 거기 술집 어디야. 이 인간이 좋디? 잘해주디? 식구들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게 돈이랍시고 몇 푼 갖다 주는 이 인간이 그리 좋으면 내가 나갈 테니 너 여기 들어와서 살림해라!!!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여긴 술집이라구요... 그냥 손님일 뿐이에요.”

“넌, 집에 들어갔다는 아무 손님한테 질기도록 전화질 하는 게 밥 처먹고 사는 수법이야? 이런 개***이~, 너 누구 염장질러???”


뚝.....띠이......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와 남편에게 확실하게 각인 된 것이 있다.


내 남편은 절대로 바람피울 위인이 아니다, 했던 나의 발상은 웃기는 자만이었다는 것을. 어쩌면 나 역시 바보같은 우리 엄마처럼 남편이 대놓고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도 불쌍한 내 새끼들 눈에 밟혀 쉽게 떠나지 못할지도 모른 다는 것을.


남편은 그때 그랬을 것이다.

“저것이랑 사는 동안은 어설프게 계집질 했다가는 큰 일 나겠구나... 워낙 더러운 성깔인지 알고 알았지만... 무섭다...” 하고...


세상을 향해서 도약하려던 나는 도약은커녕 몇 발자국 뛰지도 못하고 내 터에 주저앉아 버렸다. 학원을 그만 뒀다는 말씀. 이유가 남편의 어설픈 외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고보고 또 봐도 어쩌면 책의 내용들이 그리도 새로운지... 내 머리의 한계를 알았기에 아까운 돈 낭비를 하지 말자는 비중이 컸다.


벌써 몇 년 전 일이건만 지금도 가끔 한번씩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표어처럼 남편의 핸드폰을 뒤지는 습관이 생겼다. 한번 받은 마음의 상처... 후유증이 너무나도 큰 것 같다.


연륜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닌가보다. 나보다 결혼생활 후배나 나이어린 주부들이 남의 집 외도 문제들 앞에서 “ 왜 그러고 사니? 나라면 절대로 그러고 살지 않아. 지금 세상이 어느 땐데.. ” 하고 잘났다고 떠드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쓴웃음이 떠오른다.


그려... 잘났다. 느그들도 당해보면 그런 말이 그러코롬 나오겠냔 말이지...


그래서 난 ‘시앗’ 을 두고도 참고 사는 어느 분이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검게 타있을 속으로 남편을 마주하고 있는 그 대단함 앞에서 조심스럽다. 인내 속에 싹트고 있는 다른 마음이, 어쩌면 세상 겁 없이 날 뛴 그이들의 파탄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그 독한 마음이, 오히려 우리들보다 한 수 위로 여겨진다. 무서운 분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별수 없는 나약한 대한민국 아줌마임을 깨닫는다.


나의 실체가 하나 둘씩 들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