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런데
둘째의 돌을 지내고 얼마 안되어서 또 아이가 들어선 것이다.내가
막내를 날 당시 우리나라는그저 둘만 낳아 잘 살자는구호가 한참 이었고,아이가
셋인 사람은 야만인 취급을 받던 시절 이었다.의료보험도
아이는 둘까지만 되었다.
‘어떡하지?’
‘뭘 어떡해 ? 낳아야지.’
너무도
당당한 내말에 아무소리도 안 하는 내 남편.우리는
이미 딸,아들 골고루 하나씩 있는 데다가,가톨릭
신자이기에 앞서 한 사회인으로서,당시의
사회 분위기상 이것은 모험같이 느껴졌을 것이다.나도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 이나, 애써 태연한 척 받아 들였다.당장
직장에다가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내 나이가
이미 만으로도 35세, 한국나이로는 36세였다.노산이었다
. 그때 그 당시는…남들이
웃겠지 ?잘난척
하고 하나만 낳겠다고 큰 소리 빵 치더니만 …
그러나
내가 하나 더 낳지 못할 이유를 따져 보았다.어디가서
나쁜짓 한 것도 아니고,건강도
허락 되고,비록
비싼 과외는 못 시키고 호강은 못 시켜도아이
하나 더 못 키울 정도의 형편도 아니고,.사람들의
비웃음(?)은 평소 나의 뱃포 하나로 밀고 나가지 뭐.결국
못낳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병원에를
갔다.‘
아들, 딸 다 있잖아요? 근데 나실거예요?’‘
네.’‘
좋습니다.’이것을
시작으로 나는 가는 데마다 아이를 낳을거냐는 질문에 시달렸다.‘
또 임신하셨어요?’ 라고 묻는 직장의 남자 동료들 ,‘
네가 그렇게 인간적 인지 몰랐다’ 라는 여자 동료들.‘
너는 애낳다 네 인생 끝나겠다. 도대체 어떻게 교육시킬래?’ 라는 친구들,낳지
말라는 친정 어머니,야만인
이라고 놀리는 남편 회사의 직장상사,시람들마다
다양한 반응이었다.
‘아니 욕심도 많지, 뭐하러 또 나요?’ 라는 동갑의 남자동료에게
‘
이 안에 어떤아이가 들어있는 줄 알고들이나 그런 소리 하는거예요?장차
이나라 이세계를 이끌어 갈 지도자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구요,’라며, 또 한번 큰소리를 빵 쳤다.
그때부터
나는 그 방에서 각하(?)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우여곡절
끝에 생돈(?)을 모두 지불하고 아이를 낳으니까‘
각하, 탄생 하셨습니까?’라는 동료들의 농담어린 축하인사를 받았고반대하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그러나
아이를 업고 다닐때도’아줌마, 그 아이는 왜 또 낳았어요?‘
‘어떻게 아이가 셋이나 되요?’
’큰 아이랑 차이가 많이 나네요.’ 등등....
많은
질문에 시달려야만 했다.내가
세째를 낳고 난 후 일년이 지나자세째
아이에 대한 의료보험 금지조항은 은 해제가 되었고지금은
아이 많이 낳는 것을 국가에서 장려 하는 분위기이니나는
선구자(?)였고 선구자는 외롭고,힘들다고 누가 말했던가?
아이
셋.지금
미국에 와서 살다보니 결코 많은것이아니라는것을느낀다.아이
셋을 낳아 키우면서나는
내안에 들어있던 물욕,경쟁심, 오만함등 많은것 을 버릴수 있었다.그러나
계속적으로 늘어만 가는 것이 있다.그것은
남편에게 세아이를 낳아준(?) 공치사와세번이나
늘어났다 줄어든 이후로 원상복귀는 커녕,늘어만
가는 뱃살이니 이를 어이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