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지금 살아계신다면 74세.
그러니까 아득한 그때가 77년 봄이었다.
만난지 얼마 안된 지금의 아들아빠.
그의 생일이라고 초대를 받았다.
쬐금한 몸뚱이 였던 난 주홍색 원피스를 입고
첨으로 그 집에 발을 들여 놓았다.
아담한 작은집 마당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
그 많은 정원의 화초들.
영산홍 자산홍 자목련 백모란 작약 접동백
마당이 거의 없던 집에서 자란 나는
그 향기에 정신이 아득했다 해도 과장은 아니였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궁금하셨던 아버님은
점심을 드시러 일부러 들어오셨다.
씩 웃으며 겸연쩍어하던 그모습.
그게 46살 젊은 나의 시아버님과의 첫대면이다.
21살 나와 아버님.
우린 당신아들이 통합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대구에 있는 큰 동물원엘 같이 놀러갈 정도로 친했다.
아버님은 왜 그리 날 이뻐하셨을까?
철없고 예의도 모르는 어린처녀앨
당신 큰자식이 좋아한다는 거 하나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셨다.
육남매를 박봉으로 학교보내고
두내외 자주 아프셔서 입원하시고
그야말로 빚이 대추나무 연 걸리듯 하는 살림살이.
내 친정에선 막무가내 반대하셨다.
직장도 없고 큰아들이라 안되고
아직 딸 시집보낼 경제적 여유도 안되고
밥도 제대로 시켜보지 않은 여린딸을 시집보낼 수 는 없었다.
내 시아버님.
시어머님을 졸라 내 친정집을 가시게 했다.
아들 취직도 시키고 같이 데리고 살지 않을 거며
살림살이 다 가르칠테니까 보내만 주라고.
결혼날 내가 인사옷으로 해 드린
감색양복을 입고 앉아계시던 그 모습.
아버님!
그리도 좋으셨나요?
새 며눌 보시는게.
이제 그 아들과 며늘
오십이 넘었답니다.
아버님 당신은 지금도 첫며눌이 해드린
그 감색 양복을 입고
47세 그모습으로 천국에서
당신의 귀한 손주가 군복무 끝내고
돌아올 날 손꼽고 계시겠죠?
고맙습니다. 아버님.
당신들의 은덕으로 제 아들녀석 좋은 곳에서
무사히 잘있다 이제 제대하고 온답니다.
항상 이 봄
꽃들이 흐드러질 때 면
연산홍 한가지 손에 쥐고
여덟식구 못잊어 어찌 그 길 떠나셨는지
지금도 당신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