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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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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세 시아버님.


BY 아리영 2006-03-30

아버님이 지금 살아계신다면 74세.

그러니까 아득한 그때가 77년 봄이었다.

만난지 얼마 안된 지금의 아들아빠.

그의 생일이라고 초대를 받았다.

쬐금한 몸뚱이 였던 난 주홍색 원피스를 입고

첨으로 그 집에 발을 들여 놓았다.

아담한 작은집 마당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

그 많은 정원의 화초들.

영산홍 자산홍 자목련 백모란 작약 접동백

마당이 거의 없던 집에서 자란 나는

그 향기에 정신이 아득했다 해도 과장은 아니였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궁금하셨던 아버님은

 점심을 드시러 일부러 들어오셨다.

씩 웃으며 겸연쩍어하던 그모습.

그게 46살 젊은 나의 시아버님과의 첫대면이다.

21살 나와 아버님.

우린 당신아들이 통합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대구에 있는 큰 동물원엘 같이 놀러갈 정도로 친했다.

 

아버님은 왜 그리 날 이뻐하셨을까?

철없고 예의도 모르는 어린처녀앨

당신 큰자식이 좋아한다는 거 하나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셨다.

육남매를 박봉으로 학교보내고

두내외 자주 아프셔서 입원하시고

그야말로 빚이 대추나무 연 걸리듯 하는 살림살이.

 

내 친정에선 막무가내 반대하셨다.

직장도 없고 큰아들이라 안되고

아직 딸 시집보낼 경제적 여유도 안되고

밥도 제대로 시켜보지 않은 여린딸을 시집보낼 수 는 없었다.

 

내 시아버님.

 시어머님을 졸라 내 친정집을 가시게 했다.

아들 취직도 시키고 같이 데리고 살지 않을 거며

살림살이 다 가르칠테니까 보내만 주라고.

 

결혼날 내가 인사옷으로 해 드린

감색양복을 입고 앉아계시던 그 모습.

아버님!

그리도 좋으셨나요?

새 며눌 보시는게.

 

이제 그 아들과 며늘

오십이 넘었답니다.

아버님 당신은 지금도 첫며눌이 해드린

그 감색 양복을 입고

47세 그모습으로 천국에서

당신의 귀한 손주가 군복무 끝내고

돌아올 날 손꼽고 계시겠죠?

고맙습니다. 아버님.

당신들의 은덕으로 제 아들녀석 좋은 곳에서

무사히 잘있다 이제 제대하고 온답니다.

 

항상 이 봄

꽃들이 흐드러질 때 면

연산홍 한가지 손에 쥐고

여덟식구 못잊어 어찌 그 길 떠나셨는지

지금도 당신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