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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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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BY 은웅택 2006-03-13

우리는운이 좋은편(?)이었다.

여기로 오기전 남편 회사에서는 이곳으로 일부러 일주일간 출장을 보내주었다.

가서 은행구좌도오픈 하고 집과차 학교등을 미리 알아보라고 말이다.

남편이 집을보러 왔을당시는 12월이었다.

한국에서도 이사철이 봄가을에서 아이들 방학때로 바뀌었듯이

이곳도 여름방학동안 이사를 많이 한다.

그러다보니 부동산시장은 봄부터 시작하여 여름까지가 제일 바쁘다고한다.

그런데12월이니....

작은마을 이라 임대물량도적었다.

세집 중에서 골라야 할판이었다. 이곳은 세개짜리 아파트는없었고

음식냄새가 걱정이되어 단독주택을 알아보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첫번째 집은 지은지 100 정도 되는집으로 삐꺽삐꺽 하더란다.

둘째집은 몇년 안된집으로 아주 좋은집이었으나

우리식구가 살기에는 너무넓더라나(?)

세번째집은 한국의 36평정도 되어 보이는새로 지은집이어서

결국 남편은 세번째의 새집으로결정하였단다.

(이것은 두고두고 딸아이로부터 불평을들은부분이다.)

 

계약을 하기위해 회사 경리담당이사와 갔단다.

참고로 미국은 집을 빌려 주거나 해도 신용조사를 한다.

여기서도 딜을 한다고 많이깎는데, 한국사람한테도 깍지를 못하는

우리순둥이 남편이 무엇을 깎았겠는가?

나중에 알고보니우리집의 임대료는 상당히 비싼것이었다.

깎아줄 생각으로 올려 놓은것이니까...

미국에 처음온 사람들은 말한다.

안들리니 귀막히고. 말못하니 입막히고, 알지못하니 움직이지못한다고

그러니 남들이 하라는데로 할수밖에 없다고

결국 정착하는데많은 수업료를 지불해야만한다.

회사경리랑 같이간것이나

이사람들의 개인주의는 깎는것까지는 도와주지 않는것이다.

남편은 미국에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회사의 이름으로 차와 집을 계약해야만 했다.

집주인과 만나서 계약을 한후에 집주인이 말하더란다.

본인이 한국전쟁때 군인으로서 한국에 있었다고..

우연의 일치지만 거의 50년만에

그페허의 나라에서 한국인이 신기하였나 보다.

집주인은 40일동안남편이 혼자있을때 식사도 초대해주고

여러가지면에서 자상하게 돌보아 주고 많은것을가르쳐 주었다.

독일에서 이민온 사람들의 후예답게 모든것이 정확하고

자동차 판매상을해서 돈을 모은분답게 우리집의 차구입과 판매를 도와주셨다.

이분의 생각은 새차를 사고 2년이 지나면 값이 반으로 떨어지니

2 정도 헌차를그것도자동차판매상이 아닌 개인에게서

직접 구입하는것이 훨씬 싸다는것이었다.

헌차를 팔때도 직접 광고를 해서 파는것이 유리하다는것 이었다.

그분은 우리에게 3대의차를 사주시고 한대의 우리가쓰던 차를 팔아주셨다.

우리에게 비싼임대료를 받은대신 다른부분에서 절약을하게끔 도와주신것이다.

그분이 사주신 차중 한대는 아직도우리가족이애용하고있고

다른차는 우리가 그분에게 배운대로 팔았다.

남편을 처음 이곳 농구장에,경매하는곳에,자동차전시장등에 데리고 다니면서

  은행가서 융자는어떻게 얻는지등을, 정말많은것을가르쳐주셨다.

그렇게 많은것을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그분은 우리가 그집에서

우리집을 사서 나오구 나서도우리 남편의 든든한 의지처였다.

그러나 암에 걸리셔서 작년 이맘때 저세상으로 가시고 말았다.

돌아가신분을 이곳에서는 곱게옷을입히고 꾸며서 사람들에게보여준다.

그때 뵈었을때 편안한 얼굴임을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분명 좋은세상으로 가셨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상대방에게조금 손해를 보는것 같아도 언젠가는

그것이 새끼를 쳐서 크게 되어 돌아오니 너무 각박하게 살지말라신

시어머님의 말씀이생각이 난다.

비록 조금 더낸 임대료였지만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것을,

돈으로는 계산할수 없는것을 그분께 받은것이다.

오늘 이글을 쓰면서 그분의 명복을 다시한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