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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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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


BY 은하수 2006-02-03

산다는 것이 적응의 연속이다.

적응을 잘 하면 인생이 탄탄대로일 것이고
그러질 못하고 비척댄다면 인생도 그럴 것이다.

결혼 10년이 넘은 지금 시어머니에게 적응이 되려고 한다.
이제사 어머니가 무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것 같다.
왜 진즉에 몰랐을까?
알았더라면 쓸데없는 실망 안하고 편하게 살았을 텐데.


첫째 돈을 좋아하신다.

이 간단한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홀로 되신지 오래인 어머니에겐 돈이 큰 의지처이다.
애정 표현의 가장 간단하면서 효과만빵인 방법이다.
말씀으론 돈이 다가 아니라 하셨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둘째 선물을 좋아하신다.

검소가 미덕이 아닌 생존의 방식이 되어버린 어머니에겐 모든 물자가 귀하다.
어머니에겐 모든 것이 새롭고 있을수록 좋은 것이다.
이미 온집안이 물건으로 포화되어 어떤 선물에도 그저 기뻐하지 못하고 맘에 안드는 것은
퇴짜 놓고야 마는 친정엄마에 비한다면 시어머니는 너무 단순하셔서 오히려 맘이 편하다.
어떤 것을 선물해도 좋아라 하시므로...


셋째 돈과 선물의 적당한 조합을 제일 좋아하신다.

그동안은 잘 몰랐다. 오랜동안의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결론이다.
빠듯하지만 오순도순 잘 사는 둘째, 셋째에게서도 선물은 받을 수 있으니
맞벌이인 우리에겐 다른 것을 기대하시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값비싼 선물만을
돈 대신 드렸으니 어머니로선 답답한 노릇이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돈만 불쑥 내미는 것도 이뿐 며느리의 착한 매너는 아니라고 본다.
요긴할 것 같은 자그마한 소품 정도(값은 상관없다.)로 맘을 살랑이게 한 다음
여기에 도톰해 뵈는 흰 봉투를 적당한 멘트와 함께 내민다면
오뉴월 엿가락같이 녹아 내리는 것이 시엄니 맘인 것이다.
 

넷째 생활력 강하면서 명랑쾌활한 며느리를 좋아하신다.

딸아들 구별말고 둘 정도는 씀풍 낳아 하얀 배추포기마냥 깨끗이 씻어 키우고
음식 잘해서 아들 손자 배불리 먹게 하고
집 안팎을 야무지게 꾸미고 쓸고 닦고 하는 살림꾼 며느리를 좋아한다.
거기에다 돈까지 벌어와서 자신의 생활비 보태는 것쯤 아무렇지 않아 하고
아들돈 내가 좀 쓰기로서니 어쩔소냐 하는 시엄니 뱃짱을 화통하게 인정해주면서
자신의 호젓하고도 안정된 노후생활에 걸림돌이 아닌 버팀목이 되어 주길 바라신다.
또한 아이들 키우는데 시엄니의 도움을 바라기는 커녕 우리끼리 사니까 편하고 좋아요
하고 씩씩하게 말까지 해주어 올라오던 일말의 양심의 가책 내지는 미안한 마음마저도
수채구멍으로 시원히 떠내려 보내주기를 바라신다.
아들의 도움을 받고 있을 뿐이니 며느리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는 않다는 강한 바램이 있으시다.
이것도 삼각관계라면 삼각관계가 아닐까. 시엄니와 나는 아들을 매개로 만날 뿐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 기본적인 틀을 이해한다면 시어머니에게 섭섭한 소리를 듣거나 소득도 없는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다섯째 질척거림 없이 보송보송한 인간관계를 좋아하신다.

난 쿨하지 않지만 울 시엄니는 쿨하시다.
낳기만 낳으라고 다 키워 주겠다더니 어찌된 거냐고 따지며 대드는 며느리가 너무 우습게 보이신다.
바보야! 그 말을 믿었니??? 남이 낳으란다고 낳냐??? 니 아들을 왜 내가 키우냐??? 속으로 그러실 것 같다.
물론 둘째가 두살이 넘도록 두 아이를 키워 주신 은공을 내가 어찌 잊겠냐만서도 말이다.
하지만 이젠 방학 때도 손자가 와있는 것을 반가와 하지 않으신다.


보송보송한 인간관계의 기본은 건강이다.
누구 하나가 아프다면 지금만큼 서로에게 독립적이고 쿨한 관계는 성립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팠을 때 어머니에 대한 나의 기대치와 나에 대한 어머니의 기대치가 그동안 너무 달랐음을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지금 내게 칭찬을 해도 칭찬의 이면엔 언제라도
비난과 야유의 화살을 준비하고 계심을 안다. 외줄을 타는 광대의 심정이 이럴까? 
다행히 난 건강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솔직히 아플 때 보자고 이를 갈았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만나는 어머니를 뵐 때마다 어머니의 늙어감을 뵐 때마다 갈등이 생긴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어머닌 확실히 고수이시다.
칭찬과 채찍을 교묘히 잘 사용하신다.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나는 어머니가 제발 아프시지 않기를 빈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내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당신 아들에게 얘기하세요 하고 말하지 않게 되기를 빈다.

나도 두번다시 외줄에서 떨어지지 말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