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금요일 오전에 출근을 하는 화정점은 롯데마트 3층에 있었다.
주차장으로 통하는 자동문 앞에 서점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자동차 매연이 꾸역꾸역 서점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한쪽 면이 밖을 볼 수 있는 창가가 있다는 장점을 갖은것에 비해 주차장을 옆에 끼고 있다는 것이 큰 단점이라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은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자동문이 계속 열렸다 닫혔다하는 반복음이 산란하고 서점앞쪽엔 2층 으로 내려가는 에스켈레이터가 있어서 철컥철컥 쇠소리가 끝임없이 들려서 고객에게 전화가 오면,네? 잘 안들려서요. 조금 큰 소리로 말씀해주세요? 이런 말을 자주 해야만 했다.가뜩이나 하이톤인 내 목소리가 한 톤 더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소음과 오염속에 시달리는 서점이었다.
그랬던 서점이 지난주에 일층으로 이사를 했다. 이층에서 일층으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 계단밑에 서점은 둥지를 틀었다. 저번에 살던 곳은 네모다란 둥지엿는데 이사한 곳은 빼빼로처럼 길죽한 둥지였다. 이사하고 처음으로 출근하던 날이 11월11일이라서 일층 서점으로 발을 디디면서 빼빼로 날에 희안한 우연이지만 빼빼로를 닮았네 하면서 혼자 웃음이 나왔다. 양옆으로 길죽하게 책장이 책을 가득들고 서 있고, 뒤쪽으로 컴이 있는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상에 몸을 붙혀 서 있을 땐 몰랐는데 한발자국 뒤로 걸었더니 천장은 내 머리통과 맞닿아서 생각없이 뒤로 물러서면 천장은 내 머리통을 한대씩 때리곤 했다. 계단밑이라서 천장이 사람 키보다 점점점 비스듬하게 생긴 곳,미끄럼틀 같기도 했다. 난 키가 큰편이라서 화정점에 근무하는 두 명의 직원보다도 더 불편하겠군... 그러면서 그 옛날 고개를 숙여야하는 계단밑 다용도실이 생각나 또 한번 혼자 웃어야했다.
신혼살림을 서울 대조동에 펼쳤었는데, 남편이 헛튼 짓을 하는 바람에 전셋집을 반 이상 잘라 먹어서 남는 돈에 맞춰 이사를 간곳이 성남이었다. 서울보다 집값이 훨씬 싼 그곳은 계단 밑에 화장실과 다용도 실이 있었다. 화장실은 그런대로 천장이 높은 쪽에 자리를 잡아서 서서 볼일을 볼 수 있었지만, 빨래와 허드레 물건을 넣을 수 있는 다용도실은 허리를 곧게 펼 수 없는 미끄럼틀 천장이었다. 나는 허리를 곧게 펼 수 없는 다용도 실에서 첫아이를 키웠다. 세탁기가 없어서 그곳에서 손 빨래를 했고, 겨울엔 김장을 해서 그곳에 두고 먹었다. 다른 건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는데, 지렁이가 벽에 척척 걸쳐 있는 건 참기가 힘들었다. 그늘지고 습해서 그런지 지렁이는 자주자주 다용도실 벽과 바닥에 나타나서 나를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난 지렁이 꼬여들지 말라고 락스물로 날마다 벽과 비스듬한 천장을 닦았지만 지렁이는 끈덕지게 날 놀려 먹었다. 지렁이가 벽에 걸려서 공중 곡예를 하고 있으면 실눈을 뜨고 빗자루로 털어내든지 아니면 남편을 불러댔다. 실업자였던 남편은 방바닥에서 빈들빈들 놀고 있었을 때였는데, 평소땐 쓸모가 없다고 무시해 버렸는데 이럴 땐 남편을 소리쳐 불렀다. 그럼 남편은 난 또 뭐라고 하면서 지렁이를 벽에서 끄집어 내서는 실업자가 할 일없이 하루를 흘려 버리듯 물을 끼언져 지렁이를 하수구로 흘려 버렸다.
새로 이사한 서점은 낯설고 창이 길어서 그런지 추웠다. 콧물이 나오고 손이 시렸다.아침에 원래 커피를 안마시는데 창이 넓다란 이 곳에서 첫기념으로 커피 생각이 나기도 하고, 추우니까 더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누가 볼까 눈치를 보며 몰래몰래 마셨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일을 하면 음식은 절대 금물이다.만약 들키는 경우엔 그 자리에서 창피를 삼키야 하고,아니면 몇시간씩 심화교육을 받아야하고, 심하면 일을 그만 두어야한다.그런대도 다들 몰래몰래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는다. 틀에 잡아맨 회칙에서 벗어나면 안되는 줄 누구나 알면서도 누구나 그 틀 사이를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듯이 적당히 알아서 반칙을 한다. 대기 자세로 있을 땐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삐딱하게 서 있지 말고 똑바로 정자세로 서 있어야하고, 옆 사람과 잡담을 하지 말며,사적인 전화는 절대 금물이고...등등 사람으로서는 지키기 힘든 회칙이 뻑뻑하고 살벌하지만 그 살벌함 속에 유둘이가 있고 스리슬쩍 빠지고 나가는 틈새가 있기 마련이다. 암튼 절대 먹어서는 안될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런데 그 종이컵을 그대로 놔 뒀었는데 서점직원이 와서 커피잔을 보더니 듣기 싫은 소리를 몇마디 들어야 했다. 저번에 난 이 직원이 고구마 먹는것도 봤는데, 난 그때 웃으면서 "저예요.괜찮으니까 맛있게 마저 드세요." 했었는데...참말로 회칙처럼 뻑뻑한 여자구나 속으로 중얼거리고 말았다.
화정점엔 두 명의 여직원이 있다. 한분은 윗글에 쓴 여자분인데, 굉장히 권위적이고 내 위에 서 있는 우두머리같은 여자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 나이가 좀 들어보이고 살집이 있고 강하게 생긴 여자다. 물론 이 서점의 총 책임자이기도해서 나한테 뻑뻑하게 구는지 모르지만 다 그런건 아니다. 이 여자분만 유난맞게 나를 아랫사람대하듯 말을 하고, 그냥 넘어가도 될일을 가지고 그 자리에서 내려깔 듯이 말을 한다. 내게 말도 잘 안 붙히고, 사소한 것을 가지고 확대시켜 큰일이 날 것처럼 말을 뱉어 버리는 성깔 당찬 여자분이다. 다른 한분은 내게 언니처럼 같은 직원처럼 같은 여자처럼 대해준다. 내가 새로산 옷을 입고 가면 언니~~ 예쁘다, 어디서 얼마주고 샀어요? 하고, 소소한 이야기도 잘하고 물어보고 웃어주고 날 동등한 직원으로 대해준다. 내가 외출할 일이 있어 머리에 신경을 쓰거나 화장을 다시 고치거나 하면, 언니 다른 사람 같아요. 어디가는데? 좋겠다..하면서 잘 다녀오세요? 인사를 하고 다정하다. 그래서 난 한 여직원을 만나면 안 반갑고, 내가 뭔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까 괜히 주눅이 드는데, 한 여직원을 만나면 반갑고, 말 한마디라도 다정하게 얘기하고 싶어진다. 나도 일을 하면서도 어느 곳에 가서든지 안 반가운 여자보다는 반가운 여자가 되고 싶은데, 내가 말 수가 적고 붙임성이 없어서 안 반가운 여자가 되어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천장이 다용도실을 회상케하는 새로 이사한 서점은 길죽한 창문이 있다. 바깥 길이 훤하게 다 보인다. 밖엔 늦가을이라 잎이 없어 빈가지로 서 있지만 아카시나무처럼 자잘자잘한 잎이 달리는 예쁜나무가 있고, 일차선 도로가 있고, 맞은편엔 피자헛집이 고급스럽다. 이제 곧 눈이 펑펑 소리 없이 내리면 난 이 곳에서 소리 없이 눈을 즐길것이다. 그리고 몰래 커피 한잔을 타서 홀짝홀짝 마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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