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 의해 밟혀진 꽃은 절로 시든 꽃보다 더 쓸모없고 다시 일으켜 세우려
물을 주고, 기댈 수 있는 받침대를 만들어 주어도 다시 향기를 품기 힘들다.
9년동안 차곡 차곡 쌓아온 오빠를 향한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품고서도
일어서지 못할 만큼 커다랗고 무서웠다.
차라리 오빠와 함께 이 가슴도 죽어버렸으면 또 다른 사랑을 키우지도 않았을 텐데...
잠을 설쳤나보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이 나를 붙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너무 빨리 만든 인연인것 같다며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시켜 달라는 그에게,
숨길 수가 없었다.
가슴에 내 가슴에
담지도 버리지도 못할 사랑이 아직도 꽉 차 있다고 말해버렸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꽉 차 있는 걸 언제 다 버릴 수 있겠냐고...
왜 다 버려야 하냐고' 그가 물었다.
가슴속에 숨겨둔 사랑하나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나를 만나서 사랑하게 된 이상 그 사랑도 자기 몫이니 자기가 쓸어내려 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울었나.
그의 어깨에 기대어 그 깊은 설움을 한 없이 품어냈다.
*
세상에 뿌리를 두고 올라온 잡초들도 밟지 않으려 애썼다.
얼마만에 가져본 일상인가.
상처없는 평범한 삶. 누군가 나의 행복을 탐낼까봐... 가끔은 두렵기까지 했다.
화창한 늦봄에 남들 다 하는 결혼식을,
우리 가족은 서러웠던 일, 가슴아팠던 일 다 담아서
그래서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결혼식을 울면서 올렸다.
신행 뒤에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 나선 기차역에서 배웅나온 엄마와
평생을 두고 후회할 불효를 저질렀던 딸자식은 가슴이 저미도록 그렇게 울었다.
**
오늘도 아들과 함께 남편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절에 다녀왔다.
10년을 함께 한 남편은 올 봄에 담도암으로 저 세상으로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둘이나 하늘나라로 올려보낸 여자의 인생이 기구하다 싶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짧았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선물로 받았다.
올해 8살이 된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언제나 밝고 씩씩하다.
아침이면 아빠, 엄마의 칫솔에 언제나 치약을 발라놓는 기특한 녀석이,
이제는 묻지도 않고 엄마 칫솔에만 치약을 발라 놓는다.
마흔을 바라보는 불혹의 나이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버리지 않은 두 사람이 살고 있다.
그들과 함께, 그리고 우리 아들과 함께 나는 지금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내 가슴에, 내 곁에.
*^*
누구에게 읽을 거리를, 흥미로운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글을 올린 것은 아닙니다.
형식적이지만 내 마음을 글로 담아 그냥 한번 태워보내고 싶었습니다.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사실대로 자세히 적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슬픔 뒤에 기쁨도 반드시 자리하더군요.
지금 힘들더래도 조금 뒤에 찾아올 작지만 충분할 그 기쁨을 바라보시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더라 생각하시고 현재 행복하시라고 부족하지만 몇 자 적었습니다.
저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군요.
평범한 당신이 저는 한없이 부럽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