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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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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이야기(다시 문학을 접하면서...)


BY 개망초꽃 2005-10-17

난 어줍잖은 글을 쓰고, 글 잘 쓰는 작가이고 싶으면서 책을 그리 많이 읽지 못했다.

내 삶을 글로 풀면서 정작 남의 삶으로 엮은 글은 소홀했다.

서점에 다니면서 큰 장점은 책을  많이 읽게 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우리의 대표문학 소나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내게 있어 전라도 땅은 회한의 땅이고, 후회도 한탄도 모두 지나간 세월이었다.

내게 있어 내 인생을 뒤집어 놓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강줄기가 있었는데,

전라도 땅 끝에서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 같은 그 사람과 다시 만난 일이다.

그게 동백꽃이 눈물방울처럼 툭툭 떨어지던 겨울 끝 무렵이었다.

다산초당으로 들어가는 초입엔 개불알풀꽃이 피어 있었나보다

그때는 꽃이름을 모르고 푸른빛이 하도 예뻐 두송이 꺾어 엄지와 검지에 들고

길을 마저 걸었다. 남쪽은 겨울이지만 겨울 속엔 봄이 살아 움질거리고 있었다.

내 속엔 내가 모를 감정이 치솟았던 나날들...

지나고나니 다 헛것인데 말이다.

전라도 땅은 높지 않았다. 높지 않았지만 내겐 높았다.

끝도 없이 오를 꼭대기가 있는 줄 알았거든...착각이지. 착각이었다.

내 무덤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거머쥐지도 못하고 탈진하게 된다.

다시 만난 국어 선생이었던 그 사람은 내게 그랬다.

소나기를 읽으면 자신은 소년이고 나는 서울서 내려온 소녀 같다고 ...

서점에서 다시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며 순진하고 우직했던 그 사람과 소년이 겹쳐졌다.

스무 살을 갓 넘었을 때 소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편지글을 받고 난 소녀의 감성으로

답장을 썼던 간열적인 기억 너머엔 소나기라는 소설책이 편지글에 써 있었다.

그때 당시 소년이었던 그 사람과 처음으로 편지로 만났던 나는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같이 가냘프면서도 도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십년이 훨씬 지난 다음 그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 사람은 내게 그랬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 같다고…….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비가 내리면 첫사랑인 어떤 소녀가 떠오른다고

그게 나라고 했다.

서점에서 소나기를 읽으며 그때 그 소년은 이미 남남으로 떠난 소설 속에 인물이 되었다.

소녀의 옷에 알 수 없는 얼룩을 남겼듯이 나에겐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얼룩이 남은 채로...



폭풍의 언덕을 읽었을 때는 여고 2학년 때이었다.

여고 2학년 때 반대항 합창대회가 있었다.

그때 선택한 곡이 숭어였다.

“거울같은강물에 숭어가 뛰노네. 살보다 더 빨리 헤엄쳐 뛰노네~~“

음악실로 향하던 교정엔 자주달개비꽃이 피고,

키다리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서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나를 계절마다 지켜보았다.

수업시간에 공부도 안하고,

사색한다고 창가에 흐르던 햇살을 보며 두꺼운 노트에 산문을 썼던 나를 ...

나불나불 빽빽이 썼던 산문노트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여고시절에 읽었던 폭풍의 언덕은 지금도 거칠게 불고 있다.

숭어의 선율 속에, 언덕으로 불던 폭풍 속에, 사색했던 단발머리 음률이 흐른다.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으며 며칠동안 문학의 재미에 푹 빠졌다.

사철 지독한 바람이 불어서 전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던 폭풍의 언덕엔

학창시절 내가 모르던 막연하고 지독한 사랑이 듬성이 너머 바람으로 분다.

내 가슴에 폭풍처럼 불어댄다.

사랑의 지독함은 어디로 불어 어디로 머물고 어디로 휘어감길지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몇 번을 앞부분만 보다가 미완성인 채로 덮어 버렸었다.

결혼 후 큰 이모 아이들이 보던 것을 딸아이 초등학교 때 물려주었는데

그 책속에 죄와 벌이 섞여 들어왔다.

딸아이가 읽기엔 두껍고 어려운 책이라 내가 다시 죄와벌을 밤늦도록 손에 들게 되었다.

그때 나는 삶을 포기를 한 상태였다.

내 눈에 보이는 남편을 죽이고 싶도록 원망스러운 때였다.

죄와 벌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젊은이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전당포 할머니를 죽이고 손끝이 떨리고 온 몸이 조이도록 같이 아팠다.

나는 그때 당시에 서른중반쯤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현 상황을 깡그리 없애고 싶었다.

그러나 깡그리 없앤다는 건 지극히 현실적이지 않았고,

내 힘이 미칠 수가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범죄자가 되고 싶었다.

감옥에 들어가  십년쯤 지나면 내가 넘어야 할 현실을 타고 넘어갈 거라는

어리석은 판단 속에 나는  죄를 계획하고 있었다.

다시 첫사랑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

난 현실의 감옥에서 풀려 날개를 달았다.

죄와 벌의 주인공처럼 정신적인 나약함이 참작이 되어

징역살이를 하지 않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죄와 벌을 다시 읽어보며,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젊은이의 치욕적인 가난을 보았다.

냄새나는 나태함과 축축한 곰팡이가 낀 현실도피의 흔적을 읽었다.

난 두번 다시는 가난을 들추고 싶거나 냄새나는 감정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고,

현실을 애써 피하지도 않겠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벌을 달게 받고 싶겠는가....

다만 피할 수 없는 죄는 죄가 아니고, 벌도 달게 받겠다는 의지일 뿐이다.


서점에서 일한지 두 달이 넘어 석 달째를 맞는다.

가을은 깊어 산등성이 마다 색동저고리를 뒤집어 쓰고 있다.

느티나무 가로수는 노오랗게 꽃이 핀다.

나는 나무 그늘아래 쓸쓸함을 감추고 노랗게 웃는다.


새로 들어온 “렛츠고 나라” 책에 대한 설명을 잘한다고 직원이 내게 물었다.

“그 책 설명하기가 애매하던데..그래서 한번도 못 팔아 받는데...어떻게 설명하고 팔았어요?”
“그 책은요...그 나라 아이가 편지 식으로 쓴, 자신의 나라와 마을과 학교와 음식을 소개한 책이에요.”

내가 책을  판다고 해서 수당을 더 받거나 월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내가 하는 일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 하고 싶다.

서점에 다니면서 소설이나 문학을 다시 접할 수 있어서 좋다.

옛 추억을 소처럼 되새김질 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서 과거 더듬기를 할 수 있어 좋다.

그리하여 나를 추스릴 수 있는 참고가 된다. 그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