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그리고 그 관성의 법칙>
어제 밤 12시 가까이 집에 돌아와 피곤도 하련만, 남편은 오늘도 연구소에 잠깐 나갔다 오겠단다. 작년 말 은퇴를 하여 굳이 나갈 필요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거의 매일 연구소에 나간다.
점심때가 되어 돌아온 그가, 누가누가 나왔노라 한다. 오늘은 월요일이긴 하지만, 오늘까지 추석 명절이니 쉬어야 마땅한 사람들이 심심해서 연구소에 나온 모양이다.
내가 웃으며,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라고 했더니, 남편이, “관성의 법칙이라니?” 묻는다.
과학자인 그에게 관성의 법칙 운운하는 내가 우습긴 하지만, 왠지 그 말이 어울릴 듯싶어 해본 말이다.
“습관이 붙은 어떤 행동을 일탈하려면, 다시 그 행동으로 돌아가고 싶어지고, 돌아가지 않으면 불편해 지는 그런 거 말이야.”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습관을 깨기란 무척 힘들지. 그렇지만 그렇게 또 다른 습관이 만들어지면 또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유지되고...“ 나는 한껏 유식한 체한다.
남편은 좋은 머리치고는 무척 외곬이다. 머리란 한군데만 너무 발전하면, 다른 데는 잘 돌아가지 않기 마련이어서 가끔 나는 남편이 하는 행동에 답답해한다.
정말 눈치코치 없을 때가 있다. 가령 아무리 작은 길이라도 U턴을 하려면 교통신호가 있어야 되는 걸로 안다. 그래서 어떤 때는 10분을 돌아간다.
미국에서 10년 만에 귀국했을 때, 시댁과의 관계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것도 아마 그런 남편의 성격 탓이었을 것이다.
이북에서 내려와 관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버린 우리 친정과는 달리 시댁은 제사가 13번에 명절, 시부모님 생신, 일가친척의 갖가지 혼사 및 잔치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미국에서 만나 결혼을 했기 때문에, 나는 시댁의 소위 ‘관습’에는 익숙지 않아서,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내 귀국 생활을 힘들게 했다.
남편은 일단 시댁에서 내려온 지침에는 철저히 따라야 하는 사람이었기에, 처음에는 서러움도 많았지만, 어쩌면 오로지 오기 때문에 나는 그 힘든 적응을 해 냈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보니 거의 혼자 시집일과 친정 큰일을 도맡아하다시피 되었다.
때로는 ‘내가 전생에 진 빚이 많나보다.’ 자조해 보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할 만도 하다.
그동안 기독교입네, 몸이 아프네 큰집이 이래저래 피해서, 셋째인 우리가 지내던 차례를 지난 설부터 큰집에 돌려주었다.
마침 큰집이 재건축으로 아파트 평수가 늘어나고, 그 집 며느리가 둘이 되었던 터라, 경비는 우리가 부쳐주기로 하고, 손이 가는 전은 우리 집 며느리에게 부탁하고 나서야, 겨우 어렵게 합의를 보았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혼자 힘들어 끙끙댈 때마다, 안쓰럽긴 한지, 형님네가 제사를 모셔가면, “우리, 연휴 휴가여행도 다니고 그러자” 더니, 웬 걸 남편은 그 관성의 법칙에 의해 일찌감치 기차표까지 예약해 놓고 꼭 가야할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었다.
내 팔자에 무슨 추석연휴 여행! 지난 일요일에는 친정 선산 벌초, 이 번 목요일에는 친정 성묘까지 가야하는 처지에 그나마 그동안 해온 ‘시집 봉사’ 덕에 눈치나 안 보면 다행이지! 슬그머니, 연휴 때마다 외국여행을 떠나는 올케가 미우면서도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