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속이 비어 버린 듯하거나 단정하게 정리가 된 곳에서 혼자 있을 때면
가끔
난 죽음을 생각한다.
유년기에서 사춘기로 어색한 자리바꿈을 막 하려던 그 때의 어느 날부터 일것이다.
학교가 파하고 난 후 끼리끼리 어울려 친구들은 집으로 가는데
팔꿈치를 잡아 당기는 짝꿍의 손도 마다하고는 곧잘 학교 뒷산으로 향하곤 했었다.
조잘거리며 그네들은 내 뒤로 팔랑개비처럼 날아가버리고
겨우 십대의 초반을 넘긴 아이는
세상 고민을 잔뜩 짊어진 얼굴을 하고선 학교의 뒷산으로 갔었다.
신주머니를 철퍼덕 던지고, 혹처럼 붙은 가방도 아무렇게나 던져 두곤 이내 깍지를 끼고는
벌러덩 눕곤 했었다. 야트막한 아래로는 버스가 한가로이 지나 가고
부러워했던 뾰족 지붕의 넓은 정원이 보이는 집도
소리를 지르며 고무줄 놀이를 했던 골목길도
한낱 발끝으로 멀리 던져 두곤
'난 왜 살고 있지! 죽음은 어떤 것일까!'
많이 슬프다란 막연한 느낌에 훌쩍이기도 했었지.
지나고 보면 시간은 간직하지 못한 유물처럼 목록만 화려해지고 있었고
가끔씩 스치고 지났던 그 향수처럼
난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사십 한 해의 나이테는 그저 생겨난 것이 아니었는지도.
준비도 없이 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엄마를 보내고
시댁의 동서를 보내고
시어머님을 보내고
순서에도 맞지 않고
그렇다고 계획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이렇게 갑자기 죽음은 주위에서 스며 들었고
두려움 없는 그것에 대해서 친근한 손짓도 하고 싶어 질 때가 있기도 하다.
우스개 소리로
보험은 딸 아이가 성년이 되기 전에는 아무도 손 대지 못하게 명명을 하고
몸에 부속된 것들은 남김없이 기증을 하고
옷가지는 다 없애기는 아까우니
아이가 물려 받고
이 대목에서 아이와 난 낄낄거렸다.
동서를 보내고 옷 정리를 하는데 몇가지 되지 않은 옷들을 보고
시고모는 "알뜰하게도 살았구먼...."
안타깝게 여기며 눈물을 훔쳤었는데
동서 보다 옷이 조금은 많기에
솔직히 그 후의 일들이야 죽은 나야 뭘 알겠냐마는
옷 정리는 혼자서 해야 한다라고 아이와 약속을 하고선 얼마나 웃었던지......
나는 가끔 소박하게 죽음을 맞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고
내 아이가 서른을 넘기고 자리를 잡고
결혼을 했다면 아이 하나는 서너 살까지는 돌봐 주고
김치도 담궈 주고, 사위에게도 살갑게 대해 주고
어느날 잠을 자듯이 가고 싶다.
남편은 잠을 자듯이 간다란 이 대목에서 꼭 화를 낸다.
자고 일어 났는데 옆에서 숨을 안 쉬면 얼마나 황당하고 놀랍겠냐고
갈려면 자기 나이가 얼추 좀 되었을 때 가던지
아니면 어지중간한 때 가서
자기 혼자 살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재혼을 하자니 딸이 걸리고
아무튼 알아서 가란다..끝까지 이기적이다...
내 아이와 미리 약속을 했다.
엄마가 만약 갑자기 죽음을 맞이 하면
얼른 병원의 기증센타에 전화를 하고
내 모든 장기는 기증을 하며 이틀만 상객을 받으라고.
또 이 대목에서 남편은 화를 낸다.
내 몸이 누구 것인데 자기 허락도 없이 기증을 하냐고
시댁의 선산에 묻지 말라는 부탁에도
누구 것인데 맘대로 그런 말을 하냐고.....
마음처럼 자주 가지 못하는 내 아버지와 엄마의 산소처럼
내 아이에게도 마음의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은데.......
외동 아이라서 마음에 걸리지만 잘 하리라 믿으며
난 거짓말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죽음을 오늘도 생각한다.
남편에 대한 마음은 애써 접고 싶을 뿐
동서를 먼저 보낸 시숙은 아이들 눈치 때문에 재혼을 못하여 고심을 하고
의견이 분분한 시숙네를 보니
남자는 다 자기 살길이 있는 것처럼 보이니
물론 시아버님도 예외가 아니기에
다만 내 아이와
내 피붙이와
기억 속에서 함께 했던 이들의 눈물에 그저 정리를 못 할 뿐....
어느날 나에게 생각만 했던 죽음이 온다면
열 몇살 때부터 내내 생각해 온 그것이기에
그리 두렵지만은 않을지도.
난 가끔 그 날을 생각하며
살가운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남은 삶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