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을 쓰려면 갔다 오자마자 빨리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고단으로 남편과 큰아이를 올려보내고 허탈한 기분이 되어 작은아이 손을 잡고 내려오다가 작은 개울가(산 골짜기를 졸졸거리며 흘러내려와 더 널찍한 계곡쪽으로 내려가기 직전 잠시 머물다 가는 조그만 물웅덩이)를 만나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변 나무나 수풀에 눈길을 주면서 쉬다가 그새 오소소해져서 성삼재 휴게소로 내려가 아이는 우동과 쵸코파이를 나는 커피와 포테토칩을 먹으면서 오고가는 관광객들을 염치없이 빤히 훔쳐보기도 하고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때마침 하루에 4번 밖에 없다는 노고단 정상 답사를 위해 미리 예약한 팀이 떠나려는 참이었는데 100명 정원이 안되어 남편도 그 자리에서 등록 후에 같이 묻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운 좋게도... 여느 때처럼 강아지마냥 보채지 않고 지 아빠 꽁무니 쫓아 얼결에 노고단 정상까지 밟고 돌아온 큰 녀석 얼굴은 피곤은 저멀리 산꽃을 닮아 환하고 생기가 도는 표정이었다.
차를 타고 까무룩 잠이 든 동안 어느새 산을 다 내려와 천은사 앞에 당도해 있다. 시내가 흐르는 돌다리를 건너서 천은사에 보물이라는 후불탱화와 또 뭣뭣을 보고 약숫물도 배부르게 먹고 뭔가를 간절하게 염원하는 마음으로 부처님 얼굴을 오래오래 뵈었다. 부처님 얼굴이나 성모마리아 얼굴이나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평화로운 미소... 얼굴... 집안이 천주교인데 살아볼수록 불교의 분위기가 더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죄일까? 나를 키워 온 문화라는 것에는 불교문화도 엄연히 들어 있음을 느낀다. 또 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무시로 편하게 갈 수 있는 전국 도처의 절이라는 옛 건축물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또 절의 역사(보통 백제, 신라로부터 시작되는)가 곧 우리나라의 역사였다.(고려때 불타고 조선때
천은사에는 들어가는 대문 안에 사천왕상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다른 절 사천왕상은 인상은 쓰고 있지만 약간 웃는 듯도 하고 해학적으로까지 그려져 있는 것도 있는데 여긴 진짜로 넘 무섭게 인상을 쓰고 있어 내 뱃속 밑바닥까지 들다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겁이 날 지경이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지리산 야생화 전시장이란 간판을 보았는데 꼭 한번 들려 보고 싶었는데 마지막날까지 못가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녁은 대통밥 식당을 찾아가서 먹었는데 갖은 나물 반찬하며 재첩회하며 맛있게 잘 먹었던 것 같다.
셋째날 역시 계란조림이랑 감자찌개랑 먹고 아이들이 그토록 조르던 온천 사우나 겸 수영장으로 갔다. 교원 공제회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시설이 아주 좋았다. 동네 찜질방 값이다... 꼭 한번 가보시라고 얘기하고 싶다... 수영장에서 있는 실력 없는 실력 뽐내며 푸더덩 거리고 온천 스파도 하고 나서 먹는 컵라면 맛이 꿀맛이다...ㅎㅎㅎ 노천탕도 있던디... 썬텐의자까지... 의자에 누워 하늘 볼 엄두가 안나서 엎어져 있다가 후다닥...ㅎㅎㅎ 물에 풀어 놓으면 제일 좋아하는 게 아이들인 갑다. 산에 갔을 때는 숨죽은 부춧단마냥 시들하던 녀석이 물고기 물 만난 듯 펄펄 살아서 논다. 언제 아팠냐고 그런다. 먹다 지쳐 잠이 들면... 아니 아니 놀다 지쳐 헤쳐 모이기로 하고(이때가 나는 좋다.) 온천수에 선녀가 하강한듯 목욕을 하고 나와 입구에서 만났다. 난 괜찮은데 라면으로 끼니가 안 된다고 기웃거리다가 짜장면 집에 들어 갔다. 주문과 동시에 하얀 런닝을 입은 퉁퉁한 아저씨가 짜장 볶고 돼지고기 불 붙여가며 볶고 야채 썰어서 볶고 보통 생각하는 짜장면 나올 시간을 많이 넘겨서 나왔지만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정말 맛있었다. 내가 집에서 만든 짜장면만큼 아니 조금 더 맛있었다. 돼지고기가 바삭하니 고소했다.
예상보다 맛있게 먹고 만족해 하며 화엄사로 향했다. 천은사 방향으로 가서 15분만 더 가면 화엄사다. 화엄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절 전용주차장까지 찻길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도로 양 옆의 수목이 우거져 초록 아치동굴 같았다. 외국의 대저택은 대문에서 건물까지 차로 한참을 간다더니 그 짝이었다. 차로 안가고 걸어가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화엄사에는 국보나 보물로 인정된 문화재산이 천은사보다 훨씬 많았고 절의 규모도 우람하게 컸다. 2층 지붕을 머리에 인 울긋불긋 단층을 칠하지 않은 목조 건물인 각황전이 카리스마를 뿜으며 경내를 압도했다. 모셔진 불상도 다섯이나 되고 하나하나가 화려하고 아름다왔다.(문외한의 눈에는...) 정면의 대웅전도 그못지 않게 큰 규모이면서 화려한 단층을 하고 있었다. 또 대웅전 아래 앞뜰에는 이승의 꽃이 아닌 듯한 부용화가 활짝 만개하고 있었다. 선녀의 분홍색 날개옷을 짓고 남은 천으로 만든 꽃 같이 신비스러워 보이는게 암튼 부처님전 아래 피우기에 아주 적당한 꽃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떤 안목있는 스님이 심은 것일까? 대웅전 맞은 편에 **각이라는 건물은 절이 품고 있는 역사적인 또는 예술적인 문화재를 사진으로 또는 모조품(?)을 전시해 놓고 오가는 내방객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천천히 음미하고 나서(뭐가 있었는지 잊어버렸는데 법문을 납석에 새겨놓은 것만 떠오른다.) 나오는 길에 기왓장 하나 사서 온갖 희망사항 다 쏟아부은 다음 시주하고 나왔다. 가정화목, 건강발원, 자수성가... 이건 아니고... ㅎㅎㅎ 맛있는 떡갈비를 사먹고 숙소로 돌아와 남편과 구례의 명물이라는 오미자주를 마셨다. 조그만 병을 다 못먹고 조금 남겼다. 한심한 주량이다... ㅉㅉㅉ
넷째날 남은 재료로 고추장찌개 해먹고 짐을 싸서 숙소현관에 내려 놓으니 소낙비가 갑자기 쏟아진다... 카운터에서 우산을 빌려 차를 가지고 와서 짐을 싣고 출발... 지리산 안녕... 너의 품속에 또 안기고 싶을 고야... 나와의 이별이 슬퍼서 우는 거니...
승주라는 곳에서 길을 바꿔 좀더 가면 선암사가 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우비를 입히고 우산을 펴고 숲길을 걸었다. 처음에 빗줄기가 약하더니 갈수록 거세졌다. 우산을 받치고 가느라 성가시고 또 조리 신은 발이 젖고 다리며 옷에 흙이 튀었지만 즐거운 고행이었다. 언제 또다시 비 오는 여름 숲길을 걸어 보겠니? 하는 마음으로... 선암사로 가는 숲길은 전날의 화엄사길보다는 좁은 듯하면서 포장이 안되어 있어 더욱 맘에 들었다. 나무가 울창한 데다가 비까지 쏟아져서 나뭇가지 끝에 걸린 조각 하늘조차 안 보일 지경으로 어둑하고 사방은 매미소리와 시냇물 흐르는 소리로 가득차 마치 여름 숲의 합창을 들으며 걷고 있는 것이었다. 도시의 때와 일상의 짐을 벗기에 그만인 멋진 산림욕길이었다. 가을날 연인이 걷기에도 운치있을 것 같고... ㅎㅎ 이따금씩 오가는 차들이 신경쓰였지만... 꽤 먼 길을 징징대는(어제 물에서와는 영 다르다) 아이와 걸어서 드디어 선암사에 도착했다. 깨달음이나 도를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많이 걸어야하는 건가 보다. 그만큼 수고해야 하는가 보다... 선암사라고 쓰여진 절 입구 대문격인 건물안엔 보통 사천왕상이 있는데 여긴 매점이 있다... 매점을 지나니 수국이 빗속에 풍성한 꽃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파란색 앙징맞은 꽃송이들이 모여서 만든 똥그란 꽃공들이 성탄절 트리 장식마냥 가득가득 매달려 있었다. 비를 맞으며 서 있는 두 그루의 물빛 수국 나무는 언젠가 본 수채화의 한 장면이었다. 사천왕상 진짜 대문을 거쳐 경내에 들어서니 전날 본 두 절과는 비교가 안되게 아담한 대웅전이 보인다. 부처님 한분만 외로이 앉아 계시는... 여러가지 이름의 다양한 작은 절집이 층층 계단을 올라가면서 겹겹이 포진하고 있어 아기자기하면서 구색을 잘 갖춘 종합선물 과자세트 같다고 하면 넘 무식한 표현일까? 선암사는 아담하지만 꽉 짜인 짜임새를 갖춘 규모있고 유서깊고 매력적인 절이었다.(문외한의 눈에) 다만 이상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방문객들이 절에 오면 문앞에서부터 찾는 약수터가 없었다. 비가 와서 망정이지 맑은 날이었으면 엄청 목말랐을텐데....
비를 피해 절집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보는 부처님마다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빌었다. 무엇을 위해 빌었을까? 빌었다기 보다 경의를 표했다고 봐야지... 그동안 많은 절집을 구경하면서 천주교 신자임을 이유로 경의를 표하지 않고 그냥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는데 그날은 세찬 빗속을 뚫고서 꽤 먼길을(내게는) 걸어서 뵈러온 부처님인데 인사도 안하고 그냥 간다면 내가 섭섭할 것 같았다.
비는 내리고 절집 댓돌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쉬려니 밤색 옷을 입은 스님들이 스무명 가량 나타나 대웅전 맞은 편 건물 여닫이문을 열어 젖히고 들어가서 회색 옷 스님의 설명을 듣더니 절을 하기 시작한다. 엎드려 절하며 두 손을 벌리고 일어나면서 합장하고 고개숙인 뒤 다시 엎드려 절하고.... 계속 된다. 우리가 옥수수 하나를 먹고 일어서서 나올 때까지 계속 하고 있다. 하계 득도 수련 기간이라는 프랭카드가 대웅전이 처마 밑에 걸려 있던데 그것이었나 보다. 2주 동안의 프로그램이라 특별히 매인 데 없는 아니면 여름 휴가가 긴 일테면 선생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무엇에 구애되는 마음, 무엇을 얻어야 한다는 마음, 바깥에 급한 용무가 있어 편치 않은 마음이 없다면 도도 저절로 닦일 것 같은데... 하지만 일반인이 잠시를 위해서 삭발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할 것이다.
절 대문을 나서다가 매점 앞에 쓰레기통에 옥수수를 버렸다. 남편이 먹던 것도 버리려고 또 다가가니 매점 여자 유리창을 마구 두드리며 나에게 손짓한다. 나..왜요? 여자..이리 들어와 보세요? 나..???(불쾌지수 수직 상승) 여자... 쓰레기통에 버리면 벌레 꼬이니까 가다가 텃밭에 버리세요. 나..텃밭에요?(텃밭이 어디지?) 네, 알겠어요. 안고 나오던 고요한 마음이 유리창 마구 두드리는 소리에 속절없이 흔들리고 말았다.. 옥에 티... 나오면서 옥수수자루를 텃밭이고 뭐고 아무데나 나무 뒤로 휙 던져 버렸다. 불쾌한 마음까지 던져 버렸다. 그래... 절 자체가 좋은 거지 거기 앉아 있는 사람은 속세나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되돌아 나오는 길은 갈 때보다는 금새로 느껴졌다. 나와서 다슬기 수재비와 보리 비빔밥과 파전으로 허기를 달래고 또다시 길을 나섰다. 벌써 4시가 넘어서 송광사까지 들리기에는 하루해가 너무 짧기에 곧바로 여수로 가기로 했다. 도중에 순천 낙안읍성 민속촌이란 표지판도 만났는데 이름만 읽고 지나쳤다. 출발한지 1시간 조금 넘어서 여수 끝자락 오동도까지 오게 되었다. 드디어 남쪽 바다다.
오동도까지 연결된 방조제길을 걸어서 들어갔다. 땅 끝까지 와서 바다를 보고 간다는 뿌듯함만 안고 계속 흩뿌리는 가랑비 때문에 급한 마음으로 되돌아 나가는데 바다에는 모터보트만 몇대 기분을 내며 돌아다닌다.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 한대가 우리 가까이 와서 딱 멈추더니 글게 아그들 좀 태워주지 안그라요... 하는 요지로 아저씨가 소리친다. 아까도 우리에게 다가와 아그들 방학두 했응께 딴때 좀 덜쓰고 태워 주소... 여기 먼데까지 와서 바다도 봐야제... 하며 꼬드기던 아저씨다. 날씨가 흐리고 해가 이미 저물고 있는 걸 탓하며 웃으며 거절하였건만... 아저씨가 너무 재밌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모터보트는 다시 움직이며 물살을 가른다. 나두 여기까지 와서 벌이에 조금 도움이 되주고 싶었는데... 날씨도 시간도 기운도 없어서 그러질 못하내요... 아저씨 미안해요~~~
오동도를 나와 저녁을 먹기 위해 돌산도와 돌산대교가 바라보이는 부둣가 횟집과 식당이 늘어서 있는 곳을 찾았다. 돌산갓김치로 유명한 돌산도와 날저문 부둣가에 정박중인 어선들을 구경하다가 맛있는 집이라고 하는 식당에 들어가 아구찜과 생선구이를 먹었다. 먹고 나니 서대회가 그 식당의 주메뉴라는 걸 알았다. 여수 가시는 분들 한 번 맛보시기를...
식사를 마치고 나니 9시다. 이제부터 왔던 길을 유턴하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도중에 와이퍼로 닦아도 닦아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장대비도 만나고... 칠흑같은 어둠 속을 마구 달렸다. 집에 당도하니 새벽 2시 반이다. 이렇게 해서 구례(지리산)-승주(조계산)-순천-여수 찍고 올라오는 전라도 여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우리 가족 각자의 가슴에 저마다의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서...
전라도 말고도 우리 국토에는 길가는 곳곳에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를 담은 유적지와 문화재가 많으리라고 생각된다. 특히 전라도는 가는 곳마다 맛있는 음식으로 매료시켰고 문화 유적지가 더욱 풍부한 것 같아서 다음에 또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 어여쁜 색시같은 배롱나무 꽃도 실컷 볼 수 있었다.
이번 휴가는 오감 만족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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