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덴마크 농민들에게 농업 탄소세 부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96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BY 동해바다 2005-08-01



     

     바닷가에 앉아 있다보면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에 몸이 끈적거린다.
     그래도 시원스레 해풍을 맞으러 나들이 가곤 한다. 밤바다를 훤히 밝히고 있는 어화(오징
     어잡이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행 온 꼬마아이의 호기심어린 모습이 마냥 예쁘기만 
     한 한 여름밤이다. 

     산과 바다중 어느것이 좋으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당연히 산이라 말한다. 바다를 이웃하  
     여 살기에 더욱 산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가까이 할 수 있어 소중함의 빈도가 약해졌
     다고나 할까. 한바퀴 해변을 돌고 오는 정도로 끝내고 나는 늘 산에 오를 기회를 엿보곤
     한다.

     남들 겪을만큼 똑같이 사는 삶이 웬지 나 혼자만 힘든 것 같을 때가 참 많다. 허나 누구나 
     비슷비슷한 삶에 바다 앞에서는 괜시리 심오한 삶의 철학자가 된 듯 더욱 나락으로 빠져 
     든 적도 있었다. 확 트인 바다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모습이 멋진 그림의 한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靜적인 바다보다는 한없이 오르고 느끼며 탐하면서 하나가 될 
     수 있게끔 나를 이끄는 動적인 산이 나는 좋다. 

     그날그날  컨디숀에 따라 몸이 쉬이 지칠때도 있긴 하지만 조금씩 쉬면서 오르다보면 어
     느새 목표지점에 도착한다. 홀홀 배낭매고 산과 함께 세월을 먹을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자라는 이유로 아니 주부라는 주어진 책임때문에 마음껏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요 며칠동안 조금은 눈치보고 떠난 산행이 반복되어 내 스스
     로 근신하는 중이다.


      고들빼기 / 모싯대
     


     이제 조금 산맛을 알았다고 말할수 있다. 야생화에 빠져 산을 오르게 된 것이 아니라 산
     행하면서 눈여겨 보게 된 야생화, 볼수록 깊이 빠져드는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그 앞
     에서 떠날 줄 모르고 한없이 들여다 보고만 있어도 좋은걸 누가 말리랴. 하지만 이번 산
     행은 야생화를 보기 위한 단지 그 한 이유로 산을 오르게 되었다. 뿌우연 안개로 뒤덮힌 
     흐린 날, 생태계보전구역이라 이름붙여진 정선군에 있는 대덕산에 오른다. 

     5월초 아직 남아있는 잔설 위로도 새순 올려 보내며 건초들과 어우러져 꽃의 천국을 만들
     어 내고 있었던 얼레지꽃밭, 사이사이 피어있던 바람꽃과 양지꽃, 현호색등 난생처음 그
     렇게 많은 꽃의 천국을 보고 돌아온 날 나는 꽃몸살을 앓았다.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우내 얼어붙은 땅 속에서 온 정열을 바친 것에 비하면 나의 몸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지척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사랑앓이라고 할까 봄꽃들의 유희가 
     몇날 며칠째 눈앞에 아른거렸던 것이다. 다른 장소 다른 꽃을 보기 위해 떠난 날, 배경과 
     무대에 올려진 그들만의 퍼포먼스를 잔뜩 기대하고 있으니 가슴 속에 작은 파장이 울려 
     퍼지는 것은 봄에 느껴 보았던, 한번 경험해 보았던 사랑앓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1300고지 정상까지 오르는 길, 그들은 슬금슬금 얼굴을 보여주며 감칠맛 나는 연기를 하
     고  있었다. 산꿩의다리, 노루오줌, 비비추, 동자꽃, 이질풀, 솔나물 등이 주를 이루고 있
     던 길목에 천연의 조명이 원초적인 색깔을 더욱 빛내주는 역할을 보태준다. 한줌 햇살 속
     에서 쨍하고 부서질 것 같은 유리알처럼 투명한 이슬방울이 바지자락을 적셔주고 있다. 
     하얗고 투명한 비비추 앞에서 입은 다물줄 모르고 그 투명함이 주는 순수와 청순이라는 
     단어의 적절한 표현조차도 붙이기 미안할 정도로 함초롬히 피어 있었다. 티끌이 묻을까 
     조심스럽다.


     비비추
     


     어둡고 고요한 숲속에는 눅눅한 흙내음과 풀향이 주위를 휘어잡는다. 가끔 불어주는 바
     람이 그 고요 속을 정리해 주며 다시 신선한 냄새로 바꾸어 주곤 한다. 어둡지만 그곳은 
     저들만의 평화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정적을 깨뜨리는 사람들의 출현에 사뭇 긴장하고 
     있는 자연의 작은떨림이 전해오는 듯 하다. 숲밖을 나오니 푸르른 초지와 노란 꽃들의 반
     란이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었다. 그윽한 평화로움에 절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숲속과
     는 다른 진한 향이 강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솔잎처럼 뾰족한 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지 꽃명이 솔나물이다. 허리까지 올라온 무리 틈 사이로 걸어가는 그 기분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림속에 파묻히고 싶을 정도로 향내음은 발길잡
     아 묶어 놓고 만다.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눅진하고 평평한 곳에 사랑방 하나를 만들어 잠시의 휴식을 취한
     다. 적요한 숲속나라에 침입한 자들은 맘먹고 가져온 얼린 맥주캔 몇개를 따 오종종하게 
     피어 슬금슬금 엿보는 모싯대 앞에서 마음을 합치며 건배를 외친다. 살면서 원하던 여행
     이었다. 마음 통하는 이와 보는 눈이 똑같고 함께 즐거워하며 웃을수 있다는 것, 인생을 
     훨씬 앞서 살아 본 선배의 조언과 삶과 자연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의 귀함을 다시
     한번 감사히 여긴다.

     
     대덕산 정상 / 떡취 (수리취)
     


     여유를 갖고 오른 산행에 희뿌연 산안개가 먼 산을 점령하고 있었다. 드디어 밟은 정상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다. 5월에 보았던 봄꽃들의 반란에 얼레지
     가 대장격이었다면 대덕산의 야생화는 어느 누구도 도드라지지 않는 모든 꽃들의 동시등
     장이었다.

     비비추, 솔나물, 동자꽃, 짚신나물, 까치수영, 모싯대, 금마타리, 하늘나리 등 대덕산 곳곳
     에 피어있는 야생화들이 하늘과 가까이 하기 위해 우리보다 더 힘겹게 오르는 희생을 감
     행하면서 이렇게 환상의 지상낙원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환장할 것 같다는 표현은 
     이럴때 써 먹는게 딱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봄에 떡을 해먹을 수 있다는 떡취(수리취) 꽃
     봉오리가 마치 지압봉처럼 생겨 수많은 꽃 속에 섞여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벌은 꽃 속에, 잠자리는 공중을 배회하며 희희낙락 우리의 기쁨을 대신하고 있는 듯 해 
     보인다. 무리지어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었을까 뿌우연 안
     개는 사라졌다 나타났다 번복을 한다. 갑자기 한기를 느끼는 기온이 되었다가 강한 햇살
     이 살을 찌를듯하니 바뀌기도 한다. 더욱 꽃 주변의 어슬렁거리는 날 것들은 움직임이 무
     척이나 바빠 보인다.


     


     내 안에 수많은 내가 들어있다. 산에서 만나는 초목화 그리고 그 분위기에 휩싸여 마음을 
     다스린다. 누군가 무슨 삶을 그리 힘겹게 사냐고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마음먹기
     에 달려 있다는 우리네 삶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힘겨울 때가 부지기수이다. 속상할 때
     가 너무나 많다. 내 삶은 이런것이 아니였는데, 이렇게 살려고 살아온 삶은 아닌데 후회
     막급한 지난 과거가 가슴을 후려친다. 하지만 어쩌랴. 온 우주만물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 
     듯, 우리네 인생도 그러한 것을...

     맞부딪치며 부대끼고, 승패를 무시하며 싸우는 삶속에 배워가는 인생철학도 조금씩 부서
     져 가는 내 몸을 어쩌지는 못하나 보다. 그래서 더욱 찾는 산이다. 산속에서 찾는 마음의 
     평안이 부서진 상처조각을 조금이나마 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칠월의 막바지 한여름에 찾은 산, 엷게 퍼져가는 운무를 보며 자신에게 한마디 던진다. 
     어려움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몸으로 막아라 단순무식한 삶도 때론 필요한 것, 머리굴려 
     복잡한 생각을 털어 버려라 불만으로 해서 내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 ...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은지 충고도 격려도 채찍도 끝이 없을것 같았다. 헌데 가끔은 허튼 
     짓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할 때가 있다. 한참 관심갖게 된 야생화 이름 때문에 짜맞춰진 
     실타래 가 마구 엉킬 때가 있다. 하늘나리와 하늘말나리가 왜 다를까, 비비추와 산옥잠화
     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등 정말 고생을 사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늘나리 / 하늘말나리 
     

 
     나무 한그루 없는 정상의 초원지대에서 한없이 머무르고만 싶었다. 몇 날을 그속에서 지
     내고 싶었다. 무념무상의 내가 되어....

     고운 색상으로 조합하여 수놓았던 연초록 바탕의 야생화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대신해야 
     할 것 같았다. 푹 빠져 일상을 잊을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어지럽게 엉켜있는 실타래를 
     조심조심 끊어지지 않게 풀어주는 역할도 만들어 잠시나마 편하고 행복한 느낌을 부여받
     았으니 말이다. 이내 삶과의 전쟁 속으로 풍덩 빠질지라도 그 순간만으로 뺏기고 싶지 않
     은 내 유일한 쉼터였던 것이다.


     
     짚신나물 / 솔나물

     


     아직 등장하기엔 이른 짚신나물이 금마타리, 솔나물, 달맞이꽃, 뱀무 등 동색의 옷을 입
     고  앙증맞게 피어 나에게 배웅을 한다. 산중에 피어있지 않은 곳이 없다만 그래도 한 구
     역을 차지해 저들만의 잔치를 벌이고자 잔뜩 준비를 하고 있다. 그 파티 속으로 빠져들기 
     위해 다시금 산행을 준비하기로 한다. 일주일이나 열흘 뒤면 대덕산이라는 무대 위에 올
     라왔던 주연급 배우들이 많이 교체될 듯 싶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그날을 위해 가슴터
     지게 북받쳐 올랐던 감정을 추스리며 안녕을 고하며 하산하였다. 

     깊어가는 한여름은 스러져 버린 내 가슴의 앙금을 모두 먹으며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뒤돌아 본 산길에 다시금 적막감이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