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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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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룩주룩 비는 내리고


BY 동해바다 2005-07-30



     닭목재(8:40) - 제 1쉼터 (9:50) - 제 2쉼터 (10:30) - 철탑 - 고루포기산 (11:40)
     - 11:50 중식 - 대관령전망대 (13:05) - 능경봉(1213m 14:00) - 대관령구휴게소(15:05)
     7. 28 / 6시간30분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TV 뉴스 기상예보가 여느 때보다 더욱 크게 부각되어 들린다.
    별 일 없는 날이라면 워낙 비를 좋아하기에 한여름날 혼자만의 궁상 떨며 시간을 보낼
    텐데 계획되어 있는 산행인지라 내심 걱정이 된다.

     적당히 내려주는 비는 오히려 산행에 도움이 되어 주련만 얼마나 많은 양의 비를 뿌려줄
     런지 일단 나서고 보았다. 아니 어쩌면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약간
     의 스릴을 즐기고 싶었으니까...

     동이 트고 해가 바지런히 떠 오를무렵 하늘은 우거지상을 하고 있다. 예보대로 비는 
     내리지않고 시커먼 구름만 만들어 겁을 주고 있었다. 산행에 합류한 인원은 16명, 
     비소식과 휴가철이 겹쳐 많은 인원이 빠진 채 겁없는 회원들만이 우중산행을 겪기로 
     한 것이다.

     지난 주 도착지점인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닭목재를 향하여 버스는 출발한다.(07:00)
     갑자기 차창 밖을 때리는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다. 빗방울끼리 부딪치며 차창에 
     하나의 작은 물길을 만들어 놓으며 우리를 놀리고 있는것 같았다.

     

     신의 보살핌이 있는 것일까. 닭목재에 도착하니 비는 그치고 부드러운 빗방울만이 바람
     을 타고 얼굴에 스친다. 강한 원색의 우의를 하나씩 걸치고 산 들머리 '백두대간등산        
     로'라고 써진 푯말을 뒤로 한다.
     
     적송과 낙엽송, 세월의 더께를 입힌 참나무들이 대간길 아름드리 심어져 있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과 수많은 잡목은 어느 산을 오르든  만날수 있는 자연 
     그 본연의 모습들이다. 하지만 매번 산행할 때마다 똑같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
     다. 산과 날씨 그리고 하루하루 다르게 피어나는 야생초, 새와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음 
     등 자연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갖가지 선물로 그 느낌은 색을 달리하여 몸과 마음 속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오늘 또한 우중 속에 이들을 만나니 어찌 똑같을 수 있을까. 

     빗물로 목욕을 하고 있는 초록잎새들의 청초함이 7월의 더위를 내 쫓고 있었다. 
     길 옆은 철사줄로 경계선을 만들며 동자꽃과 말나리가 기웃거리는 산길을 따라 마냥 걷
     는다. 밟으면 쑤욱 내려가는 폭신한 솜처럼 길은 정말 환상이었다. 대간길이 선사하는 단
     골 메뉴인 우리만의 레드카펫이었던 것이다. 나무뿌리와 돌멩이만 밟지 않으면 미끄러질 
     염려는 없었고 미쳐 빠지지 못한 웅덩이를 폴짝 뛰면서 요리조리 피한다. 


     855m인 제 1쉼터와 952m의 2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비가 오기에 물도, 간식도 
     꺼내기 싫었지만 바지런한 회원의 손놀림에 각기다른 메뉴들이 우리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바지밑자락은 벌써 흙탕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빗소리 외에 정적만이 감도는 깊은 숲속에 인기척이 나면서 만난 산중호걸들, 배낭 
     위로 무게를 더한 텐트를 짊어지고 비 맞으며 걸어오는 젊은 청년들이 있었다. 대여섯
     명이 대간길을 타고 있는 듯 절로 우리 입에선 화이팅이라는 구호가 튀어 나온다. 어디
     까지 가는지, 무작정 표지판만을 보고 산을 타는 청년들에게서 끓어 오르는 혈기를 
     보았다. 젊음이 만들어내는 그들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며 우리의 갈길을 간다.

     
     모싯대

     

                                                      
                           
 
     우중산행시 특히 조심해야 할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탑을 지난다. 겁이나 빠른걸음으로
     그 옆을 통과한다. 하늘에선 주룩주룩 비를 쏟아붓고 내 몸에선 비오듯 땀이 쏟아지고
     있다. 우의 속 상하의가 땀으로 모두 젖어 있었다. 

     해발 1,238m 의 높이에 다다른 고루포기산, 평창과 강릉을 가르는 산 정상에서 
     잠시 호흡을 정리하며 비에 흠뻑 젖어 있는 야생화를 보았다. 
     도라지과에 속하는 연보랏빛 모싯대가 방울방울 물방울을 매달고 있다. 
     쪼르르르 달려있는 종 모양의 꽃 모싯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깊은 산중에 
     홀로이 피고 지면서 제 할일을 묵묵히 마치는 여린 꽃이여. 산에서 만나는 배움
     의 철학이 이 여린 야생화에게서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몇 발자국 내려가니 철제로 만들어놓은 의자가 놓여져 있다. 그 위에 점심상을 
     차려 놓으니 뷔페상이 따로 없다. 마침 내리던 비도 뚝 그쳐 있었다. 우의를 
     입은 채 서서 배를 채운다. 희안하게도 비는 적당히 내려주었다가 그쳐주곤 하였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가 없었다. 한기를 느끼기 전에 서둘러 베
     낭을 매고 체온을 올려준다. 대관령을 향하여...       

     봄에 향긋한 나물내음에 잔뜩 뜯어 먹었던 취나물이 어여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촉촉한 풀잎에 하얗게 피어있는 모습이 총명한 어린아이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똘똘해 보였다고나 할까...


      

     대관령 전망대에 올라서니 희뿌연 안개로 조망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서둘러 능선을 타
     고 걷다보니 어디선가 자동차 소음이 들려온다. 

     아! 우리가 차를 타며 넘나들었던 대관령 터널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멀리 고속도로 4차 
     선이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뿌듯함과 성취감으로 가슴이 싸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
     나선 산행에 대간코스를 타면서 대간길만은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욕심까지 생기게 되었
     다. 계획되어진 산행에 본의아니게 빠져야 할 상황만 아니면 거의 참석했던 산행이 이제
     는 빠지면 큰일날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열혈회원이 된 것이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참석했던 소수의 인원이 대관령 정상 터널 위에서 가슴 뭉클한 감회를 느끼며 자신에게 
     큰 박수를 친다.


     대간길 곳곳 산림청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들을 종류별로 모아 구간구간 표지판과 
     함께 자그마하니 꾸며놓았다. 그들의 세심함에 무지했던 또하나의 지식을 보탠다.
     촉촉히 젖어 비옷입고 있는 잎새와 그 초록들 틈사이에 빛을 발하는 야생화의 색깔이 무
     척 선연하다. 
                                                 

     오후 2시경 숲속을 헤치고 나오니 능경봉 정상이다. 우리가 걷는 코스의 길이가 
     13.10km 라는 안내표지판을 보며 그간의 산행에 비하면 조금 짧은 거리인 구간에서 
     잠시 휴식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며 멀리 보일듯 말듯한 조망을 살펴보았다. 

     강릉시 강동면에 위치한 괘방산이 안개에 휩싸여 전혀 보이지 않다가 싹 걷혀진다. 
     비구름이 바람에 떠밀려 가는 듯한 그림을 실컷 보고 가져온 매실주에 오디술과 
     얼려온 맥주 조금씩 나눠마시니 온 몸이 찌릿해지면서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산에서 술이 필요하다 했던가. 힘들때 마셔주는 한 잔 술이 힘을 내게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하였다. 거의 다 와 이제 하산하는 길만 남았지만 그래도 한잔 정도 
     마셔야 제대로 된 산행을 한 것 같으니 산에 미치면서 더욱 가까워진 친구였다. 

      

     가지고 온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하산길에 접어드니 말나리와 동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비에 축 쳐져 있었다. 길도 미끌미끌하여 풀숲으로 돌아 내려온다. 
     곧 제왕산등산로라는 표지판이 보이면서 마침표를 찍는듯 하였다. 쉬땅나무 꼬리조팝등 
     터리풀꽃 같은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가까운 샘터에 가 흙탕물로 범벅이 된 신발과 바지를 대충 씻은 다음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하얀 풍차가 보인다.

     

     오후 3시, 몇년전 그렇게 드나들었던 옛 대관령휴게소에 다다른 것이다. 터널이 생기면서
     교통시간이 많이 단축되긴 했지만 구비구비 돌아가던 대관령 옛길이 그리울 때가 있다.
     더욱 오래된 '대관령옛길'을 두고 이 길 또한 옛길이 된 것이다.  한창 이용하였던 휴게소  
     를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돌아가는 풍차와 높이 세워져 있는 기념탑 앞에서 6시간반 동안 함께했던 회원들과 화이
     팅을 외쳤다. 다음 구간으로 이어질 대관령에서 선자령 코스 들머리가 저만치 보인다. 
     한달 후 다시와 볼 이곳에 우리들의 흔적을 남기며 땀과 비에 젖은 온 몸 버스에 
     실어 산행 마무리를 짓는다.

     실비가 얼굴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좁쌀풀꽃 / 물봉선
     
      
             

     꼬리조팝 / 참취꽃

     
        

      꽃창포 / 며느리밥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