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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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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가게(3)


BY 개망초꽃 2005-06-11

오랫동안 한곳에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얼얼하다. 라디오의 볼룸을 올리고 가게안을 뺑글뺑글 돌았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면 맨먼저 빵바구니가 보이고 그 옆과 뒤에 과자봉지들이 웃어재끼고 있다. 몸들을 뒤로 넘어가게 진열을 해 놓아서 그리 보인다. 그래야 상품들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웃어재끼는 과자를 보고, 오른쪽으로 틀면 바로 오픈냉장고가 한쪽 가게를 다 채우고 있다. 거기엔 온갖 것이 다 들어있다. 시원스런 쥬스부터 과일, 채소, 우유, 어묵. 냉장고에 안있음 상태가 급속이 나빠지는 이런 냉한 것들이 옆으로 나란히나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다. 냉장고를 지나 왼쪽으로 돌면 밀가루가 있고, 가루식품류가 있다.  냉동실엔 사골과 만두 뭐 이런것들이 있다. 또 왼쪽으로 한번 더 돌면 라면 여섯자매가 차곡히 포개져 환장하게 웃고 있다. 나 잡아잡슈~~~이럴지도 모른다. 열바퀴도 더 돌았다. 운동이 되려면 좀 더 빠르게 돌아야한다. 어지럽다. 두 팔을 힘차게 저으니까 학창시절 교련연습하는 것 같다. 우리 땐 교련연습을 많이 했었다. 때양볕에 한두시간씩 부동자세로 세워 두어서 친구들이 피식피식 쓰러졌다. 그래도 교련연습은 계속됐다. 어느날은 반나절 내내 연습한적도 있었다. 높으신 누가 온다는 날이 인박하면 인정사정도 없다. 볏단 쓰러지듯 툭툭 넘어지는 친구들처럼 나도 볏단이 되고 싶은데 끈질기게 안 넘어졌다. 가게를 돌고 있는 나는 볏단이 되어 쓰러지고 싶다. 한달동안 피가 마르고, 뼈가 녹았다. 살이 흔들렸다. 가게를 접어야하나 말아야하나 볏단처럼 말라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안 쓰러졌다. 하루종일 운동장에 서 있어도 나는 안 쓰러졌다. 얼굴이 노랗게 돼도 쓰러지지는 않았다. 운동장에 아지랑이가 올라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운동장은 반듯했다. 교련선생님의 목소리가 쩌러렁쩌러렁 예배당 쇠송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가게문엔 작은 쇠종이 달려있다. 손님이 많을 땐 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지금의 종은 장식품이 되었다. 가끔씩 종을 건드리면 딩강~~띵강 그런다. 너도 심심하겠다.


저녁 어스름이 깔린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7시가 넘어야 어둠이 온다. 팔짱을 끼고 깔리고 있는 시간을 본다. 소설책을 마저 보고 갔다줘야한다. 아니면 벌금을 물게 된다. 소설책을 펼쳤다. 어차피 오늘 안으로 다 못 보겠다. 벌금 물지 뭐. 책방주인이 책을 빌려주면서 오랜만에 왔네요 했다. 네에~~책 볼 시간이 생겼어요. 책 볼 시간이 생겨 좋긴 좋다. 내가 책에 빠져 있어서 손님 온 줄도 모르면 손님이 도리어 미안해 한다. 책보는데 방해가 됐네요 한다. 내가 왜 책을 보게 된 줄도 모르는 손님. 다 손님 때문인데...


마감을 할 시간이다. 만원짜리 몇장, 천원짜리 몇장. 오늘 매출이 뜬다. 한달을 계산해 보면

내 인건비는 없다. 월세내고 전기료 내고, 냉장고가 크고 냉동실이 있어서 전기료가 삼십만원이다 여름엔 오십만원도 넘게 나온다. 여러 가지 세금 다 빼고나면 남는 게 없다. 그래 이대로 장사를 하면 6월달부터는 적자구나. 배송비 오십만원이 적자네. 그래 그만 가게를 접어야겠다. 밖은 어둠이 짙다. 장미꽃도 보이지 않는다. 장미넝쿨이 소나기 구름처럼 뭉굴뭉굴 어렴풋이 보일뿐이다.